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즈하루 Jun 10. 2019

와타나베가 듣던 그 음악

하루키로 읽는 재즈 2

와타나베가 듣던 그 음악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1969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고,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열렸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한 해 동안 [In a Silent Way]와 [Bitches Brew]를 연달아 선보이며 재즈 록 시대를 예고했고, 전세계를 침공했던 비틀즈는 해체를 목전에 둔 위태로운 시기를 맞고 있었다. 인류는 평화를 노래하고 더 넓은 세상을 꿈꿨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거대한 물결 속에서, 누군가는 멀미를 느꼈다.  


갓 대학에 입학해 도쿄로 올라온 와타나베는 죽은 친구의 여자친구인 나오코를 만났다. 열여덟 살의 봄이었다. 하지만 따스했던 감정은 갑자기 끝났고, 대학은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로 혼란스러웠다. 9월이 되어 새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나오코에게는 연락이 없었고 대학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자리로 돌아간다. 가장 먼저 수업에 나온 건 동맹 휴학을 선동하고 주도했던 이들이었다. 환멸을 느낀 와타나베는 마치 하루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대학 생활을 무료함을 견디는 훈련 기간’으로 삼는다. 그리고 룸메이트 돌격대가 돌아오지 않는 기숙사 방 벽에 짐 모리슨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사진을 붙이며 ‘방안이 조금은 내 방다워졌다’고 말한다.  





어느새 비틀즈가 멈추고 재즈가 흐른다


[상실의 시대] 원제는 비틀즈 곡인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다. 음악 소설이라 해도 좋을 만큼 많은 곡이 흐른다. 50곡이 넘게 등장하는데 대부분은 비틀즈 곡으로,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비롯해 ‘Norwegian Wood’, ‘Michelle’, ‘Nowhere Man’, ‘Julia’, ‘Something’, ‘Yesterday’ 등 여지없는 명곡들이다. 이 소설을 읽고 비틀즈의 환청이 계속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오코의 방에서 들었던 여섯 장의 레코드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로 시작해 [Waltz for Debby]로 끝나는 것처럼 어느새 비틀즈가 멈추고 재즈가 흐른다.   


재즈로는 빌 에반스 [Wlatz For Debby]와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앨범 외에도, 델로니어스 몽크 ‘Honeysuckle Rose’, 게츠&질베르토 ‘The Girl From Ipanema’, 조빔의 ‘Desafinado’ 등이 흐른다. 오넷 콜맨과 버드 파웰처럼 하루키가 평소 좋아하는 연주자도 언급되지만 [상실의 시대]에서 재즈는 멜랑콜리한 감성과 맞닿아있다. 그런데 그게 몹시 자연스럽다. 소설의 장면과 그때 흐르는 재즈가 딱 맞아떨어져서 다른 곡을 떠올려보려 해도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소설이 그 음악을 찾아낸 것처럼. 나오코의 스무 살 생일에 들었던 빌 에반스의 [Wlatz For Debby], 와타나베가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며 듣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가 특히 그랬다.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는 일요일 아침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를 들으며 나오코에게 긴 편지를 쓴다. 그날, 와타나베는 몇 번이고 앨범을 들으며 비 내리는 정원을 멍 하니 바라본다. 빌 에반스의 서정적인 연주에 마일스의 뮤트 트럼펫이 이어지는 ‘Blue in Green’을 듣고 있을 것만 같다. 상상만으로도 낮은 탄식이 흐른다. 하루키는 이 앨범을 완벽하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Kind of Blue]는 트럼페터 마일스 데이비스가 1959년 발표한 앨범이다. 세션은 색소폰에 존 콜트레인과 캐논볼 애덜리, 피아노에 윈튼 켈리와 빌 에반스, 베이스에 폴 챔버스, 드럼에 지미 콥. ‘Freddie Freeloader’에서만 윈튼 켈리가 피아노를 연주했다. 뉴욕 컬럼비아 30번가 스튜디오에서 두 차례에 걸쳐 레코딩 되었는데, 59년 3월 2일에는 ‘So What’, ‘Freddie Freeloader’, ‘Blue in Green’, 그리고 4월 2일에는 ‘All Blues’와 ‘Flamenco Sketches’가 녹음되어 각각 A와 B면에 수록되었다. ‘Flamenco Sketches’를 제외한 모든 곡이 원 테이크로 녹음되었다. 


이 앨범의 가치는 기록으로도 입증된다. 2002년 미국 국회도서관의 내셔널 레코딩 레지스트리(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등재되었으며, 2008년 RIAA(미국레코드협회)에서 400만장 판매를 인증 받았다. 지금까지도 해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재즈 앨범이다. 그런데 존 스웨드가 지은 <마일즈 데이비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평온하고 유기적이며 최상의 즉흥성을 드러내는’ 이 앨범이 발매 과정에선 모든 게 엉클어졌다고 한다. 한 면은 녹음 기계의 오작동 때문에 잘못된 스피드로 녹음됐고, 재킷에는 연주자들의 이름 철자가 틀렸으며, 곡과 곡명이 바뀐 채 발매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재발매되면서 수정되었지만 완벽해 보이는 이 앨범도 애초에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좀 외로워졌을 뿐이에요


오후부터 내리던 비는 새벽이 될 때까지 굵은 비를 쏟아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걸 해내야 했던 하루였다. 내게도 비 내리는 날엔 멍하니 음악만 듣던 때가 있었다. 젊었다. 시간은 남아돌았지만 마음은 여유롭지 못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불안이 실체나 단어도 없이 흘러나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시간도 없고 마음에 여유도 없지만, 레이코의 나이에 가까워진 나는 비집고 나오는 불안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어쩐지 좀 외로워졌을 뿐이에요(It’s all right now, thank you. I only felt lonely, you know)” (끝)



[Kind of Blue] 1959

Miles Davis (tp), Julian ‘Cannonball’ Adderley (as), John Coltrane (ts), Bill Evans, Wynton Kelly (p), Paul Chambers (b), Jimmy Cobb (ds)


1. So What  

2. Freddie Freeloader 

3. Blue in Green

4. All Blues

5. Flamenco Sketches


(브런치 발행 20190610)


매거진의 이전글 이 세상에 ‘걸 프롬 이파네마’가 없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