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처럼
역시 롯폰기 힐즈에서 바라보는 도쿄 타워가 좋습니다. 시간이 흐르니 그날의 숨 막히던 열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화창한 하늘만이 남았네요. 4박 5일 동안은 완전한 관광 모드로 도쿄를 달렸습니다. 관광이라고 해도 지나고 보니 반 이상은 쇼핑이 아니었나 싶어요. 돈키호테에서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낸 것도 처음이었답니다. 덕분에 새로운 아이템들을 얼마나 많이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분명 다시 혼자 와 장바구니를 가득 채울 생각이었는데 흐르는 시간과 함께 돈키호테도 어디론가 흘러가렸습니다.
시부야 스카이를 가고 싶다 했는데 아쉽게도 오후 시간 예약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도쿄 뷰는 롯폰기 힐즈로 정했어요. 시부야 스카이가 오픈을 하면서 한동안 전망대가 한산했는데 요즘은 여러 이벤트로 다시 활기가 생긴 것 같아요. 대신 조금 산만해진 느낌도 없진 않아요.
야경을 보러 가끔 왔었지만 온전히 늦은 오후부터 해 질 녘은 오랜만인 거 같아요. (어쩜 처음인지도 모르겠어요) 이곳에 올라오면 도쿄가 얼마큼 거대한 도시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쿄타워만이 주는 도쿄스러운 풍경에 늘 마음이 흔들리죠.
쇼핑으로 온몸이 피로한 탓도 있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해가 내려앉는 풍경을 바라보는 자체가 좋아 꽤 오랜 시간을 시선을 멀리 두고 도시를 즐겼습니다. 힐즈에서의 뷰는 도쿄타워가 강렬해 늘 그 기억만 남았는데 이번엔 후지산 쪽 풍경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긴자센, 가끔 운이 좋으면 레트로풍의 전철을 만나죠. 전체 긴자센의 5%라니 타는 것만으로도 행운인데, 아사쿠사역까지 가다 보니 이렇게 텅 빈 전철까지 담을 수 있었지 뭐예요.
아사쿠사에서는 오롯이 조카의 유카타 체험에 동참하며 완전한 짐꾼과 사진 기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포토 스폿을 찾아다니며 느낌적으로는 삼천 장 정도 찍어 준 느낌입니다. 해가 내려앉는 스미다가와 그리고 스카이 트리와 아사히 비루, 이곳에 오니 덩달아 여행 기분이 들어 오히려 신선했습니다. 인력거까지 탈 기세였는데 그건 어쩌다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귀여운 아사쿠사역 간판도 발견했어요. 왠지 [퍼펙트 데이즈]에서 아사쿠사 역에서 맥주 한잔하던 곳이 이쪽이 아니었나 싶은데 혼자가 아니라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만간 아사쿠사의 밤거리를 한 번 더 걸어볼까 합니다)
해가 지는 아사쿠사의 밤거리, 오랜만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추억이 없이 그런지 뭔가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아, 유카타를 입은 조카는 이곳에서도 돈키호테에 빠졌죠. 4층인지 5층인지 기억도 가물거리는 거대한 돈키호테가 또 한 번 나의 정신을 쏙 빼놓았습니다. 그날의 마지막은 몬자야키와 오코노미야키였습니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가 예상보다 아늑하고 맛도 좋았는데, 그때는 온몸에 기력이 다 빠져 사진을 남길 힘도 없었답니다.
짐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도시의 밤을 창문 너머로 즐기는 것도 꽤 운치 있었습니다.
아, 그중 제일 더운 날 하루는 해리 포터 스튜디오에서 보냈어요. 전철에서 내리면서부터 펼쳐지는 해리 포터 세계가 기분을 양껏 끌어올려 주었지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짜잔 망토 세트를 깜짝 선물로 꺼내니 조카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한국에서부터 챙겨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제가 한 일은 아사쿠사에서와 동일합니다. 한 손에는 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사진을 미친 듯이 찍어주었죠. 망토를 입혔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저도 저지만 딸을 위한 엄마의 희생 또한 대단하더라고요. 아무리 힘이 없어도 딸이 하자면 뭐든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놀랍기도 했어요. 엄마랑 딸이랑 둘이서 꼭 붙어서 걷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며 내심 얼마나 부러웠는지도 모릅니다. 4박 5일이라는 시간은 긴 듯 짧은 듯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돌아간 둘도 몸살이 났다지만 이곳에 남은 저도 몸살 직전이었답니다. 아아, 이제 맛집 투어만 남았군요. 그럼 다음은 맛집 이야기로 소식 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