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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be Feb 15. 2022

분노와 참음의 자연선택

오염된 물이 시간이 흐르면 물속의 미생물에 의해 오염 물질들이 분해되어 정화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도 정화 작용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정화 작용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여 일어난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정화 작용을 통해 지킬박사에서 하이드처럼 변한다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미워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더라도 마음의 정화 작용을 통해

언제 그랬냐는 듯 상대를 사랑하고 싶어지고 상대에 대한 측은한 동정심마저 들게 되어 

상대에 대해 가졌던 나쁜 마음들에 대해서 죄책감마저 느낄 때도 있습니다.


죄와 벌에 나오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처음에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성을 가지고 전당포의 늙은 여주인과 그 여주인의 동생을 죽였지만

살인의 죄를 고백하게 된 배경도 마음의 정화 과정으로 양심에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제는 정말이지 제 마음에 사악한 악마들이 범람하던 춘추 전국시대의 향연이 있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해서 밤 9시까지 아이들, 회사 동료들로 인해서 

마음속에서 자꾸만 화가 치밀어 오르고 저를 자극하는 사람들에게

"꺼져버려, 지옥에나 가 버려, xxx들아"를 외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하고

아이들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와 어린이 집에 가지 않아서 저랑 같이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워 보시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이들과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되는 것은 

소설에서 비극을 겪는 인물이 되는 기분입니다.

전개 부분에서는 평온하다 중간 부분에서 갈등이 조성이 되고 결말에 가면서 갈등이 폭발하고

마지막에서는 처절한 비극으로 떨어지는 내용 말입니다.

직장에서 동료는 내가 할 일이 아닌 애매한 영역의 업무에 대해서 도움 요청을 하고

그러면 저는 "이런 바보 같은 녀석"하는 생각으로 상대에게 곧바로 

"네가 해 "라고 거만하게 모욕적인 말투를 풍기며 받아치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합니다.

부하들은 제 기준에 맞게 일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농땡이를 치고 있는 것 같아서,

"이 거밖에 못하냐? 그래서 당장 그만둬"라고 압력을 넣고 싶고,

월급은 많이 받으면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이 것 저것 지시만 내리는 직장 상사에게는

"제발 똑바로 좀 하세요"라고 충고를 하고 싶어 졌습니다.

업무로 전화 회의를 하는 중에 막내 아이는 내 옆에서 치근대면서 놀아 달라고 떼를 쓰고

첫 째 아이는 문제집이 어디 있냐고? 동생이 숙제를 방해한다며 있는 대로 나에게 짜증을 내고,

아이들에게도 

"야, 이 녀석들!!!! 나가 버려!! 독립해"라고 화를 마구 내고 싶어 졌습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보고 회사 일을 하면서 집에 있었는데

아내는 퇴근 후 집에 와서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고 방에 들어가서 혼자 책을 읽고

"당신 적당히 좀 해!! 자기 계발이 뭐가 중요해, 아이들이나 제대로 보고 집 안일이나 똑바로 해"

라고 아내와 한 판 전쟁 선포를 하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밤 9시쯤이 되었을 때는

속에 있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화들이 크게 점화되어서, 

저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소들을 플라스마 상태로 변화시킬 정도로 

높은 열들이 응축되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단은 참기로 했습니다. 참 결론이 싱겁기도 하지만요.

제가 참기로 한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몸이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고 싶어서였던 걸로 추측합니다.

아마 수면을 명령하는 뇌가, 분노를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향해서

"지금은 피곤하니 잠이 나 자"라고 감정을 살살 아우르면서 교섭을 한 것 아닌가 합니다.

솔직히 저는 40여 년 간 저로 살아왔지만 저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의 행동이나 생각이나 말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때 

그 원인을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소크라테스 조차 자신을 무지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찌 제가 자신을 알겠고 

제가 왜 분노를 하지 않고 잠을 자기로 한 것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다음 날 아침 4시 30분이 되어서 눈을 떴는데,

제 옆에는 막내 아이가 누워 있었고

아내는 막 일어나서 주방에서 그 녀만의 하루의 미션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어제 가졌던 극도의 혼란으로 가득했던 저의 마음의 상태가 깨끗해진 느낌이었습니다.

모범적이고 바른생활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억지로 끼워 맞춘 것처럼 들리지만 말이죠.

회사 동료들에게 가졌던 반감들도 사그러 들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불과 분노가 들끓지 6~ 7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주변 사람들에게 가졌던 갈등들과 화들이 감쪽 같이 없어지게 되었고,

심지어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상대 방들(아이들, 동료들, 아내들)을 어떻게 대하면,

 이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평화롭게 보낼 수 있을까?

*나에게 일을 떠 넘긴 동료에게는, 내 일 아니라고 받아치기보다는

 동료와 갈등을 최소화하여 상대 방이 나를 비난하는 마음을 갖게 하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부하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비추면서, 

 상대방이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도록 하게 할까?


*지시만 내리는 상사에게는 상사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상사가 움직이도록 할 수 있을까?


*오늘도 아이들이 하루 종일 집에서 있으면서 서로 잘 있을 수 있도록 

냉장고에 어떤 간식을 넣어 두고 가고, 점심은 어떻게 차려주고 가야 할까?

그리고 아이들과 하루를 잘 지내기 위해서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밤의 군대들이 사람들을 마구마구 살육하는 것처럼  

분노들이 쌓여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여 마음의 상태를 살육의 장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혼돈과 혼란의 상태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제 스스로 노력했다기보다는 마음 그 자체가 스스로 정화되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의 정화가 일어나지 않고 지속이 되는 사람도 있고,

한 번 분노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저도 때에 따라서는 분노를 그 자리에서 마구 쏟아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지 않으면 분노를 통해서 더 후회할 일이 생겨나고,

참고 기다리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음이 스스로 정화될 수도 있다는 현상입니다.

물로 심리학자들이 설명하는 이론이 있을지 모르지만,

심리학을 모르는 일반 소시민으로써, 삶의 경험을 통해 마음의 정화를 경험해 보면서 

마음의 정화에 대한 실증론적 입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분노할 일이 있으면 앞으로도 이런 마음의 정화 과정을 테스트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마음의 정화 과정을 뇌의 반응, 신경의 반응, 호르몬의 분비, 의식의 과정, 자아의 통찰을

따지고 따지면서 설명하고 할 수 없지만,

분노하여 험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분노하여 가급적이면 참고 기다리는 것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데 비교적 유리한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은 확실한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에서도 환경에 유리한 개체가 살아남고 종족을 보존한다고 말한 것처럼, 

사람이 이 험난한 인간관계를 살아 남기 위해서 분노를 자제하는 연습을 통해서 

분노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자의식은 환경에 살아 남기 어려워서 도태가 되어 버리고,

반면에 분노를 참고 기다리는 마음이 결국은 승리하여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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