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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일상 그리고,

도쿄일상

by 우사기

여긴 내일까지 연휴에요. 계속 외출을 하다 오늘은 종일 집에서 보내는 하루였습니다. 밀린 빨래도 했구요, 완전히 개방된 베란다에 빨래를 널어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바람이 불면 혹시 날아가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생겨 빨래집게로 고정시켜두었는데 전혀 그럴 필요는 없었어요. (빨래집게도 얼마 만인지 몰라요) 바람이 불긴했지만 아주 잔잔해 빨래는 처음 널어둔 그대로 오후까지 자기 자리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답니다.

이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낮은 층고에 무한한 편안함을 느꼈는데, 오늘 빨래를 널려고 베란다 문을 열다 보니 베란다 창문의 커튼 길이가 저보다 10세티 정도밖에 높지 않은 거예요. 의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손을 가볍게 뻗는 것만으로 커튼을 교체할 수 있다는 말이랍니다. 지금 보니 베란다 창 높이 때문에 이 방이 더 아늑하게 느껴졌던 거 같아요. 아무튼 저는 좋아요. 작은 사이즈의 모든 것이요.

며칠 전 증명사진을 찍었어요. 언제부터인지 사진 찍는 것이 싫어져 웬만하면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없지만 증명사진은 필수이니 어쩔 수 없잖아요. 보통 증명사진의 유효기간이 6개월 정도 되나요? 이건 비밀인데요 예전에 찍어놓은 증명사진을 몇 년이나 아주 잘 사용했답니다. 여권이며 면허증이며 등등이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사진을 쓸 수 없는 때가 온 거예요.

사실 찍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그렇다고 꼭 찍으러 가야지 해서 그런 건 아니고 전철에서 내렸는데 눈에 증명사진 찍는 곳이 보여서 그래 지금이야 하고 들어간 거예요. 보니 메뉴에 100엔을 추가하면 피부 보정을 해준다고 되어있더라고요. 그런데 증명사진이 과하게 잘 나오거나 젊게 나와 면접을 보러 갔는데 실물과 달라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갑자기 걱정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그냥 표준으로 찍기로 했죠. 사진은 뭐 실물과 비슷했어요. 더 잘 나오지도 그렇다고 아주 이상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대충 만족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자기 전에 다시 보니 입술 선도 흐릿하고 밋밋한 게 피부 보정 효과를 줄 것 그랬다 살짝 후회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날 다시 갔어요. 그날은 메이크업도 조금 신경 쓰고 머신이랑도 익숙해져 그런지 시선도 잘 맞추고 전날보다 훨씬 순조롭게 촬영을 끝내고 프린트되길 기다렸죠.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으로요. 그리고 따끈따끈 방금 프린트되어 나온 사진을 손에 들었어요. 그런데 보정 효과가 있는 거랑 어제 찍은 표준이랑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거예요.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처음 사진이 과하게 잘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예뻐 보이고픈 욕망의 커다란 날개를 달았는데 급 우울해지는 거예요. 그래도 어떡하겠어요. 어쩔 수 없죠.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그렇게 마음을 추스리고 역을 나와 다른 역 쪽을 지나가는데 웬일 그곳에 새로운 증명사진 머신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가격은 큰 차이가 없는데 여긴 보정이 자동으로 되는 거 있죠. 자세히 보니 머신이 제가 사진을 찍은 거랑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제가 그랬죠. 도쿄 메트로가 좋다고요. 이 머신이 도쿄 메트로 역에 있었다니까요. (왜 이제 나타난거니)

그 앞을 한참 서서 새로 찍을까 망설이다 결국 새로 찍지는 않았어요.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초심으로 돌아가 그래 사진이 실물보다 과하게 잘 나오면 안 좋은 거지, 뭐 이렇게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돌아왔답니다. 이야기가 자꾸만 이상한 쪽으로 흘렀네요. 외모가 중요한 건 아니다 하면서 그래도 아직 예쁘게 보이고픈 마음이 어딘가엔가 조금은 남아있었나 봐요. 그나저나 저 많은 증명사진은 다 어디에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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