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 하는 여자의 비건강한 정신세계
"'심리학'을 합니다. "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첫만남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말들 중 먹고사는 일에 대한 질문이 오면, 아 올 것이 왔다! 라는 자동적 사고와 함께 내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 하나만으로, 상대의 반응은 예측 가능해진다.
1. 저도 상담이 필요한데요, (웃음웃음)
2. 갑자기 불안해지네요! 제 생각을 다 알 것만 같아서요!
3. 되게 정신이 건강하실 것 같아요!
모든 직업에 고정관념 내지는 편견이 있으니까, 대부분은 웃고, 그저 소비하며 지나가곤 하고, 때로는 나도 모르게 진지해져 고민을 들어주다가 반은 상담이 되어버려 공사의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한다.
그것까진 괜찮은데 3번 타입은, "전혀 아니예요"라고 말하며 (웃자고 한 말에) 혼자 생각이 깊어진다.
그럴 때 떠오르는 일화는, 심리학, 심지어 상담하는 사람끼리 결혼해도 신혼 초 싸움은 아무도 못말릴 수준이었다는 것..
정신이 되게 건강한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내 신체는 대체로 건강하다.
그런데 환절기를 겪으면서 감기에 걸렸었고, 2-3일은 열이 나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평소엔 고질병인 비염으로 고생을 하고, 척추관절이 좋지 않아서 평소에도 백팩을 메거나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지금 당장 큰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끔 걱정은 한다. 그래서 평소에 운동을 하고, 체중조절을 한다. 물론 감기나 염증이 심해지면 병원을 간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아마 내과, 이비인후과, 혹은 재활의학과 전문의분들도, 조금씩은 더 관리하기 손쉬운 생활습관들은 실천하려 노력하겠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신체가 건강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정신은 대체로 건강하다.
한편 오늘도 찌개가 짜다거나, 신경 고만 쓰라는 투의, 관계에 도움되지 않을 말을 던지고 나오는 말뽄새 예쁘지 않은 딸이었고, 작성해야 하는 applicant 작성을 미룬 채 30분동안 유튜브를 시청하는 지연행동을 보이는 학생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상대의 반응에는 혼자 소설을 쓰며 '역기능적인(dysfunctional)'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하기도 했다. 물론 더 도움되는 '생각의 습관'을 적용하려고 노력하긴 한다. 그래도 안되면, 나도 상담을 받는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하고 싶은 말은, 내 정신 또한 '완벽하게 건강하지 않지만, 그냥 괜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의 삶은 완벽하게 건강해보일지 모른다. 외부 환경도, 그 사람의 내면도 너무나 평온하고 괜찮아 보여서, 나 같은 고민은 해 본적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그런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세상에 그 누구도 '완벽하게 건강한 마음상태'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경제적인 것이든 관계에 관한 것이든 속썩이는 세균 몇개쯤은 default로 지니고 살 수 밖에 없는 게 삶이다. 손목을 걸라면 걸 수 있다.. (어차피 아무도 확인 못함) '완벽하게 건강한 신체'만큼이나 '완벽하게 건강한 마음'은 신화이니까.
마찬가지로, '선생님은 그런 적 있으실지 모르겠는데'라면서 말하는 환자들의 대부분의 경험은 내가 했던 경험들이 맞다. 내가 했던 생각이고, 지금도 하고 있는 생각일 때가 있다. 단지 '다시 생각하는 법'을 알고 있고, 조금 더 내밀한 타인의 시선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상태이고, 그리고 내가 그랬으니까, 어떻게 하면 나아지는지 경험했으니까 같이 손잡고 해결해보자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오시는 분들이 '완벽하게 건강한 마음상태'를 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 순간을 극복한 경험을 가져가길 바란다. 다음에 또 열이 나면 심해지기 전에 잘 넘길 수 있게.
어떤 사람은 치료가 너무 필요해보이는데 극구 필요 없다 손사래를 치고, 어떤 사람은 내가 완벽하게 건강하지 못한 것 같아 걱정을 한다. 어떤 상태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적절히 느끼고 조절하며 살아갈 수 있게, 세균 몇개쯤 지니고 있어도 잘 관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그렇게 내 마음을 만들자.
완벽히 건강하지 못한것 같다고 걱정하는 바보같은 일은 없도록 하자.
그냥, 그 정도면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