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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름 아래 화양연화의 하루

2018

by 무량화

요즘 새벽 기온은 27도 즈음이었는데요.

낮에는 58도까지 온도가 올라갔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엔젤레스 포레스트 산정과 테하차피 산기슭에 쌓인 하얀 눈으로 그간 날씨가 아주 싸했답니다.

심지어 밤에는 서리가 뽀얗게 내려 잔디가 얼 정도이다가 해가 올라오면 서리가 걷히고 서서히 냉기도 가셨지요.

아무튼 입춘 지나고도 한참 되도록 봄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으며, 잦은 비로 하늘은 계속 우중충했습니다.

잔뜩 심술 난 시엄니 표정처럼 냉랭한 날씨라,
오가는 통학길에서조차 웅크리고 종종걸음을 치게 만들었지요,

춘삼월이 왔건만 뜸 들이며 머뭇거리기만 하는 봄.

모처럼 봄볕 화사하니 따뜻한 데다 피부에 스치는 바람결 온화한 게 봄기운 완연했습니다.


예년과 다른 기상조건이긴 하지만 그래도 3월을 맞았으니, 정호승의 시구대로 충분히 기다리고 기다렸거든요.


그랬더니 드디어 드디어 눈에 띄더군요.

어느 집 뜰안에 핀 살구꽃 아몬드꽃 복숭아꽃 사과꽃 가로에 핀 아그배꽃도 봉오리 살몃 펼쳤고요.


눈부시게 푸른 하늘에는 엷은 실구름 약간, 꽃향기 따라 모여든 벌떼 부지런히 꽃가루를 모았습니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단순히 꽃이라 하면 다 Flower려니 했는데 캘리포니아에 와서 새로이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꽃은 꽃이지만 Blossom이라 하면 체리꽃 사과꽃 등 열매가 열리는 과수나무에 피는 꽃을 따로 블라섬이라 구분해 쓰더군요.


우기가 끝난듯한 이번 주말에 그래도 약간 구름 낀 날씨였지만, 딸내미랑 블라섬 트레일을 다녀왔어요.

프레즈노의 초입인 샌호아킨 밸리로 떠난 블라섬 트레일(Blossom Trail).

양 옆으로 끝 모르게 펼쳐지는 아몬드 과수원 꽃길 걸으며 흩날리는 꽃잎 아래 시나브로 꽃향기에 젖어보았지요.

팝콘처럼 하얗게 터진 꽃송이들로 과수 가득 소담스런 꽃구름을 이룬 데다 바람 불어 꽃잎 눈발처럼 사태져 내리는 데 와우~굉장하더군요.


나무 아래 흥건하게 쌓인 흰 꽃잎들로 마치 눈길을 걷는 거 같았거든요.


호르르 지는 송이송이 꽃잎 눈발처럼 쏟아져 내리는 길, 소실점 저 끝까지 양팔 펴 들고 마냥 걸었네요.


어느 축제 퍼레이드 행렬이 이만큼 멋스러울 수 있을까요.


고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인 꽃길 걷노라니, 꿈길이듯 아련하게 스며드는 행복감에 취해 들었네요.


아몬드 블라섬의 화양연화만이 아니지요.


하염없이 눈 휘날리듯 만개한 꽃송이 절정 이뤄 낙화지는 이 봄날 풍경 속의 우리 역시 화양연화의 하루였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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