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처럼
4박 5일 빠듯한 관광을 마치고 드디어 혼자가 되었습니다. 도쿄의 중심에서 벗어난 비스니즈 호텔로 이동했는데 자그마한 싱글룸이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고 조용해 마음에 들었습니다. 편안하고 홀가분한 느낌, 모든 것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어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무엇을 했을까요? 바로 빨래입니다. 세탁과 건조를 두 번씩 돌리고 나니 어느새 밤이 되었더군요.
그렇게 관광의 흔적들을 빼는 동안 잠시 콤비니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근처 식당을 찾을 기력도 없었죠. 콤비니에서는 오니기리와 야채 스틱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신라면도 하나 데려왔습니다. (4박 5일 군것질거리 치고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군요)
다음날은 종일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피곤한 몸이 빗속으로 빨려 드는 것처럼 얼마나 나른하던지 종일 꼼짝 않고 침대에서 뒹굴뒹굴했습니다. 자고 깨고 깨고 자고를 끝없이 반복했습니다. 가끔 침대에서 일어나 커다란 창가에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기도 하면서요. 분명 낯선 동네인데 느낌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푹 쉬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아주 느슨한 일정이었습니다. 밤이면 침대에 누워 리모컨을 돌리다 스르르 티브 속으로 빠져들기도 하고요. 예전엔 분명 티브 없는 생활이 좋았는데, 최근엔 일본을 오면 호텔에서 티브를 보며 뒹굴뒹굴하는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별것 아닌 것 같던 음악 프로가 왜 이리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혹여 반가운 누군가라도 나오면 또 그게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고 좋은지 모르겠어요.
비즈니스호텔은 가벼운 아침식사가 무료로 포함되어 있었답니다. 이 무료 아침식사가 은근 든든했다지요.
컨디션이 회복되자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보행자 천국이 되는 주말의 긴자는 여전히 활기에 넘쳤습니다.
그리운 샤브센도 들러주었습니다. 여긴 변함없었어요. 예전 코아 건물이 사라져 자리를 이동한 거랑 직원들의 유니폼이 바뀐 거 말고는요.
느릿하게 아자부다이 힐즈에도 발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전보다 조금 여유로워진 느낌이 괜찮았습니다.
오모테산도 힐즈도요. 자주 들리진 않지만 여행이 되면 이상하게 발걸음이 안쪽으로 향해요. 아, 사진을 깜빡했지만 맞은편의 헤이는 자주 들러요. 갖고 싶은 아이들이 가득이라 참새방앗간처럼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니까요.
날이 좋으면 뒷골목 산책이 당연한 코스로 따라오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많이 더워 제대로 된 산책을 만끽하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긴 힘들어 살짝 몇몇 숍들만 둘러보았습니다. (골목길 자그마한 버스 정류장 푯말이 여전해 반가웠어요)
오모테산도 하면 스파이럴을 빼놓을 수 없잖아요. 이곳은 전시나 이벤트도 볼거리가 많아요. 그래서 번잡한 걸 알지만 주말 나들이를 선호하기도 한답니다.
한동안 가지 않을 것 같던 신주쿠에도 다시 들렀습니다. 이유는 하나, 뎀뿌라 생각이 나서요. 시간을 잘 맞춰가면 런치 타임에도 긴 줄을 피할 수 있는 츠나하치.
츠나하치도 가격이 조금 오른 것 말고는 다행히 큰 변화는 없었어요. 밥맛도 그대로였고요. 아, 짐을 보관하는 바구니 위를 빨간 테이블클로스로 덮어주는 서비스가 추가된 것도 변화라면 변화겠군요. 감사한 변화요.
뎀뿌라가 나오면 그 이후는 스르륵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르겠어요. 뎀뿌라를 먹을 때는 절대 서두르면 안 됩니다. 방심하는 순간 입 천장을 데일 수가 있으니까요. 먹을 때는 잘 모르지만 다 먹고 나면 그제야 입 천장에 이상이 생긴 걸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이날 제 입 천장이 그랬답니다. 그래도 그리움을 가득 채워준 충만한 한 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