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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즈하루 Jun 10. 2019

이 세상에
‘걸 프롬 이파네마’가 없었다면

하루키로 읽는 재즈 1

이 세상에 ‘걸 프롬 이파네마’가 없었다면

스탄 게츠 [Getz/Gilberto] 


한 애주가 친구가 말했다. “맥주는, 제철음식이야.” 겨울 맥주의 깊은 맛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여름과 겨울은 맥주 소비량에서부터 현저히 차이가 난다. 적어도 겨울에는 맥주가 떨어져 늦은 밤 편의점을 찾는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맛도, 무더운 여름 쨍하게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정한다, 맥주는 제철 음식이다. 


재즈는 다른 장르에 비해 계절을 많이 탄다. 빌리 홀리데이의 [Lady In Stain]라면 한 여름보다 습기 머금은 장마철에 듣는 것을 선택하겠다. 의외로 더운 날 듣는 것도 좋았지만 말이다. 여하튼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봄여름에는 보사노바처럼 상큼한 재즈를 듣고, 겨울에는 하드밥처럼 묵직한 재즈까지 챙겨듣는다. 그 사이의 가을에는 어떤 재즈를 들어도 좋다. 일 년 양식을 비축하듯 몸 안에 들어오는 재즈를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지금 바깥은 여름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한다. 마주보는 창문을 열어 바람 길을 만들어주고 스탄 게츠와 조앙 질베르토의 [Getz/Gilberto]를 튼다. 바람도 음악에 맞춰 보사노바 리듬을 탄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스탄 게츠를 즐겨 듣는다. 1980년 발표한 두 번째 소설 [1973년의 핀볼]에서 주인공은 게츠의 솔로가 있는 ‘Jumpin' With Symphony Sid’에 맞춰 휘파람을 분다. 알 헤이그(Al Haig, 피아노), 지미 레이니(Jimmy Raney, 기타), 테디 코틱(Teddy Kotick, 베이스), 타이니 칸(Tiny Kahn, 드럼)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밴드’가 연주한다고 덧붙인다.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2002)에는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가 낡은 레코드를 듣는 장면이 등장한다. 밥 딜런 [Blonde On Blonde](1966), 화이트 앨범으로 알려진 비틀즈의 [The BEATLES](1968), 오팅스 레딩 [The Dock Of The Bay](1968), 그리고 스탄 게츠 [Getz/Gilberto](1964)를 차례차례 듣는다. 다무라 카프카는 1986년 전후 태어난 소년으로 20년 전 음악을 ‘낡은 레코드’라며 듣는 셈이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2002)를 유물처럼 듣게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

  

게츠&질베르토의 ‘The Girl from Ipanema’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탄 게츠를 좋아한다. 존 콜트레인도, 벤 웹스터나 레스터 영도 좋아하지만 ‘스탄 게츠야말로 재즈(the Jazz)’라고 말한다. [재즈 에세이]는 스탄 게츠에 대한 열렬한 사랑 시(詩)다. ‘천사의 날개 같은 마술적인 부드러움’이라니... 동의하시는지? 


스탄 게츠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1963년·1982년의 이파네마]라는 7장짜리 짧은 소설을 썼다. 국내에서는 단편집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에 수록되었다. 소설은 ‘The Girl from Ipanema’의 노랫말로 독자를 이끈다. 스탄 게츠의 벨벳 같은 연주가 흐르고 형이상학적인 이파네마의 아가씨가 모습을 드러낸다. 언제나 열여덟이며 활달하고 부드러운 그녀. ‘The Girl from Ipanema’를 들으며 나는 먼 세계의 기묘한 장소를 헤매고 있다. 황당하지만, 그런 소설이 진짜 있다.   


이파네마는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남부에 위치한 해안가로, 조빔과 모라에스는 비키니를 입고 벨로주 바 앞을 지나는 아름다운 소녀 헬로 핀헤이로를 보고 곡을 썼다. “늘씬하고 까무잡잡한, 어리고 사랑스러운 소녀 이파네마 소녀가 걸어가네. 그녀가 걸어가면 모두들 ‘아...’ 그녀가 걷는 건 마치 삼바 같아. 시원하고 부드럽게 한들거리며 걷는 모습...” 의미를 몰라도(안다면 더더욱)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노랫말, 파도처럼 밀려왔다 멀어지는 보사노바 리듬, 꾸미지 않은 청아한 보컬과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연주. 이 세상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모여 소녀를 예찬한다. 맥주만 사람을 취하게 하는 건 아니다. 


