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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03. 2024

 주상절리 전망대 새 단장


신 아니면 뉘 있어 저리 거대한 작품 빚으랴.

억겁의 시간 저편, 양치식물 우거지고 공룡 뛰어다니던 아득한 일월의 강 너머 그 어느 적.

지심 깊숙이서 들끓던 마그마 분화구 열려 힘차게 솟구치자 시뻘건 용암은 사방으로 마구 치 달려 내렸으리.

우르릉 쾅! 무섭게 요동질 치는 천지 뒤흔들어 대던  장엄 교향악은 한순간 극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용암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 작용의 결과로 형성된 주상절리대라 한다.

쏟아져내린 화산재 일부가 만들어낸 깎아지른 다각형 미끈하게 빠진 수직 암벽 이마 수려하다.  

사각형 육각형 반듯반듯 다듬어진 석주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진 자연의 경이감 앞에 절로 두 손 합장.

폭이 약 1㎞ 정도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제주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다.

돌기둥 높이는 삼사십 미터 급, 아직도 바닷속에 뿌리 담근 채 침묵하는 돌인들 그 얼마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신전 기둥이나 고대 희랍의 석주들을 닮은 듯도 하지만 아니지, 그들이 본떴겠지.

인공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걸로는 한무리 코끼리 떼 행군도를 보는 거 같다.

부옇게 일궈대는 흙먼지 대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거느린 주상절리대.

이곳 주상절리대는 용암이 굳어질 때 일어나는 지질 현상으로 냉각과정 중 암석이 기둥 모양으로 쪼개지며 수직의 석주로 서게 됐다.

파도 잔잔하기 망정이지 거칠게 치솟는 날은 더더욱 장엄이야 하겠지만 휘감아갈 듯 수상쩍음이 두려워 뒷걸음질 처지지 싶다.  

지적 생명체의 본능상 인간의 호기심은 끝 간 데 모르는 데다 유별나기까지 하다.

널리 소문날 정도로 새롭고 신기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직접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만져보거나 하다못해 찔러라도 본다.

그러니 주상절리대에 구경꾼이 사철 이리 밀려드는 거다.

해안을 따라 높이가 다르고 크기도 다른 사각형 또는 육각형 돌기둥 바위들이 깎아지른 절벽을 이뤘다.

주상절리, 단면의 형태가 각진 채로 긴 기둥 모양을 이루고 있는 절리를 말한다.

대부분 현무암 질이며 화산암에서 주로 생긴다고.

약 14만 년~25만 년 전에 형성된 조면현무암으로 이루어졌다.

고온의 용암이 급격하게 냉각되는 과정에서 수축작용에 의해 갈라지며 생겨난 일종의 틈새가 절리다.

이곳 주상절리대는 최대 높이 약 30여 미터에 이르는 수많은 기둥 모양의 암석이 규칙적으로 형성돼 자연이 다듬어 낸 신묘한 조각전시실 같다.

학술적으로나 경관적으로 그 가치가 인정돼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제주도에는 여기만이 아니라 백록담 분화구 남벽과 영실 병풍바위, 갯깍 주상절리대, 범섬 해식절벽, 산방산 용암돔 암벽, 천제연 제1폭포도 주상절리 지형이다.

그러나 주상절리의 규모와 정교함에서는 따를 곳이 없어 해신들의 궁전으로 비유되는 이곳 주상절리대다.

지난해 삼월이었다.

유채꽃 노란 파도가 쓸리는 봄날 대포동 주상절리대에 왔었다.

전망대 쪽은 빙빙 둘러 가림막이 쳐있었고 공사 중이란 간단한 현수막만 보였다.

부산스러운 트랙터며 철근 자르는 기계음 시끄러웠다.

땅바닥 어지러이 파헤쳐졌고 해변 쪽은 전수 가림막이 둘러쳐 있는 걸로 미루어 태풍이 결딴낸 전망 데크를 새로 정비하지 싶었다.

