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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즈하루 Jun 10. 2019

재즈를 잊은 그대에게 #5

나를 기억해줄래요?

#5 나를 기억해줄래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랜 팬이다. 하루키 대표작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보다는 [양을 둘러싼 모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 같은 초기 장편소설을 좋아했고 시간이 흘러서는 에세이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내 삶을 따라다닌 건 [상실의 시대]였다. 다 잊은 듯 살아가다가도 ‘나를 꼭 기억해달라’는 한마디 말에 되돌아가게 하는 것, 와타나베와 나오코, 미도리의 스무살이 아니라 불혹을 넘긴 레이코의 삶에 가까워지면서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겐 재즈였는지도 모르겠다.    




재즈 마니아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단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했다.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는 ‘피터캣’이라는 재즈 바를 운영했고 밤마다 식탁에서 끼적이던 작품이 제2회 군조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재즈’ ‘하루키’라는 검색어를 치면 무수히 많은 포스팅, 영상과 음악, 기사가 나올 만큼 하루키와 재즈는 관련이 깊다. 소설과 에세이에서 재즈 편력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포트레이트 인 재즈],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같은 독특한 재즈 책을 내기도 했다. 2005년에는 트롬본 연주자 커티스 풀러의 [Blues-ette]에 수록된 첫 곡 ‘Five Spot After Dark’에서 제목을 가져온 소설 [어둠의 저편(After Dark)]을 썼다. 주인공은 커티스 풀러의 연주를 듣고 트롬보니스트가 된 다카하시다. 하루키는 다카하시를 통해 재즈 연주자가 되기도 하고, 그의 연주를 듣는 감상자가 되기도 한다. 


“전기 피아노와 우드 베이스, 그리고 드럼의 트리오를 배경으로, 다카하시의 긴 트롬본 솔로 연주가 이어진다. 소니 롤린스의 ‘Sonny Moon for Two’다. 그다지 빠르지 않은 템포의 블루스. 괜찮은 연주다. 테크닉보다는 프레이즈를 쌓아가는 방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처럼 음악을 듣게 한다. 거기에 인품 같은 것이 묻어나오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음악 속에 푹 빠져 있다. 배후에서 테너 색소폰과 알토 색소폰, 그리고 트럼펫이, 때때로 간단한 리프를 넣는다. 참관하는 사람들은 연주를 들으면서 커피포트에 담긴 커피를 마시고, 악보를 체크하거나, 혹은 악기를 손질한다. 때때로 솔로 연주 사이사이에 갈채를 보내기도 한다.” 


하루키 자신이 직접 쓴 글 중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의 ‘음악에 관하여’가 꽤 흥미롭다. ‘일본사람이 재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빌 크로와의 대화’ ‘빌리 홀리데이 이야기’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처음, 그저 좋았던 그 마음


모두가 그랬던 그 시절, 나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 재즈를 알게 되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재즈를 조금씩 찾아듣던 중 호기심을 자극한 건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나오는 냇 킹 콜의 노래 때문이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냇 킹 콜이 부른 ‘South of the Border’를 듣는다. 그런데 냇 킹 콜은 이 노래를 취입한 적이 없다고 한다. 훗날 피아니스트 클로드 윌리암슨 트리오가 이 작품에 나오는 스탠더드를 연주해 앨범 [South of the Border, West on the Sun]를 발표했다. 첫 곡은 ‘South of the Border’, 마지막 곡은 자작곡인 ‘West of the Sun’로 마무리된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라는 소설 자체는 그저 그랬지만 음악이 남긴 인상은 컸다.  


하루키는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언덕 위의 아폴론]처럼 비밥 재즈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보여준다. 고집스러울 만큼 지난 40년 동안 글 쓰는 것 이외의 활동을 하지 않은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재즈에 대해서도 늘 마니아로 머물렀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는 베이시스트 빌 크로와의 인연으로 클로드 윌리암슨 트리오의 앨범 [Autumn in New York]에 쓴 라이너 노트가 실려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하루키 자신이나 독자가 꽤 오랫동안 재즈에 질리지 않았던 건 취향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처럼 재즈팬들의 마음을 울리는 표현이 나왔다고 믿는다.  


최근, 그저 재즈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있었다. 순수, 진심, 초심, 이런 구태의연한 단어를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 재즈를 들을 때 그저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으면 했다. 그 마음을 외면하면 길을 잃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재즈는 좋은 음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나 역시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50년 쯤 재즈를 듣고 싶다. 그것이 짧았던 연재의 두서없는 결론이다. 


(재즈피플 2018년 1월호, 최종수정 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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