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아이
그동안 대한민국은 교육에 대한 보편적 복지로 다양한 이슈가 있어왔다. 한 가정의 필수 교육비와 관련된 무상보육, 무상교육을 비롯하여 무상급식과 무상교복 등, 한 가정의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의무적으로 소요되는 의식주(衣食住)까지 사회가 부담하도록 복지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우리가 커왔던 과거에는 대부분의 교육비와 의식주는 부모가 부담하였고 사회는 최소한의 교육시설과 제도적 장치만 갖춰져 있었던 것을 되돌아볼 때 대한민국은 진실로 급격한 발전을 이뤄왔다. 동시에, 공동체가 중시되었던 우리 사회는 급격히 해체되면서 최소한의 사회단위이자 혈연관계로 묶인 가정은 핵가족화를 넘어서 내 가족만을 위한 가족중심, 가족이기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실태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남보다는 스스로 내 가족을 챙겨야만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내 아이를 누구보다 잘 키워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당연히 공감이 간다. 나의 아이가 성공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부모들은 보편적 교육복지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나의 아이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기에, 아이의 교육과 의식주는 부모만이 아닌 사회가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일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보편적 교육복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다양한 논의 속에서 관련 정책이 확대된 만큼, 사회의 최소 단위인 우리부터 가족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은 찾아보기 어려운 듯싶다. 민주사회의 공동체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으며 가족 또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존재이다.
오죽하면 사회를 큰 가정이요 우리를 작은 가정이라 지칭하지 않던가. 같은 가정임에도 큰 가정과 작은 가정에는 다름이 있다. 크기와 범주의 차이도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큰 가정은 우리의 권리를 위임한 관료 및 정치인 등 대리인이 운영하는 반면에 작은 가정은 우리의 손으로 직접 운영하는 것 같다.
여기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의문이 생긴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우리가 직접 운영하는 가정은 가족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대리인에게 간접 운영되는 사회에게 공동체 책임과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고민해 본다.
최소 사회단위인 가정이 사회 속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할 때 사회도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는 것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한데 우리는 대리인 탓을 하며 사회 속에 속한 내 가정이 공동체 개념 속에서 제외되는 것에는 침묵하는 것은 아닐까? 과거와 달리, 한 자녀가 가정에서 성장함에 있어 부모의 역할보다 사회의 역할이 확대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 시절 가난했던 부모님과 함께 누려왔었던 공동체 개념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은 이제 개인주의를 넘어서 내가 나를, 나의 육신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혼밥’과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은 단절되어 버린 ‘혼술, 혼영‘이라는 용어가 유행되고 있다. 내가 바뀌지 않고 공동체인 사회의 역할만 강조한다면, 우리는 모두가 혼자 살아야 하고 너와 내가 소통하지 못하는 비극적이고 외로운 시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보편적 복지사회로 향해가는 여정 속에서 내가 아닌 ‘사회적 나’, 내 가족이 아닌 ‘사회적 가족’,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사회적 아이’에 대하여 공론화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