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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즈하루 Jun 11. 2020

델로니어스 몽크가 있는 풍경

하루키로 읽는 재즈 10

델로니어스 몽크가 있는 풍경

델로니어스 몽크  


제법 오랫동안 재즈 쪽에서 일했지만 델로니어스 몽크를 첫째로 꼽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물론, 세상에는 몽크를 최고로 치는 사람이 많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대개는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혹은 키스 자렛, 브래드 멜다우의 쉼표 어디쯤 델로니어스 몽크의 이름을 넣는다. 그러면서도 “아, 델로니어스 몽크도 좋아하죠.”라며 순위를 따질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드러낸다. 


델로니어스 몽크가 있는 풍경


내가 아는 한, 델로니어스 몽크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가 재즈애호가이기도 하지만 몽크에 대해서만큼은 비치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과 고민하다 가끔은 첫 번째 자리를 내줄 수 있을 만큼 각별하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두 번, <1Q84>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각각 한 번,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두 번, 그렇게 해서 여섯 번이나 몽크의 연주가 흐른다. 에세이에도 <슬픈 외국어>, <하루키의 여행법>, <장수고양이의 비밀>부터 2016년에 출간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까지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몽크를 다루는 방식에는 변화가 있다. 1987년 작인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그저 몽크의 음악을 듣는다. 레이코는 “가끔씩 내가 재즈 피아노 흉내를 내면서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이런 게 버드 파웰, 이런 건 델로니어스 몽크야, 하고 말이야.”라고 말하고, 와타나베는 멍하니 몽크의 ‘Honeysuckle Rose’를 듣고만 있다. 그렇지만 30년이 지나 2017년 출간된 <기사단장 죽이기>에선 장황하게 설명한다. “나는 오래된 재즈를 들으면서 요리하는 게 좋았다. 델로니어스 몽크의 음악을 자주 들었다. 가장 좋아한 건 [Monk’s Music]이라는 앨범이었다. 콜먼 호킨스와 존 콜트레인이 참가해서 근사한 솔로를 들려준다.”라는 건 평론서에 나온 글이 아니다. 소설 속 문장이다. 또 “델로니어스 몽크는 그 기이한 화음을 조리나 논리에 맞춰 생각해낸 것이 아니야.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의식의 암흑 속에서 두 손으로 건져 올렸을 뿐이지.”라며 현학적인 문장도 등장한다. 혹자는 ‘재즈 카페 주인장 같은’ 강의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소설에 쓰인 이름은 모두 델로니어스 몽크로 통일)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하루키는 1991년 뉴저지 주 프린스턴 대학에 객원 연구원으로 상주하면서 미국 재즈를 깊숙이 경험한다. 재즈 클럽을 운영하며 쌓였던 애증을 풀어내고 나아가 40대가 된 그에게 재즈가 순수한 음악이자 삶의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몽크에게 많은 영감을 받은 것 같다. 몽크는 재즈라는 장르를 떠나 독특하고도 특별했으니까. 하루키가 처음으로 자신의 일과 신념에 대해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할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는 거야. 세상이 무엇을 원하든지, 그런 건 생각할 것 없어. 연주하고 싶은 대로 연주해서 너를 세상에 이해시키면 돼. 설령 십오 년, 이십 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야.’”  


하루키가 델로니어스 몽크를 이야기할 때 말하고 싶은 것


2014년, 무라카미 하루키는 꽤 오랜 시간 계획했던 델로니어스 몽크 평론집 <セロニアス·モンクのいた風景>(델로니어스 몽크가 있는 풍경, 국내 미출간)의 번역을 마쳤다. 표지는 안자이 미즈마루에게 부탁해두었다. 하지만 책이 나오기 얼마 전 안자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재즈 에세이>에서 함께 했던 와다 마코토가 표지를 맡게 되었다. 와다는 젊은 시절의 안자이 미즈마루가 델로니어스 몽크에게 담배를 권하는 모습으로 그를 추모했다. 뒤표지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몽크의 뒷모습이고 책날개에는 [Solo Monk]와 [The Unique Thelonious Monk] 커버 일러스트가 각각 그려져 있어, 만듦새도 좋은 책이다.    


이 책은 빌리 뱅가드의 오너 로레인 고든, 피아니스트 메리 루 윌리엄스, 프로듀서 냇 헨도프, 프로듀서 오린 킵뉴스 등 재즈계 저명한 인물들이 몽크에 대해 쓴 글이다. 하루키는 그들의 글을 번역하는 한편 서문과 후기를 통해 몽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첫머리를 투박하게나마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델로니어스 몽크의 음악에 숙명적일 정도로 끌렸던 시기가 있었다. 몽크의 독특함은 어디서 듣던 금방 그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북극에서 캐낸 단단한 얼음을 기묘한 각도로 다듬어가는 듯한 피아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것이야 말로 재즈’라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종종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십대 끝에서 이십대 초반에 걸친 일이다.”


후기에는 델로니어스 몽크 추천 앨범이 있다. 하루키는 ‘사적인 레코드 안내’라는 점을 강조하며 [5 By Monk By 5], [Underground], [We See Thelonious Monk], [Theolonious Monk Vogue], [Miles Davis All Stars Vol.1]을 소개한다. 1967년 작인 [Underground]를 제외하면 모두 하루키가 좋아하는 50년대 중반 작품들이다. 그는 숨김없이 말할 수 있다면, 어떤 앨범이든 상관없으니 듣고 싶은 음악을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거기에는 반드시 몽크가 있을 테니까. 


십대 시절의 어느 날을 떠올려본다. 문득 마음에 닿은 음악(소설)은 취향에서 신념으로 차츰차츰 삶을 물들여갔다. 지겨워져서 혹은 사는 게 바빠서 멀어졌다가도 돌아보면 그게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하루키에게 몽크가 그랬듯, 나에게는 하루키가 그랬다.  (재즈피플 202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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