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첫 시작
어렸을 적부터 숙제가 하나 있었다. "나 뭐해먹고 살지?" 나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렇게 교육조직에서 강요해왔던 장래희망 요구사항. 초등학교 시절엔 그냥 좋아 보이는 것 적었고, 중학교 시절에는 뉴스나 매스미디어에서 거론되는 휘황찬란한 직업을 적었고, 고등학생 때부터는 좀 달라졌다. 학교 선생님들은 수업시간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이젠 너희도 직접 먹고살아야 될 나이야. 그 말들은 나뿐만 아니라 같은 반 다른 아이들의 표정까지도 엄숙 진지모드로 돌입시켰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에겐 이런 질문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 알고 있었다. 명확했다기 보단 어느 물질적 이해관계의 때가 조금도 묻지 않은 우리의 어린 시절 나는 이미 표현하고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럴 때마다 나보다 연장자인 사람들이 내뱉는 한마디가 있었다.
“그런 거 하지 말고 공부나 해" 이 대사가 아마 지금의
퇴직사회를 만든 분명한 초석의 씨앗이다.
지금은 퇴직사회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 할 수 있는 기회 따윈 없었다. 인생의 1차 관문이자 나라는 인간이 대학이란 타이틀, 또는 간판을 하나 달려고 그렇게 열심히 죽어라 수능 공부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신의 영혼이 말라죽을 것 같아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퇴사한 당신이 듣는 말은 "너는 끈기가 없네, 인내가 없네" 등등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게 지극히 괴로운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일엔 크고 작다라고 말할 수 없고 끈기가 없고 인내가 없다는 표현은 상대적이다. 어찌 보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니 참을 이유가 없을 수밖에
지금의 2,30대는 산업 노동자 교육을 받아온 거 아닐까? 지금 성인이 된 당신은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받은 의무교육은 나를 고귀한 인간으로 참 교육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 한 노동자로 부림 시키기 위한 테크닉의 초석을 가르치는구나" 그렇게 우리는 자신에게 관심을 줄 기회가 없었다. 해야 될 것들, 봐야 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고 당신 자신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에 나는 응원하고 위로한다.
인간은 생애에 걸쳐 끝나지 않는
자기 탐구를 해야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