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즈하루 Dec 04. 2019

꿈속에 그리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하루키로 읽는 재즈 7

꿈속에 그리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빙 크로스비     


재즈피플이 있던 양재동에는 크로스비가 있었다. Crosby라는 초록색 글씨 아래로 고즈넉한 올드 팝이 흘러나오는 가게. 겨울 저녁, 따뜻해 보이는 가게 앞을 지날 때면 저 크로스비는 당연히 빙 크로스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꿈속에 그리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니까. 아직 그 자리에 있는지 찾아보니 지금은 양재천변 카페거리에서 유명한 와인 바가 되어 있다. 매주 일요일 밤에는 재즈 라이브도 한다. 10년 전쯤 남자친구와 함께 가봤을 뿐이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괜찮은 가게였습니다. 그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었으니 그것도 꽤 다행이죠.      


하루키 소설 속 빙 크로스비


빙 크로스비라고 하면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지만, 사실 나는 “썰매를 타고 달릴까~ 말까~”하는 심형래 코믹 캐롤과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듣고 자란 세대다. 빙 크로스비가 캐롤을 얼마나 멋들어지게 불렀는지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통해 알았다. 하루키는 유독 크루너를 좋아하고, 캐롤을 좋아한다. 그 교집합에 빙 크로스비가 있다. 초기작 <양을 쫓는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부터 2009년에 발표한 <1Q84>에 이르기까지 크로스비의 노래를 듣는 장면이 다섯 번이나 나온다. 그 중 한번은 ‘Danny Boy’고, 세 번은 꼭 집어서 ‘White Christmas’다. 


하루키 소설에서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는 한겨울 소복이 쌓인 눈처럼 고요함, 아련함, 편안함 같은 이미지다. 훗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양을 쫓는 모험>에서는 저녁때까지 계속 내리던 눈이 그치고 “다시 깊은 침묵이 안개처럼” 다가온 시각, ‘나’는 오토플레이로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를 스물여섯 번 듣는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는 주인공(나와 시마모토)은 계절에 관계없이 크로스비의 캐럴을 들으며 “그만큼 몇 번이고 들으면서 잘도 싫증내지 않았다고,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시마모토는 냇 킹 콜, 빙 크로스비, 로시니 등의 레코드를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을 놓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나의 길을 가련다(Going My Way)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나트라, 냇 킹 콜, 딘 마틴... 이들 가운데 연장자를 찾아낼 수 있으신지? 뻔한 질문이지만 답은 빙 크로스비다. 1903년에 태어난 크로스비는 함께 활동했던 프랭크 시나트라(1915년), 냇 킹 콜(1919년), 페리 코모(1912년), 딘 마틴(1917년)보다 열 살 이상 연상이었다. 마이크 가까이에서 속삭이듯 노래하는 크룬 스타일을 개척해 동시대 보컬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크루너라는 남성 보컬의 시초가 되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White Christmas’를 떠올려 보면 크로스비의 스타일이 얼마나 선구적이었나 감탄하게 된다. 2012년에는 마이클 부블레가 크로스비의 노래에 자신의 목소리를 더한 ‘White Christmas’를 발표했으니, 그 영향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빙 크로스비(1903~1977)의 본명은 해리 릴리스 크로스비(Harry Lillis Crosby)로, 빙이라는 이름은 만화 <빙빌 버글(Bingville Bugle)>에서 귀가 삐죽 솟아있는 주인공 빙고에서 비롯됐다. 7살에 한 친구가 “빙빌에서 온 빙!”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그게 싫진 않았는지 크로스비는 평생 ‘빙’을 사용했다. 축음기로 음악을 들으며 가수를 꿈꾸던 그는 폴 화이트먼 밴드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1931년에는 솔로곡 ‘I Found A Million Dollar Baby’가 히트했으며 이듬해 <빅 브로드캐스트(The Big Broadcas)>(1932)의 주연을 맡아 영화배우로까지 활약하게 되었다. 주로 코미디 뮤지컬에 연기와 노래를 선보였으며 영화 <홀리데이 인(Irving Berlin's Holiday Inn)>에서 부른 ‘Withe Christmas’로 아카데미 주제가상, 1944년 영화 <나의 길을 가련다(Going My Way)>에서 척 오말리 신부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어빙 벌린이 작곡한 ‘White Christmas’는 빙 크로스비의 ‘인생 곡’이다. 1942년 영화 <홀리데이 인>에서 크로스비가 직접 불러 히트했는데, 마스터 테이프가 손상될 만큼 많이 찍어내 결국 5년 뒤에 재녹음을 해야 했다. 1954년에는 곡명을 그대로 가져온 영화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에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이 외에도 골프 마니아라는 게 독특한 이력이다. 1947년 크로스비가 친구들과 함께 골프를 즐기고 자선파티를 열면서 시작된 페블비치 프로암은 현재 총 상금 780만 달러(한화 약90억 5천만원)의 대표적인 골프대회로 발전했고, 그렇게 골프를 사랑하던 그는 1977년 스페인에서 경기를 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모두에게 평온한 크리스마스 되시길


