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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즈하루 Jul 05. 2019

그냥, 듀크 엘링턴이면 좋지 않겠어요?

하루키로 읽는 재즈 3

그냥, 듀크 엘링턴이면 좋지 않겠어요?

듀크 엘링턴 [Such Sweet Thunder]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듀크 엘링턴(1899~9174)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이라는 건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듀크 엘링턴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재즈 애호가의 시디장에는 많든 적든 그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공작(duke)이라니 자화자찬이 심한 거 아냐? 빌리 스트레이혼이 없었다면 가능했겠어? (사실이 아니기도 하지만) 난 듀크는 별로야.”라고 말하는 애호가를 본 적이 없다. 


이제 막 재즈를 들으려는 사람에게도 듀크 엘링턴은 진입장벽이 낮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커튼 클럽>(1984)이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위플래쉬>(2014)는 듀크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좋다. 2013년 개봉한 미셀 공드리 감독의 영화 제목은 <무드 인디고>다. 원작 소설은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이지만 영어 제목을 ‘Mood Indigo’라고 붙였다. 공드리의 환상적인 영상에 ‘Mood Indigo’를 비롯해 ‘Chloe’, ‘Caravan’, ‘Black And Tan Fantasy’ 등이 흐른다. 듀크의 곡들은 영화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마치 ‘주문 제작’한 것처럼 영상에 녹아든다. 재즈를 사랑하는 감독들은 듀크 엘링턴을 좋아한다. 과연, 재즈 애호가라면 듀크 엘링턴을 좋아한다는 논리가 성립할지도... 


하지만 아무리 애호가라도 듀크 엘링턴이라는 이름에 고개를 저을 때가 있다. 마라톤에서 심장이 터질 듯한 하트브레이크 힐(Heartbreak Hill) 구간이 존재하듯 그의 음악에는 고비가 있는 것이다. 50년 이상 활동하며 남긴 방대한 자료와 앨범, 연주. 솔직히 너무 많다. 빌리 스트레이혼은 28년이나 듀크와 함께 하며 역사적인 명반을 만들고 재즈 스타일을 다듬어나갔다. 클라크 테리, 벤 웹스터, 폴 곤살베스, 조니 호지스, 지미 블랜튼 등 그의 오케스트라를 거쳐 간 명연주자는 또 얼마나 많은지. 


반전에 반전이지만, 그 헐떡이는 심장은 재즈를 듣게 만드는 기쁨이기도 하다. 영화 <위플래쉬>를 보면서 ‘Caravan’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게 뭐라고 저렇게 열심히 일까 싶었다. 그렇게 <리얼 북>이라도 독파하려면 몸과 마음(Body And Soul)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별 볼 일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노라니, 도전할 것이 있고 그걸 해낸다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큰 쾌감으로 흡수되는지 깨닫게 된다. 그런 감정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혹은 트럼 세트에 앉는) 의미를 찾아 헤매게 되는 것이다. 듀크는, 역시 대단하다. 




듀크 엘링턴의 ‘The Star-Crossed Lovers’


뭐랄까, 그냥 듀크 엘링턴이면 좋지 않겠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듀크 엘링턴을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엘링턴은 1939년 후반에서 40년대 전반에 걸친 ‘재미있고 세련된’ 엘링턴이다. 1957년 RCA에서 나온 <In A Mellotone>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In A Mellow Tone’으로 시작하는 B면을 더 좋아한다. 벤 웹스터, 쿠티 윌리엄스, 해리 카니가 솔로 하는 ‘Cottontail’, 바니 비가드, 듀크, 조니 호지스가 솔로 하는 ‘Rocks In My Bed’ 등이 수록되어 있다. 디테일한 취향이 애정에서 생겨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중하게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듣고 또 들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주로 장편에서 듀크 엘링턴의 음악이 흐른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1992)에는 1957년 앨범 [Such Sweet Tender]와 수록곡 ‘The Star-Crossed Lovers’가 메인 테마로 사용된다. 오케스트라 멤버까지 꼽아보면 <애프터 다크>(2004)에서는 ‘Sophisticated Lady’를 들으며 해리 카니의 권태로운 베이스 클라리넷 솔로를 언급하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의 주인공은 로렌스 브라운의 솔로가 독특한 ‘Do Nothing Till You Hear From Me’에 맞춰 휘파람을 불며 조니 호지스의 솔로가 있는 ‘Sophisticated Lady’를 듣는다. 


소설 외적으로는 <재즈 에세이>의 한국판 표지가 듀크 엘링턴(일본에서는 빅스 바이더벡)이며, 음악 평론집은 ‘It Don't Mean A Thing(if ain't got that swing)’을 차용한 <의미가 없다면 스윙도 없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표지나 제목을 정할 때 “뭐랄까, 그냥 듀크 엘링턴이면 좋지 않겠어요?”라는 느낌이다. 