이파네마 아가씨에 빙의해 잔뜩 긴장한 아스트러드 질베르토에 이어 솔로를 하는 스탄 게츠는 “이봐요, 아가씨. 내 손을 잡아요.”라는 듯 연주한다. 찡긋. 부드럽고 신사적이다. 마법처럼 온 세상이 다시 긴장을 풀고 아름다워진다. 스탄 게츠 덕분이다. 그가 연주하는 ‘The Girl from Ipanema’가 없었다면 형이상학적이든 형이하학적이든, 이 세상은 조금 덜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루키스트 안기자가 추천하는 스탄 게츠


스탄 게츠(1927-1991)는 1943년 잭 티가든 밴드를 시작으로 스탄 켄튼, 지미 도시, 베니 굿맨 등 굵직한 밴드에서 활동했다. 자신의 우상인 레스터 영을 닮은 풍성하고 부드러운 톤으로 ‘사운드(The Sound)’라는 별명을 얻었다. 


1952년 리더작 [Moonlight In Vermont]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지미 레이니와 알 헤이그 등이 참여한 쿼텟으로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50년대는 스탄 게츠의 젊고 힘 있는 연주가 빛나는 시기였다. 60년대 초 브라질 공연을 마치고 찰리 버드와 [Jazz Samba](1962)를 발표, 수록곡 ‘Desafinado’가 히트하며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와 그래미어워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앨범은 [Getz/Gilberto]로 이어지게 된다. 


스탄 게츠는 일찍 성공한 만큼 10대부터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되었지만, 음악에서만큼은 성실했다. 게다가 활동 기간도 길어 약 50년 간 108장의 리더작(위키피디아 기준)을 선보였다. 주로 프레스티지, 버브, 콩코드 등 메이저 레이블에서 활동한 덕분에 어떤 앨범을 들어야할지 모르겠다면 편집앨범들도 좋은 선곡과 음질로 만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에세이]에서 [At Storyville Vol.1](1951)을 추천한다. 과연 젊은 시절의 스탄 게츠라 할 만큼 박진감이 넘치며 리듬 섹션과도 멋진 조합을 들려준다. 좀 더 뜨거운 연주라면 1972년 작 [Captain Marvel]도 좋다. 하루키스트 안기자의 추천은 1992년 피아니스트 케니 배론과의 듀엣 앨범 [People Time]이다. 재즈에 열을 올리던 시절, 음반 사이트 포노(포노그래프)에서 오프라인 세일을 해서 서초동까지 갔었다. 이 앨범과 자코 패스토리우스, 웨더 리포트 등 여섯 장을 샀는데 다섯 장만 계산된 것 같아서 꽤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다. 다시 가서 계산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 뒤 알라딘에 합병되어 사라진 게 그것 때문은 아니겠죠. 하루키식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되어 미안했습니다. 


스탄 게츠라는 이름과 어디서 본 듯한 커버 때문에 집어든 앨범이어서, [People Time]이 내 손에 있을 때는 전혀 듣지 않았다. 2003년에는 들어도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앨범에 대해서는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음악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스탄 게츠가 사망하기 3개월 전인 1991년 녹음으로, 다소 벅찬 호흡에는 암 투병의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힘 빠진 스탄 게츠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이 세상에 아름다운 앨범 한 장을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한 진정한 ‘사운드’였다. (끝)


[Getz/Gilberto] Verve / 1964

Stan Getz (ts), João Gilberto (g/ v), Antônio Carlos Jobim (p), Sebastião Neto (b), Milton Banana (ds/ pandeiro), Astrud Gilberto (v)


1. The Girl From Ipanema 

2. Doralice 

3. Para Machucar Meu Coração 

4. Desafinado 

5. Corcovado (Quiet Nights of Quiet Stars) 

6. Só Danço Samba 

7. O Grande Amor 

8. Vivo Sonhando 


(재즈피플 2019년 6월호, 최종수정 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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