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처럼,
아침 이불 속에서 미적거린 덕분에 도후쿠지[東福寺]의 오픈 시간을 놓쳤더니 교토 최고의 단풍 명소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역에서 내려 빠른 발걸음의 사람들 틈에 끼어 어디론가 흘러가듯 걷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 구름처럼 몽글몽글한 붉은 숲이 펼쳐졌다.
9년 전 가을 여행 때 도후쿠지의 단풍이 절경이라며 누군가 홀로 여행 중이던 내게 알려주었는데.. 이 풍경과 처음 마주했던 그때의 감동과 더불어 그 시절의 기억도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 세월이 무서울 만큼 빠르다.
도후쿠지의 또 하나의 절경인 츠텐교[通天橋]를 빼곡히 메운 사람들. 손을 최대한 위로 올리고 까치발을 하고 셔터를 눌러야 사람들의 모습까지 다 담긴다는 걸 아쉽게도 이제야 알았다.
츠텐교를 빠져나와 카이산도[開山堂]에 들어오니 느낌이 확 달라졌다. 압도적인 절경 다음은 툇마루에 앉아 카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을 내려다보며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얼마 전만 해도 교토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여전히 가을의 한중간이다
카이산도에서 바라보는 츠텐교 풍경 역시 압도적이다. 도후쿠지를 가득 채운 강렬한 가을이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이 아닌 산몽[三門]쪽을 택했다. 산몽을 빠져나오니 사람들의 모습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도후쿠지의 화려함을 맛보았다면 다음은 소박한 아름다움도 즐겨봐야지. 그렇게 타박타박. 산몽을 나온 나는 코묘인[光明院]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