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상
아사바나나를 먹으며 시작하는 평범한 아침이지만 그리웠던 아침이다. 소소한 그리운 것들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요즘, 그리운 것들이 어느새 다 채워지면 그때는 완벽하게 텅 비는 게 아닐까 싶어 살짝 겁도 난다. 며칠 전 10월분 한 달 치 집세를 지불했다. 공식적으로 지금 머물고 있는 이 방이 10말까지는 온전한 나의 방인 샘이다.
그 무엇도 정해놓지 않은 어쩜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서 (그 자유로움이 사실은 두렵지만) 당당히 앞으로의 삶과 마주하려 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디에서 살 것인지, 이대로 혼자가 괜찮은 것인지. 이런 부류의 고민들에 이미 익숙하고 그래서 밋밋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
나의 도쿄 생활 필수품 문고본, 길어진 전철에서의 시간 덕분에 문고본의 책장이 앞으로 앞으로 술술 잘 넘어간다.
문고본 신간은 단행본이 나온 후 2년 정도 후에 나오는 것이니 완전한 신간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대신 문고본 베스트셀러는 신간은 아니어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 경우가 많아 화제성은 여전하다. 전철에서 읽을 문고본으로 먼저 베스트셀러 1위를 데려왔다. 나기라유 상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중간중간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것이 꼭 감동만의 이유는 아닐지라도) 아무튼 마음에 들어 다음 책도 나기라유 상의 소설로 골랐는데 둘 다 좋은 선택이었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던데 영화는 못 볼 것 같다. 이상하게 책으로는 읽어도 영상으로 상상하면 감정선이 너무 무거워 보기가 두렵다는.
참, 두 번째 책은 다른 작가의 작품 한 권과 함께 북오프(알라딘 중고서점 같은)에서 샀는데 거길 가니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2위였던 [国宝 국보]가 품절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검색해 보니 영화 평이 꽤 좋았다. 표지만 보고 대충 시대극일거라 생각했는데 가부키 배우에 관한 내용인 걸 알고 나니 급 읽고 싶어졌다. 읽고 싶은 책들이 줄 서 있다는 건 즐거운 일.
일상 쇼핑을 끝냈다. 소소하게 신나게 일상 쇼핑을 하고 내린 결론은 완전한 나의 집을 얻기 전까지는 최대한 짐을 늘이지 말자는 것. 온전한 주거지를 찾기 전까지는 집에서의 시간보다 밖에서의 시간을 더 즐기는 걸로.
그래서 밖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 찾기에 들어갔다. 9월 말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더위가 한 풀 꺾여 요즘은 걸을만하다. (늦여름 옷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하며 아직도 입고 있다는)
가방을 샀다. 가방 쇼핑 계획은 전혀 없었지만 편하게 쓴다고 가져온 가방에 얼마나 무언가를 많이 담고 다녔는지 가방 안쪽이 다 떨어진 거다. 안쪽이라 그냥 모른체했는데 문뜩 가방끈을 보니 거기도. 부끄러워 그 길로 컬러랑 사이즈만 다른 아이로 다시 데려왔다.
도쿄에 올 때 편안한 가방 하나와 조금 예쁜 가방 하나를 들고 왔는데 지금 나의 생활에는 실용적이고 크고 편안한 아이가 훨씬 유용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널린 에코백이라도 더 챙겨올 걸 그랬다.
한 달은 손에 물을 묻히지 않겠다는 결심은 잘 지키고 있다. 잘 챙겨 먹기도 하지만 대충 간단히 먹는 식사도 의외로 많다. 인간이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일인지 다시 한번 실감하며. 집밥의 소중함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지만 대신 목적했던 것만큼 분명 손은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지금은 부드러운 손과 집밥 중 무엇을 택하겠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집밥. 조금만 더 생활이 안정되면 작은 냄비랑 프라이팬부터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