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처럼
꿈같지만, 아라시야마에 살게 되었다. 교토 1년 살기.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교토 1년 살기로 새 출발을 해보기로 했다. 도쿄에서 지쳤던 몸과 마음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 한동안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던 이상한 의미 불명의 말들도 어느새 흐릿해지고 푹 쉬어서 그런지 얼굴에도 살이 다시 올라온 것 같다.
처음 도쿄를 갔을 때보다 교토로 왔을 때는 새 출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사라져 그런지 오히려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잠깐 새로운 쉐어하우스 이야기를 하자면, 가장 신선한 것은 주소에 텐류지(天龍寺)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이 들어가 있는 주소지라니,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집을 나와 5분만 걸으면 텐류지, 10분만 걸으면 도게츠교 또 다른 방향으로 10분만 걸으면 치쿠린. 현관문을 열면 비일상이 펼쳐진다. 대신 비일상적인 삶에는 일상적인 편리함은 부족하다. 대형 마트가 멀리 있고, 커피를 마시면서 느릿하게 책을 볼만한 조용한 카페가 없고, 교통이 조금 불편하고. 뭐 그 정도의 불편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만, 쉐어하우스에 들어온 첫날 아라시야마의 혹독한 겨울과 주택 삶의 리얼한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이곳에서의 삶이 예상보다 녹녹치 않을 것 같아 살짝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산책을 나서면 그곳엔 또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어느새 현실의 모든 걱정은 저 멀리멀리 날아가 버린다.
가을이다. 교토의 가을.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색을 입어가는 아라시야마의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교토는 월요일까지 따사로운 햇살에 청명한 바람의 날이 이어질 것 같다. 이럴 땐 다른 건 다 접어두고 가을 나들이다. 그동안의 게으름에 이야기 순서가 엉키어버렸지만 일단은 교토의 가을부터 즐기는 걸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토의 가을, 그 한가운데 지금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