하루키는 유난스러울 만큼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를 좋아하지만, 빙 크로스비라는 음악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재즈 에세이>에서 좋은 싫든 멜 토메나 토니 베넷에 대해 쓴 것과는 조금 다르다. 게다가 <1Q84>에는 주인공 덴고와 편집자 고마쓰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인간의 영혼은 이성과 의지와 정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인가요?” 덴고는 물었다. “그건 플라톤이야.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예를 들자면 멜 토메와 빙 크로스비 정도로 달라. 아무튼 옛날에는 매사가 심플한 양상을 보였거든.” 고마쓰는 말했다.  


이런 고급(?) 비유야 글 쓴 사람만 정확한 의도를 알겠지만, 어쨌든 멜 토메보다는 빙 크로스비가 심플한 건 사실이다. 멜 토메(1925~1999)가 “도시 한 모퉁이의 깔끔하고 아담한 나이트 클럽, 모피 코트, 샴페인과 칵테일”(<또 하나의 에세이>)의 세계에 살았다면, 빙 크로스비는 2차 세계대전과 20세기 쇼 비즈니스의 물결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은 그 노래를 사랑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캐롤이 특히 그랬다. 완벽에 가까운 ‘White Christmas’ 외에도 프랭크 시나트라와 부른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영화 <나 홀로 집에> 삽입된 ‘Silver Bells’, ‘San’ 등은 캐롤 고전으로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은 1945년 데카에서 나온 [Merry Christmas]를 들었을 것이다. ‘Silent Night’로 시작해 ‘Adeste Fideles’, ‘White Christmas’로 차분하게 이어진다. 지금 소개하는 앨범은 2014년 게펜과 유니버설에서 리마스터링한 LP 버전으로, 흰 배경에 크로스비가 산타모자를 쓴 55년판 데카 10인치 LP 커버를 채택하고 있다. 곡도 계속 추가되어 ‘Christmas In Killarney’, ‘Mele Kalikmaka’까지 12곡을 수록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게 식상해서 새로운 걸 찾다가도 돌고 돌아 마지막에 손닿는 앨범이 이런 앨범이다. 그게 새삼 정겨워서 듣는다. 올해도 음악과 함께 평온한 크리스마스 되시길.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Bing Crosby 

[White Christmas] Universal / 2014


1. Silent Night

2. Adeste Fideles

3. White Christmas

4. God Rest Ye Merry Gentlemen

5. Faith Of Our Fathers

6. I`ll Be Home For Christmas

7. Jingle Bells

8.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9. Silver Bells

10. It`s Beginning To Look Like Christmas

11. Christmas In Killarney

12. Mele Kalikmaka         


(재즈피플 2019년 12월호)  


https://youtu.be/A9ibhWgMlso


매거진의 이전글 온 세계가 버드였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