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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즈하루 Jun 11. 2020

베니 굿맨처럼 스윙하며 살 수 있다면

하루키로 읽는 재즈 11

베니 굿맨처럼 스윙하며 살 수 있다면

베니 굿맨 

    

“식후에는 휴식을 취하고, 갖고 온 워크맨으로 니밋에게서 빌린 베니 굿맨 악단이 연주하는 섹스테트의 테이프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 단편 <태국에서 일어난 일>


코로나19(COVID-19)가 아니었다면 베니 굿맨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3월에 쓰던 원고는 레스터 영이었고 그 다음으로 버트 바카락이나 에롤 가너, 모던재즈쿼텟(MJQ)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코로나19는 예상보다 더 강하게 일상을 움츠러들게 했다. 6살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에는 재즈도 글쓰기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동물원의 사자처럼 무기력하고 찌뿌둥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그저 베니 굿맨처럼 스윙하며 살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베니 굿맨은 이름 덕을 봤을까?


사람들은 이름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기도 한다. 예전에 비해 개명(改名)이 쉬워져서 주위에 이름을 바꾼 사람도 몇 명 있다. 베니 굿맨이 이름 덕을 얼마나 봤는지 알 수 없지만 재즈에서 그의 위상은 ‘Good’을 넘어 ‘Best’까지 된다.


베니 굿맨(Benjamin David Goodman, 1909.5.30.-1986.6.13.)은 1909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892년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었는데 재단사로 일하며 열 두 명의 아이를 길렀다. 위인전에 자주 나오듯, 그의 아버지는 자난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더글러스 파크에서 열리는 무료 공연에 갈 만큼 교육이나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여기에서 음악에 빠진 9번째 아들이 바로 베니 굿맨이었다. 굿맨은 10살이 되던 1919년 두 명의 형제와 함께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시카고 고향악단원이자 클라리넷 연주자인 프란츠 쇼프(Franz Schoepp)에게 악기를 배워 13살에는 프로로 활동할 수 있는 노동조합원증(Union Card)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빅스 바이더벡, 벤 폴락 오케스트라 등을 거쳐 순조롭게 독립했는데, 1934년 콜롬비아에서 발표한 ‘Ain't Cha Glad?’ 등 여러 곡이 히트했으며 그가 출연한 NBC 라디오 프로그램 <Let’s Dance>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30년대 미국은 스윙으로 넘실거렸다. 트리오, 쿼텟, 섹스텟, 빅밴드 등을 넘나들며 스윙하는 굿맨의 주가도 올라갔다. 헐리우드 영화 <The Big Broadcast Of 1937>을 촬영할 즈음에는 이미 언론에서 ‘스윙의 왕(King Of Swing)’이라는 별칭을 붙여준 다음이었다. 1938년 1월에는 재즈 밴드 최초로 카네기홀 무대에 섰으며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던 ‘Sing Sing Sing’의 인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음악 외적으로 베니 굿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테디 윌슨처럼 실력 있는 연주자라면 흑백을 가리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오만하고 괴팍한 밴드 리더로 군림했다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베니 굿맨은 적당히 스윙하고 적당히 경쾌한 삶을 살았다. 인종차별, 약물중독, 여성편력 같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클래식과 재즈, 솔로와 리더를 넘나드는 실력을 갖춘 백인(유대인)이었으며, 명 프로듀서 존 해먼드를 비롯해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1942년 해먼드의 여동생 앨리스 프랜시스 덕워스와 결혼해 두 딸을 낳고 안정된 가정도 꾸렸다. 기록만으로 보자면 그야말로 평탄한 삶이었다. 1950년대 모던 재즈 시대에 들어서며 예전만한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그에 비관하기보다는 클래식을 연주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지막까지 연주했다.  

   

하루키가 보내는 에어메일 스페셜(Airmail Special)


베니 굿맨 음악은 <양을 쫓는 모험>이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은 초기작부터 2009년 발표한 <1Q84>까지 다섯 번 정도(적은 편은 아니죠?) 흐른다. 재즈 색채가 짙게 드러난 두 개의 단편 <토니 타키타니>와 <태국에서 일어난 일>에도 등장한다.   


1982년 발표한 <양을 쫓는 모험>에서 ‘나’는 벽장에서 낡은 기타를 꺼내 어렵게 줄을 조율하고 베니 굿맨의 ‘Airmail Special’을 연주한다. 빠른 템포의 스윙곡인 이 곡은 소설의 절정과 결말을 책임지는 음악이다. 뒤엉킨 사건과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장면에서 베니 굿맨 오케스트라가 ‘Airmail Special’을 연주한다. 기타리스트 찰리 크리스천이 함께 한 섹스텟 연주다. “찰리 크리스천이 긴 독주곡을 연주했다. 그는 크림색 소프트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이미지였다.” 


