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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Aug 28. 2020

낙원의 몰락, 하와이

디센던트(2011)



하와이는 낙원의 상징 같은 곳이다. 그곳에 살면 왠지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하와이 출신 작가 카우이 하트 헤밍스의 소설 <디센던트>에는 그런 구절이 나온다. 


“대도시에서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거리를 걸어 다녀도 아무도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거나 격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모두 하와이에 살아서 행운이라는, 여기가 지상 최고의 낙원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낙원도 뒈져버려라, 싶을 때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표정이 안 좋으면 길가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이 걱정해줄 정도라니, 역시 파라다이스다. 근데 저 구절에서 마지막 문장이 눈에 띈다. ‘낙원도 뒈져버려라…’ 참으로 시니컬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독백의 주인공 ‘맷 킹’은 조상이 물려준 대규모 하와이 땅을 소유한 변호사다. 


가정에 소홀한 채 성공 지향적으로 살아오던 어느 날, 아내가 수상 스키를 하다가 다쳐 뇌사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다. 아내에게 불륜 상대가 있다는 것, 상속받은 땅에 군침 흘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 등등. 주변을 돌아보니 가정은 어지럽고 세상은 이권으로 얽혀있다.


소설을 기반으로 한 동명의 영화에서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맷 킹이 마주하게 되는 지난한 일들과 하와이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카우아이, 오아후, 빅아일랜드 등 여러 섬이 등장하는데 각기 다른 풍광이 눈길을 확 끈다. 영화 속 주인공도 그렇게 느꼈는지 후반부가 되면 ‘이렇게 멋진 자연을 소유할 권리, 리조트 개발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개인에게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내적 갈등에 빠진다. 이 작품의 제목이 ‘자손’, ‘유산’이란 뜻의 디센던트인 이유이다. 


2012년 개봉한 이 영화를 보고 하와이에 환상을 갖게 됐다. 서울 촌놈인지라 ‘부곡 화와이’만 가보고 와이키키 해변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스크린을 넘어 전달되는 하와이 특유의 분위기는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그렇게 하와이 방문은 내 버킷리스트에 올랐다.


7년이 지난 2019년 다큐멘터리 촬영차 하와이를 갔다. 낙원으로서의 하와이 대신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해변을 찍기 위해서였다. 하와이는 북태평양 해류가 지나는 곳에 있어 해류가 싣고 온 쓰레기가 쌓이는 거점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라고 알려진 북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 GPGP의 입구라고 보면 된다. 그중 빅아일랜드의 카밀로 해변은 하와이 해변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탓에 해양 쓰레기가 집중된다. 


힐로 공항에 내려 해변으로 이동한다. 넘실대는 파도부터 지저분하다. 플라스틱 수프가 띠를 이루며 물살을 타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이 뭉친 상태로 바닷물에 의해 걸쭉해진 것을 플라스틱 수프라고 하는데, 플라스틱 건더기가 한데 떠 있는 게 정말 수프처럼 보였다. 절대 먹고 싶지는 않지만. 


시선을 돌리니 모래 위 흰색 변기 의자가 눈에 띈다. 형태와 색이 온전했다. 누군가가 앉아서 볼일 보던 플라스틱이 태평양 한복판에 도착해 있다. 행여 한국에서 온 쓰레기는 없을까 찾아보는데 금방 발견했다. 미원 공업용 빙초산 통. IMF 때 사명을 바꾼 식품회사 이름이 한글로 쓰여있다. 최소 20년은 넘었다는 뜻인데 바다 건너 여기서 만나게 되니, 반가운 마음보다 착잡함이 앞선다. 


“플라스틱 암석이다!”


해변을 청소하러 온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이 외친다. 검은색, 초록색 그물 조각과 흰색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화산암에 붙어 새로운 돌로 태어나있었다. 일명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Plastiglomerate), 쉽게 말해 플라스틱 암석. 빅 아일랜드에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화산이 있다. 마그마가 분출되면 마치 강물처럼 이곳 바다 쪽으로 흘러내린다. 그러다 해변의 플라스틱 쓰레기와 엉겨 붙으며 이 돌이 탄생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의 증거다. 


얼마나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으면 46억 년 지구 역사에 없던 신종 암석까지 생겨났을까. 낙원도 뒈져버리라던 맷 킹의 저주가 현실이 됐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낙원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하와이의 서퍼와 자원봉사자들은 주 단위로 모여서 해변 청소를 한다. 하와이 주의회는 세계 최초로 산호 보호를 위해 특정 성분이 들어간 ‘선크림 금지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하와이 바다와 해변에 쌓이는 쓰레기가 세계 곳곳에서 온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나온 쓰레기가 미국에서 나온 쓰레기와 함께 하와이를 덮고 있다. 그렇게 우리 또한 낙원을 파괴하고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8개의 섬. 이 유산을 인류는 과연 지킬 수 있을까.


[사진 설명 - 하와이 카밀로 해변에서 찾은 플라스틱 암석]



디센던트, 지금 보러 갈까요?


최평순 / EBS PD


환경·생태 전문 PD입니다. KAIST 인류세 연구센터 연구원이고,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등 연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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