듀크 엘링턴의 ‘스타-크로스드 러버즈’


‘The Star-Crossed Lovers’에 대한 하루키의 애정은 각별하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주인공의 말을 빌려, 유명한 곡도 아니고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래도록 그 곡의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이라는 책에는 이 곡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실려 있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가 출간된 후 음반 가게에는 ‘The Star-Crossed Lovers’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당시 일본엔  [Such Sweet Thunder]가 CD로 발매되지 않았고 이 앨범에 실린 것도 모를 만큼 알려지지 않은 곡이었기에 점원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점원은 “하루키 이 자식!”이라고 외쳤다고. 


이 곡은 듀크 엘링턴의 1957년 작품 [Such Sweet Thunder]에 수록되어 있다. 1956년 8월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는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영국 스트랫포드에서 공연을 펼쳤다. 당시의 실황은 [Live From The 1956 Stratford Festival]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페스티벌에서의 열광적인 반응은 듀크 엘링턴과 빌리 스트레이혼에게 셰익스피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은 3주 만에 곡을 쓰고 56년 3월부터 57년 5월까지 레코딩, 엘링턴이 58세가 되기 전 날 밤인 1957년 4월 28일 뉴욕 타운홀에서 초연하기에 이른다. 밥 먹고 곡만 썼다는(물론 거짓말이다) 시기지만, 가능합니까? 사실은 스트레이혼이 오래 전에 써놓은 몇몇 곡들을 개작해 수록한 것으로, 과장되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서곡에 해당하는 ‘Such Sweet Thunder’는 <오델로>를 모티프로 했다. ‘Sonnet For Sister Kate’는 <말괄량이 길들이기>, ‘Up And Down, Up And Down (I Will Lead Them Up and Down)’은 <한 여름 밤의 꿈>, ‘Madness In Great Ones’는 <햄릿> 테마다. ‘운명을 잘못 타고 태어난 연인들, 불행한 연인들’이라는 뜻의 ‘The Star-Crossed Lovers’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주인공인 나(하지메)는 ‘The Star-Crossed Lovers’를 들으며 조니 호지스의 알토 색소폰을 줄리엣, 폴 곤잘베스의 테너 색소폰을 로미오라고 설명한다. 그 곡에 자신의 운명이 담긴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러한 사실을 알기 전까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냇 킹 콜의 노래로 기억되는 소설이었다. 애초에 듀크 엘링턴의 [Such Sweet Thunder]는 눈길을 끄는 앨범이 아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배경과 해설이 더해지면 ‘과연 그렇군’ 하고 감탄하게 된다. 구성은 탄탄하고 연주는 화려하다. 듀크 엘링턴 작품에서 최고는 아닐지언정 충분한 가치는 있는 앨범이다. [Such Sweet Thunder]는 유독 솔로주자가 돋보이는데 멤버들이 연극을 하듯 배치되어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펫은 캣 앤더슨, 윌리 쿡, 레이 낸스, 클락 테리, 트롬본은 쿠엔틴 잭슨, 존 샌더스, 브릿 우드맨이 맡고 있고, 색소폰에 해리 카리, 테너 색소폰은 폴 곤잘베스, 지미 해밀튼, 알토 색소폰은 조니 호지스, 러셀 프로코프가 맡고 있다. 올뮤직에서도 “캣 앤더슨, 조니 호지스, 폴 곤살베스, 쿠엔틴 잭슨 등 기억할 만한 멜로디와 솔로를 위한 충분한 기회들이 채워져 있다”고 언급한다. 이렇듯 듀크 엘링턴은 셰익스피어를 기리는 방식까지도 철저히 재즈적인, 최고의 재즈 음악가였다.  (끝)



Duke Ellington [Such Sweet Thunder] Columbia/Legacy / 1957

Duke Ellington (p), Cat Anderson, Willie Cook, Ray Nance, Clark Terry (tp), Quentin Jackson, John Sanders, Britt Woodman (tb), Jimmy Hamilton (cl/ ts), Harry Carney (sax), Paul Gonsalves (ts), Johnny Hodges (as), Russell Procope(cl/ as), Jimmy Woode (b), Sam Woodyard (ds), Billy Strayhorn


1. Such Sweet Thunder 

2. Sonnet For Caesar 

3. Sonnet To Hank Cinq 

4. Lady Mac 

5. Sonnet In Search Of A Moor 

6. The Telecasters 

7. Up and Down, Up and Down (I Will Lead Them Up And Down) 

8. Sonnet For Sister Kate

9. The Star-Crossed Lovers 

10. Madness In Great Ones 

11. Half The Fun (Also known as "Lately") 

12. Circle Of Fourths  


(재즈피플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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