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왓챠 WATCHA Aug 20. 2020

전기를 펑펑 쓰는 오늘이 있기까지

커런트 워(2017)



귀가할 때 잠시 아파트 앞에 서서 내가 사는 공간을 지긋이 바라볼 때가 있다. 우리 동엔 110여 가구가 사는데 에어컨이 있는 집은 109가구. 태양광 패널이 달린 집은 세 곳이다. 이 풍경은 유일하게 에어컨이 없는 집에 산다는 개인적 뿌듯함과 더불어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음에도 전기를 쓸 수밖에 없는 죄책감을 동시에 드러낸다. 현대 사회에서 특히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전기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을 의미한다. 매일 집을 비울 때마다 멀티탭의 전원을 끄고 돌아와서 켜는 걸 반복하지만, 매달 고지되는 전기 요금을 보면 현실 자각 타임이 온다. 전기 없이 사는 건 힘들다.  


해가 거듭될수록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까지 겹치며 여름철 에어컨은 가정의 필수품이 됐다. 다시 아파트 앞에 서서 일사불란하게 맹렬히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를 바라본다. 열기가 겹쳐 아지랑이가 보인다. 개중엔 고장 난 건지 굉음을 내는 녀석도 있다. 시야를 넓혀본다. 우리 동 109개 실외기와 함께 옆 동 110가구의 에어컨 실외기가 눈에 들어온다. 뒷동 아파트의 실외기 부대가 또 다른 레이어를 형성한다. 또 현실 자각 타임이 온다. 다들 전기를 펑펑 쓴다.


더우면 덥고 추우면 춥던 시대는 지났다. 여름에 문을 열고 에어컨을 트는 상점이 수두룩하고, 겨울엔 난방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선풍기를 켜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이런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할까?


영화 <커런트 워>는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라는 두 천재의 발명이 그 열쇠였음을 알려준다. 우선 에디슨의 차례. 미국 뉴저지 멘로파크에 기차가 멈추고 신사들이 내린다. 초를 들고 걷다가 한 장소에 도착하자 조수가 초를 끈다. 칠흑같이 어두워진 세상. “점등”이라고 외치자 수십 개의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한가운데 선 에디슨이 묻는다. “백지 수표는 가져오셨겠죠?”


탄소 필라멘트 백열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세계 최초의 중앙발전소를 차리고 직류(DC) 기반의 전기 설비를 보급하며 떼돈을 벌고 있었다. 에디슨 전기조명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테슬라는 직류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전기가 필요한 곳 근처에 발전소를 지어야만 해서 대중적 공급이 힘들었다.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직류보다 더 효율적인 교류(AC) 방식의 기술을 제안했다 거절당하자 퇴사해 테슬라 전기회사를 차린다. 그 가치를 알아본 사업가 웨스팅하우스가 특허권을 사면서 직류와 교류 두 진영 간 치열한 전쟁이 펼쳐진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테슬라의 승리다. 가정집 옆 전신주 하나로 저 멀리 지방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서울에서 받아 쓴다. 집 근처에서 석탄을 때고, 댐에 가둔 물의 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할 필요가 없다. 쓰고 싶은 만큼 쓰고 돈만 내면 된다. 모든 집에 에어컨 실외기가 달린 까닭이다.


초를 켜고 살던 시대에 야간 활동은 제약이 컸다.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과 전기를 대중화한 테슬라 덕분에 이제 우리는 불야성에 산다.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을 보면 환한 불빛으로 빛나는 구슬 같다. 대한민국은 유독 밝다. 이 아름다운 밤 풍경의 대가는 기후변화다. 불볕더위가 심해지면 우리는 에어컨을 더 자주, 더 오래 돌린다. 집안은 시원해지지만,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는 지구 어딘가에 또 쌓인다. 빙빙 도는 에어컨 실외기 날개가 그 악순환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커런트 워, 지금 보러 갈까요?


최평순 / EBS PD


환경·생태 전문 PD입니다. KAIST 인류세 연구센터 연구원이고,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등 연출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