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오랜 시간 속에서, 오랜 일들 속에서, 나는 더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은 맞지 않는 길로 가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시작에서의 난, 지금의 내가 괜찮을 줄로만 알았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래도 괜찮은 곳에 있다고 해주는 말로 지금의 힘든 나를 외면하고, 괜찮다고 내 자신에게 계속 말을 해왔다. 그리고 난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
잘못된 길은 없다.
고 생각하고 싶다. 여러분들이 어떤 길을 걷고 있던,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어렸을 적에 꿈꿔왔던 그 길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뿐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우리들은 분명 어떤 이유로 지금 서있는 곳에 있을 것이니까. 그 흐름을, 그 시간을, 그 시간의 우리들을 존중하고 싶다. 그 시간 속에서 분명 우리들은 그 속에서만 느끼고 만날 수 있는 무언가를, 누군가를 마주했을 것이고 그것들을 통해서만이 또 새로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니까. 지금의 나처럼.
나는 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의대생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글을 쓰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실습을 도는 병원에 있을 때 나는 거의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나에겐 가장 힘든 순간이다. 무의미함 속에 내가 놓일 때가 나는 가장 괴롭고 슬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지금 그렇다. 요가와 명상에 빠져서 지냈었는데, 몸의 상태가 너무 안좋아지면서 요가원에 갈 힘도 나지 않았고 명상을 할 수 있는 내 안의 힘이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다. 이 세상 속 붙잡을 무언가가 너무나 필요했다. 나의 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내 안의 의미를 느끼고 싶었던 또 다른 이기적인 마음으로 글을 적기 시작했다.
의대에 오기 전, 나는 불안했다. 불안했고, 불안했다.
그 때의 나는 항상 무엇인가에 쫓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인해서 계속 불안해했다. 그 때에도 나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미래의 불확실함이 불안했고, 무엇이던지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사로잡힌 부자유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나를 의대로 이끌었다. 아마 내가 지금 의대에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계속 불안해했을 수도 있다.
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항상 오늘의 내 하루가 의미있기를, 빛을 품기를 정성을 담아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그런데 의대를 다니면서 마주하는 세상이. 그 세상 속에 있을 때 무의미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 세상이 싫다는 것을 마음 속에서 꺼내어 글로 마주하는 것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대에 오기 위해서 나는 젊은 나의 마음을, 기운들을 썼다. 그건 아마 그 당시에 내가 갖고 있던 마음 속의 어떤 불안을 없애기 위한 나의 처절한 몸짓이었던 것 같다.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끝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버텼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학교에 오고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음에도 나는 두려움과 불안에 잠식당해 바보처럼 또 속고야 말았다. 의대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지금 내가 의대만 벗어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이 느낌도 허상일까.
이 이야기를 읽고 분명 누군가의 생각이나 행동의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이란, 나 또한 그러하듯 본인이 직접 깨닫거나 겪지 않으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걸 알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아주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일’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 또한 그 사람들만큼 아주 다양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분들에게는 조금이나마 길지 않은 내 삶이 조금의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