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소닉> 리뷰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시사회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오아시스'라는 이름은 하나의 시대이자 현상이었다. 1994년 혜성처럼 등장해 90년대 브릿팝의 부흥을 이끌고, 전 세계를 집어삼킨 이들의 행보는 전설로만 남아있다. 다큐멘터리 <슈퍼소닉>은 바로 그 시작과 정점, 1994년부터 1996년 넵워스 파크에서의 기록적인 공연까지의 3년을 담아낸다. 영화는 성공 신화에 대한 찬양이나 밴드의 해체를 조명하는 대신, 가장 순수하고 폭발적이었던 시절의 '에너지' 그 자체에 집중한다. 심지어 재개봉을 통해 4K로 복원된 영상은 30년이라는 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당시의 몰아치는 분위기와 날것 그대로의 공기를 스크린에 완벽하게 복원해 낸다.
<슈퍼소닉>의 가장 큰 미덕은 단연 편집과 사운드다. 영화는 미공개 영상과 멤버들의 인터뷰 음성을 교차하며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인터뷰 장면에서 인물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소리만 남은 인터뷰는 과거의 영상 위에 자연스럽게 겹쳐지며, 관객이 과거의 사건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편집은 당시 오아시스가 느꼈을 성공의 속도감을 스크린에 그대로 구현한다. 여기에 'Rock 'n' Roll Star', 'Live Forever', 'Wonderwall' 등 귀를 때려 박는 명곡들이 더해지니, 122분의 러닝타임은 마치 오아시스의 라이브 공연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넘어, 그 시절의 광기를 '체험'하게 만드는 영리한 연출이다.
오아시스의 역사는 곧 노엘과 리암 갤러거 형제의 역사다. 천재적인 작곡가이자 이성적인 형 노엘과, 무대 위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졌지만 통제 불가능한 동생 리암. 이 둘의 관계는 밴드를 움직이는 엔진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영화는 이 애증의 관계를 미화하거나 한쪽의 편을 들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경멸과 욕설 속에서도 문득 드러나는 형제애와 음악적 존중의 순간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노엘의 곡에 리암의 목소리가 더해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오아시스의 음악처럼, 이 둘의 불안정한 결합이야말로 '오아시스 신화'의 본질이었음을 영화는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들의 갈등이 곧 창작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은 팬들에게는 익숙한 비극이자 희극이다.
<슈퍼소닉>은 오아시스의 역사를 모두 담아내지 않는다. 밴드의 전성기를 이끈 3집 이후의 내리막과 불명예스러운 해체의 과정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누군가는 이것이 절반의 진실만을 보여주는 것이라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영화는 오아시스가 어떻게 무너졌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가장 빛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추락의 과정을 배제함으로써, 영화는 '오아시스'라는 신화를 훼손하지 않고 가장 찬란했던 모습으로 박제하는 데 성공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씁쓸한 현실 대신, "우리는 최고였고 영원할 것 같았다"는 그들의 오만한 자신감을 마지막까지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