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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Oct 15. 2022

공연장에서만 느끼는 전율과 즐거움

잔향과 공감

공연장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은 지루하고 남루한데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특별한 시간을 내게 선물하는 기분이다. 옷을 신경 써서 입고 화장에 공을 들이는 일련의 촌스러운 행위를 사랑한다.


그 연주들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잔향'이다. 연주자들에게 주어진 음표의 생명이 끝이 나면 아주 살짝 피치가 올라가면서 공연장의 공기를 감싼다. 이 잔향을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베토벤의 합창 심포니에서 모든 파트가 전심을 향해 노래하다 힘을 빼고 멈추는 그 순간, 그 부드럽고도 힘 있는 잔향에 넋을 잃는다.


어제 만난 런던 심포니의 브루크너 심포니 7번은 매 악장마다 그 잔향이 나를 취하게 했다. 연주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고 금관의 사운드가 하나하나 생생하게 들리는 자리에 앉아 그 웅장한 기운과 잔향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합창석에 자리를 받아 관람을 해보니 지휘자의 표정과 액션이 생생하게 보인다. 지휘를 한 사이먼 래틀은 설명이 필요 없는 훌륭한 지휘자에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지휘자다. 나는 액션이 절제된 지휘를 선호하는데 스텝까지 밟는 지휘자들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최소한의 동작으로 곡을 끌고 나가는 지휘를 좋아한다.


사이먼 래틀은 1시간 정도 되는 브루크너 연주 동안 절반은 바통을 그저 몸의 일부처럼 간직하고 표정으로 지휘를 했다. 그의 표정과 제스처로 내게 전달된 사인은 다음과 같다.


'금관 솔로, 난 당신의 연주를 고대하고 있어'

'오, 비올라들이여, 이거야, 이거'

'오, 나의 뮤즈여!(플루트 남자 주자의 연주를 들으며 세상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우리 지금 최고로 잘하고 있어, 당신들이 내는 그 소리가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한다고!'


지휘자는 연습과 최종 리허설을 통해 모든 것을 전달했을 것이고 본 공연에서 지휘자는 살짝 한 발 물러나 살아 움직이는 생물인 오케스트라를 그저 어르고 달랜다. 그 단 한 번의 음악적 일치와 소통을 위해 지휘자가 존재한다.


https://youtu.be/NqAez_fyYfI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연주하는 조성진은 그저 타고났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악기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경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어떤 상황에서도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경지에서 조성진은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합창석이라는 한계로 그랜드 피아노 뚜껑이 객석을 향해 열려있으니 살짝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으나 18번 변주 안단테 칸타빌레는 정말이지 관객이 하나도 없는 공연장처럼 모두가 숨죽이며 듣느라 생생하게 한 음 한 음을 새길 수 있었다.


https://youtu.be/OlaYUPY9tA0


조성진의 앙코르는 더 대단했다. 혹시 오늘은 차이코프스키의 october를 연주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나는 첫 음이 울리자마자 심장이 쿵 떨어졌다. 느릿하지만 힘 있는 해석. 왼손으로 이어지는 멜로디는 그저 한 손으로 연주하는 착각을 들게 했다. 조성진은 오른손만 두 개를 갖고 있는 듯 생생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 완전한 릴랙스에 그 유연한 힘이라니. 꿈같은 연주는 마침내 끝이 났고 잔향, 잔향이 남았다. 그 잔향,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새기고 싶어 소름이 돋았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아무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공연장에서 그렇게 긴 침묵은 처음이었다. 무거운 공기는 조성진의 고갯짓으로 마침내 가벼워졌다.


https://youtu.be/qdP-rFFUxso


*첨부 영상들은 전부 어제 공연은 아니지만 분위기를 느껴보시라고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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