‘Airmail Special’은 1941년 베니 굿맨, 제임스 무디, 찰리 크리스찬이 쓴 곡으로, ‘Good Enough To Keep’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941년 베니 굿맨 섹스텟이 취입한 이후 스탠더드로 자리 잡아 엘라 피츠제럴드, 테디 윌슨, 리오넬 햄프턴 등이 연주했다. 1944년 발표한 베니 굿맨 섹스텟 앨범(Columbia C-10)에 수록되어 있지만 요즘 세상에는 베니 굿맨 앨범을 찾아듣기보다 유튜브나 스트리밍이 편한 게 사실이다. 그래도 앨범으로 꼽아본다면 켄 번즈(Ken Burns) 시리즈 정도는 어떨지. 베니 굿맨이 활동했던 벤 폴락 오케스트라 시절의 ‘Waitin' For Katie’를 시작으로 트리오 버전의 ‘Body And Soul’, 오케스트라 버전의 ‘Sing Sing Sing’, 섹스텟 버전의 ‘Flying Home’ 등 다양한 편성의 연주가 수록되어 있으며 페기 리가 부른 ‘Why Don't You Do Right?’도 들어볼 수 있다. 녹음 시기상 음질은 좋지 않지만 앨범의 흐름과 구성이 좋다.  


단편 <토니 타키타니>에서는 주인공인 토니의 아버지가 재즈 트롬보니스트로 등장한다. 미군 기지에서 이탈리아계 미국인 소위와 친구가 되어 보비 허킷이나 잭 티가든, 베니 굿맨 같은 연주자들의 음악을 흉내 내곤 한다. 아버지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모던 재즈 시대가 도래하고 프리 재즈가 시대를 풍미하고 일렉트릭 재즈 시대가 되어도, 그는 변함없이 옛날식 재즈만” 연주하는 사람이다. 이 소설의 재미있는 부분은 다음에 있다. 죽은 아내의 비싼 옷은 값도 제대로 쳐주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남긴 중고 레코드는 ‘오랜 옛날에 절판이 되고 만 귀중한 레코드가 많은 덕분에 꽤 값이 나갔다’는 사실. 하루키는 역시 재즈 팬이구나 싶다. 


까다로운(?) 취향의 하루키에게 베니 굿맨은 일단 합격점이다. 좋아하는 이유를 열거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깎아내리는 일도 없다. 그렇지만 클라리넷 연주자로서는 단호하게 바니 비가드에 미치지 못한다고 언급한다. 하루키는 <1Q84>에서 덴고의 여자친구를 내세워 이렇게 말한다. “저거, 저거, 잘 들어봐. 우선 처음에는 작은 아이가 내는 듯한, 와악 하는 긴 부르짖음. 놀란 건지 기쁨이 뻗친 건지 행복하다는 호소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게 유쾌한 날숨이 되어서 아름다운 물길을 구불구불 나아가 어딘가 단정한, 사람들 모르는 곳으로 매끈하게 빨려는 거야. 들어봐. 이렇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솔로는 그 사람(바니 비가드) 말고는 어느 누구도 못 불어. 지미 눈도 시드니 베셰도 피 위도 베니 굿맨도, 모두 다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자이긴 한데 이런 정교한 미술 공예품 같은 건 아무튼 못 해.” 이 문장을 읽고 ‘도대체 어떻기에?’라는 궁금증이 생긴다면 지미 눈, 시드니 베셰, 피 위, 베니 굿맨, 그리고 바니 비가드의 클라리넷 연주를 비교해 들어보시길.       


코로나가 일깨워준, 작지만 소소한 행복


SNS를 떠돌던 ‘코로나로 배운 것들’라는 글에서 ‘삶은 깨지기 쉬우므로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Life is so fragile handle with care)’는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그랬다. 코로나19가 일깨워준 것은 일상의 소중함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야말로 일찌감치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가꿔온 사람이 아니던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하루키처럼 소확행에 재즈를 조금 더 채워 넣고 싶다.   

   

Benny Goodman

<Ken Burns Jazz>(Collection)

Legacy / Columbia / 2000


1. Waitin' For Katie 

2. Clarinetitis 

3. It's Tight Like That 

4. Who?

5. Royal Garden Blues 

6. King Porter Stomp

7. Body and Soul 

8. Roll 'Em

9. You Turned The Tables On Me

10. Sing, Sing, Sing 

11. Don't Be That Way 

12. Avalon

13. Flying Home

14. Rose Room

15. Let's Dance 

16. Memories Of You

17. Benny Rides Again

18. Air Mail Special...     


(재즈피플 2020년 6월호)


https://youtu.be/rgMhdcHAu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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