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처럼,
아침 기온이 얼마나 떨어진 걸까, 일곱시 반쯤 쉐어하우스를 나왔는데 바람이 꽤 차가웠다. 집에 두고 온 많은 것들 중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을 말해보라면 목도리, 텀블러, 겨울 모자, 두터운 양말 그리고 오늘 아침 생각난 것 장갑. (아마도 머지않아 이 모든 아이들을 사게 되겠지만)
잊고 지내던 뼈 시린 일본 추위의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살아나는 요즘이다. 이건 날씨의 추위라기 보다 집 안에서의 추위를 말하는데 엿들은 이야기로는 지금 내가 있는 쉐어하우스는 한겨울이 되면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온다고 한다. 슬리퍼를 신어도 발이 시리다는데 겨울까지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일단 밖을 나오면 다른 세상이다. 기온은 떨어졌지만 햇살은 쨍한 날이라 일찍 텐류지 정원을 가보기로 했다. 정원 오픈 시간이 7시 반이라 했는데 입구에서 들어오는 이를 반기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니 더 이른 시간부터 문을 연 듯해 보였다. 청명한 하늘, 맑은 공기, 아름다운 단풍.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래 감사해야지.
텐류지의 정원은 예상만큼 사진에 잘 담기지 않았지만, 이른 아침 서둘러 온 카메라맨들 사이에 끼어 함께 셔터를 누르는 즐거움은 단연 최고였다. 서둘러 아침을 시작한 사람들의 좋은 기운을 나눠 받으며 나도 그들을 따라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집에서 가져온 것 중 가장 잘 가져온 게 있다면 그건 카메라. 외로운 나의 소중한 친구야.
교토의 단풍 시즌을 찾아보면 11월 중순에서 12월 초순으로 나온다. 예전엔 무심히 단풍의 절정이라 하면 온 세상이 울긋불긋 가을 색을 입은 걸 상상했는데 텐류지의 정원을 걸으며 유심히 들여다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미 겨울 색을 입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아직 가을 색이 옅은 나무, 한참 절정으로 빛나는 나무, 그 모든 나무들이 뒤섞여 계절의 경계선이 모호해진 풍경이 바로 절정이고 그게 가을인 것이다.
온 세상이 울긋불긋한 단풍의 최고 절정을 보고 싶어 해도 자연은 인간의 욕심을 그리 순순히 채워 줄 리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마주하는 모든 풍경이, 또 삶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정원이 7시 반에 문을 열면 본당은 8시 반에 문을 연다. 한 시간 정도 정원을 산책하니 콧물은 나고 손은 시려웠지만 그렇다고 그냥 갈 수는 없는 법. 발걸음은 자연스레 본당으로 향했다.
본당에 앉아 바라보는 고즈넉한 정원이 참 예쁘다. 사람이 없는 풍경을 담고 싶어 타이밍을 한참을 맞췄지만, 생각해 보면 이 멋진 세계문화유산을 혼자 독차지하겠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욕심 같아 그쯤에서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것도 그렇지만 다다미방을 내딛는 발이 어느새 동상에 걸릴 것처럼 시려 더 이상 발을 내디딜 수도 없었다. 춥다. 11월의 이른 아침 산책을 하려면 복장부터 무장해야 한다는 것, 잊지 말자.
손도 얼고 발도 얼고 콧물까지, 감기만 걸리지 않길 빌며 조용히 텐류지를 뒤로하고 따뜻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