정작 필요한 건 '언제부터 언제까지라는 공사기간'이지 현 실정 눈으로 보면 모르겠나.

당시 강정에 크루즈선이 입항해 몇 천명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판이었다.

분초 앞다퉈 SNS 활동 번개같이 하는 세상에 관광청 홍보팀은 뭘 하는지?

미리 주상절리 당분간 폐쇄한다는 통보를 해두었다면 외지에서 온 관람객들 헛걸음질 아니할 것을.

제주에 거주하는 나조차 툴툴거리는데 관광 제주 광고는 밤낮없이 해대면서 이런 무신경한 처사에 그들 불평이 오죽하랴 싶었다.

별러서 제주여행을 왔는데 이리 특별나고도 아름찬 눈요깃감을 놓칠 순 없지.

패키지여행 시에도 서귀포 명소로 주상절리대는 필수 코스다.

해서 여길 올 적마다 인파가 붐빈다.

헌데 벌써 몇 개월째 보수공사 중이라니.

근자엔 찾는 이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그래도 있긴 있었다.

미리 검색하면 임시 휴업이란 빨간 글씨가 뜨건만 새 정보 파악 귀신같이 하는 젊은이들도 적잖이 왔다.

꼭 봐야 할 곳인데 호기심 충족은커녕 헛걸음치고 돌아가며 쳇~뭐야! 구시렁거릴 테지.

그래도 한 구석탱이나마 눈에 담았으니 됐지 뭐~옆 친구는 그리 달래리라.

그로부터 반년이나 지났으니 설마 이제는 공사가 마무리됐겠지.

배롱나무꽃 붉게 흐드러진 팔월도 하순.

그러나 아직도 가림막 너풀대는 어수선한 공사 현장 그대로였다.

산책로에 빠끔 열린 작은 공간의 임시 전망터, 여러 사람들이 목책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번에 와서도 그 장소에서 주상절리 한 귀퉁이만 겨우, 그것도 먼 빛으로 보고 갔더랬다.

입구의 관광안내소에 가서 공사 진척 상황을 물어봤다.

9월 1일이 오픈 예정일이라 일정에 맞추려 현재 야간작업까지 하며 독려 중이라 했다.

쫓기듯 급히 서두르지 말고 다중이 드나드는 곳이니 안전제일이란 말을 남기고 컨벤션 쪽으로 돌아섰다.

그쪽에는 한라산도 잡히고 늘씬한 야자수와 큼다막한 소철이 조경수로 잘 가꿔져 있어 눈 맛 시원스럽다.

게다가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군산오름, 산방산, 송악산과 가파도, 마라도가 한눈에 들었다.

그밖에 여러 조경물들이 좋은 구도의 사진 배경이 돼주었다.

꿩 대신 닭도 미상불 나쁘진 않았다.

마침 컨벤션센터(ICC)가 바로 옆에 있어 안에 들어가 면세점 아이 쇼핑도 잠시.

지난번에도 김샌 주상절리대를 대신해 인근 후원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기분을 상쇄시켜 주었다.

일반적으로 주상절리 가는 길과 달리 이번에도 이쪽 방향에서 진입했다.

국제컨벤션센터 옆으로 해서 바다를 끼고 야자수 늘어선 작은 공원을 지나 후문으로 들어선 것.

지난봄부터 두어 번 주상절리를 찾았으나 번번 공사 중이라 바람을 맞았다.

그냥 되돌아 나오기 아쉬워 반대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컨벤션 건물이 나타났다.

이 길은 호젓하지만 으슥하지 않은 데다 조경이 아주 근사했다.

뿐 아니라 한라산 훤히 드러나는가 하면 군산과 산방산 송악산이 숨바꼭질하며 따르고 마라도 가파도가 바다 위로 남실남실 떠올랐다.

