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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Aug 25. 2020

이요의 고단한 삶에 평안이 깃들기를

첨밀밀(1996)



아는 게 많은 이요(장만옥)와 아는 게 너무 없는 소군(여명)은 타지가 아니었다면 서로 마음이 통할 일이 없었을 사람들입니다. 상하이 토박이 소군과 광저우 출신 이요는 홍콩에서 만납니다. 돈이 제일이며 돈만을 믿을 수 있는 이요는 어리숙한 소군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가까워집니다. 소군은 알면서도 이요에게 속아줬고, 이요 역시 그런 소군에게 마음을 엽니다. 낯선 곳에서 함께 일하며 밥을 먹고 익숙한 언어로 이야기를 하며 감정은 차곡차곡 적립되지만 두 사람은 사랑이라 쉽사리 말하지 못합니다.


중국 본토에서 건너와 홍콩이라는 낯선 땅, 자유경제라는 새로운 체제에 적응해야 하는 고단함을 공유한 이들은 단순한 고향 사람 이상이었을 겁니다. 이요와 소군처럼 긴 세월을 건 인연을 만나보진 못해서 그들의 사랑은 잘 모르지만 이요와 소군의 타향살이에 대해서라면 잘 안다고 할 수 있죠.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를 지배했던 감정은 사실 외로움보다는 긴장이었습니다. 


이방인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늘 긴장 상태였죠. 촌스럽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사투리를 쓰지 않기 위해, 압구정동이 어디인지 모르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이요 역시 광둥어를 쓰고, 본토에서 온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덕분에 소군에게 "당신 스타일도 그렇고, 옷이랑 말투도 그렇고 엄청 홍콩스러워요"라는 말을 듣지만 이요와 소군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홍콩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요. 두 사람을 묶어준 것은 그런 동질감이겠지요.


이요와 소군은 고향을 떠나와 계속 떠돕니다. 상하이와 광저우에서 홍콩으로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그리고 그 사이ᅠ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요가 자신 있게 열심히 일하면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했던 홍콩은 어마어마한 부동산 가격으로 서민들은 언감생심 집을 사는 것을 꿈꿀 수도 없는 도시가 되었고, 저 역시 이제 고향에서 산 날보다 타지에서 산 날이 더 많아져갑니다. 그래도 영화 속 두 사람의 사랑만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은 것이 위로라면 위로겠지요. 


1986년 홍콩은 지금의 홍콩과 많은 것이 다릅니다. 당시의 홍콩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두고 사회 전반에 불안감이 감돌던 시기로,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등지로 이탈하는 원주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개혁, 개방 정책을 펴기 전인 중국 본토에 비하면, 여전히 홍콩은 '기회의 땅'이었죠. 


이요와 소군 역시 홍콩 드림을 꿈꾸며 본토에서 이주해왔는데 영화에서 그 홍콩 드림을 상징하는 것이 맥도날드입니다. 이요가 일하는 햄버거 가게는 자본주의와 자유경제의 상징과도 같죠. 열심히 일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환상을 파는 곳. 그 환상을 먹고 이요는 일을 하고 또 합니다. 투잡도 모자라 쓰리잡까지 뛰는 이요는 바쁜 와중에도 줄을 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군과 만납니다. 뜨거운 여름밤, 주변은 소란스럽고 낭만이라고는 한 톨도 캐내기 힘들지만 자꾸만 가까워지는 두 사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소군에게는 고향에 두고 온 약혼자가 있고, 홍콩에 아파트를 마련하려는 이요에게 연애는 사치입니다. 그래서 둘은 만날 때마다, 서로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친구임을 상기시키죠. 가끔 서로를 동무, 동지라 부르며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이방인임을 공유하는 것처럼 친구라고 부르며 서로의 죄책감과 거짓말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스스로에게도 속이며 예정된 파국을 자꾸만 유예시키는 연인의 안타까움은 인연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떤 건 살면서 딱 한 번 배우는 게 맞더라구요." 자꾸만 엇갈리는 인연 끝에 뉴욕으로 이주한 소군은 여자를 소개받으라는 제안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였다가 연인이었다가 이도 저도 아닌 관계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이요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며 그를 놓지 못했던 소군이 이요를 놓던 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닐까요. '시절인연'이라고 하죠.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이 불교 용어는 쉽사리 인연을 놓지 못하는 중생들을 위해 만들어졌을 겁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는데, 오는 시기를 놓치고 가는 시기를 붙잡았던 이요와 소군은 곁에 사람을 두고도 서로를 그리워했죠. 


[첨밀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특정한 시절이나 인연을 하나씩 품고 있다. 소군의 고모 로지는 윌리엄 홀든과 데이트했던 저녁을 평생 잊지 못하고 내내 복기합니다. 소군은 이요와 함께 했던 시절을 매일이 새롭고 재밌었다고 기억하죠. 이요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뒷모습만으로 소군을 알아볼 정도로 그를 늘 마음에 품고 있었구요. 하지만 그 시절은 어떤 식으로든 끝납니다. 고모가 죽고, 소군과 이요를 이어준 등려군이 세상을 떠난 것처럼. 그리고 소군이 이요를 마침내 마음에서 보내고 나서야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시작됩니다. 


놓아야 붙잡을 수 있는 건 사랑에도 해당되는 것인가 봅니다. 이요와 소군은 지금쯤이면 소군의 고모처럼 지긋한 나이가 되어있겠네요. 둘은 여전히 함께일까요, 아니면 또다시 서로 다른 곳을 헤매고 있을까요. 많은 것이 변해 버린 홍콩에 있을까요, 여전히 뉴욕에서 등려군의 노래를 듣고 있을까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오랜 시간 엇갈렸던 인연이 제자리를 찾고, 무엇보다 고단했던 이요의 삶이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첨밀밀, 지금 볼까요?


이지혜 /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더 많이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영화 속의 멋진 여성 캐릭터와 그보다 더 멋진 주위의 여성들에게서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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