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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Feb 23. 2023

나만의 19호실을 드디어 완성하다

육아하는 여성의 독립 공간은 여전히 드물다

운 좋게 중산층 부모를 만나 결혼 전까지 내 공부방이 있었다. 문을 닫고 음악을 맘껏 듣고 거울을 보며 딴짓을 하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맘에 들면 공테이프를 걸고 녹음을 하던 나의 공간. 가족들도 이 방에 들어올 땐 반드시 노크를 해야 했고 책상에 깔린 고무판 아래에 세뱃돈을 받으면 넣어 놓고 흐뭇해 했던 내 공간. 


결혼과 동시에 이 공간은 없어졌고 뭐든지 같이 하는 공간이 생겼다. 곧 아이가 태어나고 먹이고 기르느라 같이 하는 공간도 경계가 더욱 무너졌으며 아침엔 화장실을 먼저 가는 대신 아이들의 욕구를 먼저 들어주고 채워주느라 '나만의 공간'을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일하면서 잠시 짬이 나면 쪼개어 잠들기 바빠 내 스마트 폰 알람은 새벽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십분 단위로 세팅을 해 놓았다. 출근 시간, 아이들 등원 시간, 하원 시간, 그 사이에 내가 20분이라도 잠들면 일어나야 하는 시간, 학원 하원 시간 등등 여러 시간들이 알람이 빼곡하게 들어있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 


그 시절의 나는 나만의 공간보다는 나만의 삼십 분이 절실했으며 온전히 잠을 붙여서 세 시간을 자는 것이 세계일주보다 더 큰 버킷 리스트였다. 이제 아이들은 자랐고 나만의 시간은 조금 늘어났다. 


일하는 엄마로서 업무 준비를 하면서 내 자리는 딱 한 군데였다. 거실에서 노는 아이들을 조망하며 먹거리를 언제든 챙길 수 있는 식탁 의자가 내 자리였다. 여기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살았다. 아이들이 뭔가를 요구하면 들어주고 유해한 채널을 보면 다른 것으로 유도하고 밥을 차리고 과일을 먹여야 하는 엄마로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공간이었고 단 한 번도 불만을 가질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이사를 다니며 지역이 바뀌고 식탁이 바뀌고 위치가 바뀌어도 내 자리는 항상 식탁이 지정석이었다. 첫 책 <곤란할 땐 옆집 언니>의 원고 작업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사실 여긴 서재라기보단 주방에 가까운 공간이며 5초 대기조인 집사의 공간이었다. 집중을 해야 할 때는 동네 카페가 유일한 내 이동식 서재가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수많은 글이 주방에서 살림하는 사이사이 탄생했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며 석사를 받고 평생을 일하고 육아하며 환갑에 박사 학위를 받은 나의 작은 어머니는 내 책을 읽고 소감을 전하셨다. "내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 한참 울었어. 아이 키우고 일하느라 정신없는 삶을 너도 살아내고 있구나.." 


1970년대에 결혼한 작은 어머니와 내 어머니도, 2000년대에 결혼한 나도 인생이 크게 바뀜 없이 흘러갔다. 한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도 여성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가까운 가족 독자의 후기를 듣고 나는 밤새 잠을 못 이루었지만 그마저도 사는 것이 바빠 며칠 가지 못 했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는 1965년 영국 런던이 배경으로, 아이를 기르고 남편 내조하며 완벽한 가정을 가꾸는 전업주부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그리는 내용이다. 도입부터 전개까지 1965년이라는 배경이 무색할 만큼 지금과 유사한 갈등과 고민이 있다. 결론은 내 맘에 들지 않았지만 내 또래 기혼자들이라면 공감할 내용이다. 아이들과 가족의 돌봄 노동을 피해 혼자 근교로 외출하여 잠시나마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하며 기뻐하는 주인공을 보며 내 처지와 견주어 한숨을 쉬었던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그 5년 동안의 나는 다시 내 공간을 탐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 손이 귀찮을 나이가 되었고 나도 더 이상 식탁 의자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관성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23년 2월 12일 정오에 나는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떡볶이를 준비하며 달걀을 삶다 말고 분연히 일어나 냉장고 옆, 모든 집안 식구들이 뭘 하는지 죄다 조망이 되는 주방 식탁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화장도 안 하는 데다 하루에 10분도 앉지 않는 화장대에 내 노트북과 자료를 모두 옮겨 놓았다. 


점심을 먹이고 문을 닫고 내 노트북 앞에 앉으니 드디어 내 공간이 생긴 것을 실감했다. 물론 <19호실로 가다>의 주인공처럼 (밤에는 여기서 자야 하는 룸메이트가 있으니) 시간이 제한적이긴 하나 일단 벽과 문이 있는 내 공간이 생긴 것에 가슴이 벅차다. 다만 노크를 하지 않고 불쑥 들어오는 가족들이 앞으로 적응할 일이 남았다.


마음껏 딴짓하고 글을 쓰니 너무 행복하다. 왜 진즉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내 가슴 속 관습과 인습에 얽매여 스스로 나를 지정석에 가두어 두었던 것일까. 아이를 기르며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에게 조금만 용기 내어 보라고 하고 싶다. 


19호실은 사실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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