조망권 훌륭한 데다 잘 가꿔진 공원, 산책길로도 손색없는 터라 이후로는 매번 이 길로만 다닌다.

작년에 몰아친 태풍으로 크게 손상된 전망대 주변의 대대적인 공사로 근 일 년 문을 닫았던 주상절리대다.

지난 9월 초 오픈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처음으로 찾은 이곳.

일단 출입구 시스템부터 난간까지 모든 게 신품이라 깔끔하고 동선 설계 역시 오르내림이 적어 편리했다.

조금이라도 더 주상절리 면면이 잘 보이도록 여러 면으로 연구했을 터이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란 한정돼 있다.

오각형 육각형 돌기둥의 상층부만 시야에 들어올 뿐, 측면은 드러나지 않는다.

파도 위로 돌올하게 솟은 매끈한 돌기둥 몸체는 어림짐작 아니 상상만 해본다.

새로이 단장했어도 마찬가지, 저 아래 뿌리내린 돌기둥의 진면목을 보려면 전망대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밋칠한 바위 병풍 깎아지른 웅자로 둘러선 주상절리대, 전체를 정면에서 조감한다면 얼마나 대단할까.

경이로운 풍광에 절로 탄성이 터지리라.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했던가.

대포주상절리를 처음 접했던 오래전, 사실 그땐 그 자체만으로도 경탄감이었다.

하지만 주상절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려니 번번 감질만 났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야 전모를 옳게 감상하겠구나 싶었다.

여러 번 와보다 보니 점차 욕심이 생긴 셈이다.

앞바다에 유유자적 떠있는 새하얀 요트가 주상절리대 조망용이란 얘길 들은 후부터 그 욕구는 더더욱 커져갔다.

바다로 나가 전면을 훑어보리라, 작정하고 요트를 타러 갔다가 예약제라서 땡볕에 헛걸음질만 했다.

다른 요트 투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드디어 요트 안에서 늘씬한 주상절리대를 건너다보며 그 웅장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겠구나!

대포동 해안을 따라 성천포에서 월평동까지 분포된, 약 3.5km에 이르는 대포해안 주상절리대이니까.

밋밋하고 납작한 요트에 승객들이 다 오르자 배 한 척이 먼저 출항했다.

이어서 우리 요트도 쌍둥이처럼 따라서 앞으로 전진했다.

광고글만은 그럴싸, 럭셔리 요트여행이라 했다.

선상 내 다이닝 코스로 짜인 와인과 다과 등을 제공하며 낚시로 잡은 생선은 즉석 회도 가능하다고.

허걱! 와인의 품질 고하는 제쳐두고라도 그 곁에 떡하니 자리한 컵라면은 웬놈의 구색?

세일러복을 입었다고 다 수병도 아니며 요트라도 마스트에 달린 삼각돛 가득 바람을 안았어야 요트답다.

요지는, 아무리 관찰해 봐도 주상절리 짝퉁도 못 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제주 해안가 풍경만 보이더란 점.

이어서 15분간의 낚시체험 시간은 맹탕 릴 낚싯대 잡고 끄덕거리며 헛폼 잡고 사진이나 찍었다.

말이 좋아 바다낚시, 두어 승객이 겨우 엄지손가락만 한 열기를 낚아챘을 뿐이다.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고 작디작은 걸로 회를 쳐?

어림없으니 바다로 다시 방생하며 나무아미타불!

정면에서 주상절리 감상할 목적으로만 배를 탄 게 아니라면 삼빡한 요트체험 되었으려나.

천태만상 뜻 그대로 저마다 모습은 물론 느낌, 사고, 받아들임의 양태가 다르다.

그걸 인정하고 보면 세상사 그 무엇도 딱 잘라 판단하거나 평가하기란 사실 얼마나 어려운지.

어디까지나 생각은 주관적이라 사고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고 편차 역시 크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과론적으로 대포동 주상절리대 덕에 귀한 사유 하나는 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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