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la Aug 01. 2022

비 오는 날, 분수 예찬

오늘도 길을 나선다. 그런데 어디선가 후두둑, 빗 소식이 들린다. 태풍이 오고 있다는데 어느새 우리 동네까지 비구름이 몰려온 모양이다. 폭염 속 땡볕 아래 걷는 일도 쉽지 않지만, 비를 뚫고 걷는 일도 만만치는 않다. 우산과 고무 슬리퍼를 신고 일단 현관문부터 연다.


처음엔 부슬부슬 흩날리는 비였다. 이 정도면 오히려 시원해서 걷기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공원에 들어선 순간,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의 크기가 달라진다. 샤삭샤삭 얌전하던 소리가 어느샌가 후두두득을 넘어 파바바박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흙바닥에 튀어 오른 빗방울과 진흙이 모조리 내 종아리로 들러붙는다. 약간 찝집하기도 하고, 따갑기도 하고.




여름이 되고 공원에 설치된 바닥 분수가 열일 중이다. 동네 아이들은 한낮이면 수영복을 갈아입고 분수대로 뛰어든다. 엄마들은 그 옆에 돗자리나 바람막이를 펴고 간식거리를 펼쳐 놓는다. 나 역시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러니까 코로나 전에는 꽤나 이런 종류의 물놀이 시설을 찾아다녔다. 물 좋아하는 딸들은 어디든 물만 있으면 신이 나서 하루가 모자라게 뛰어놀았다.


놀이터 바닥 분수를 보며 일본의 경제 침체기를 일컫는 '잃어버린 10년'처럼 아이들이 코로나 때문에 '잃어버린 3년'을 떠올려 본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데, 아이들은 이제 더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같이 분수에 뛰어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름 초4, 십 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산을 쓰고 상념에 빠져 지나가는데, 갑자기 바닥 분수에서 물이 솟구쳤다. 솔직히 비가 내려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솟아오르는 분수는 좀 이상한 풍경을 만들었다. 기괴하기도 하고, 한편 쓸쓸하기도 한 장면.


비를 맞으며 분수가 솟아오른다.

하늘에서 내리는 물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물이 만나,

다시 땅으로 사라진다.

그 후, 두 물이 함께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여전히 쏟아지는 비를 뚫고 작은 공원을 지나 큰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의 분수는 좀 더 크고 넓다. 초등 아이들도 즐길만한 사이즈다. 멀리서 보기에도 분수의 높이와 모양이 남다르다.

가까이 가보니 터널 모양 물줄기 속에서 아이들과 아빠가 함께 뛰어놀고 있다. 어차피 하는 물놀이, 비가 오는 건 아무 문제없어 보인다. 한쪽 정자에는 이렇게 비가 쏟아질 줄 몰랐는지 여럿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돗자리에 음식을 펴 놓고 먹고 있다. '이번 주 일요일에 물놀이 가자' 약속했을 부모와 들뜬 아이들에게 비 따위가 무슨 문제가 될까.





여름 한가운데, 초극성수기 시즌이다. 고속도로며 행락지, 쇼핑몰엔 사람들이 가득이다. 오히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뛰노는 분수 물놀이가 아이들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지 않을지 생각해본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주머니가 팍팍한 시기에 신난 물놀이를 함께해 준 좋은 부모기억되지 않을까.


나 역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분수 물놀이를 꽤 찾아 다녔다. 놀이터로 캠핑장으로 공원으로... 물만 보이면 뛰어들던 시절이었다.

이젠 깔끔 떨고 숙녀티 나는  딸들이 그때의 빗소리와 분수를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다.

아니 됐다. 생각해보니, 빗속에서 뛰고 물 튀기며 놀 때, 즐거웠던 건 딸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이 신이 났었다.


덕분이야, 나의 아가씨들.

그거면 충분해.





오늘은 빗속을 걸었고, 생각했고, 떠올렸고, 썼다. 다음엔 어떤 날씨와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앞으로도 쭉, 걷고 기록하자.



작가의 이전글 두 발을 디디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