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 Jul 12. 2024

엔지니어란 무엇인가

who is the engineer

엔지니어하면 역시 몽키스패너지



 공대 4년 엔지니어 7년, 도합 11년을 공학 뭐시기로 살았다.

공학 뭐시기로 밥벌어 먹고 살고 있지만, 사실 공학이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배우는 전공 과목 이름이 'engineering'으로 끝나니까 그냥 '아 내가 공학을 하는구나' 싶었고,

회사에서도 엔지니어 혹은 연구원으로 불리니까 '아 내가 엔지니어구나'하고 싶었다.


 근데 공학이 뭐고, 엔지니어가 도대체 뭘까?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했던 첫번째 노력은 대학교 4학년 시절 취업 준비를 할때다.

당시 예상 면접 질문 중, 과학자와 공학자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시오 라는 질문을 봤고, 혹시나 그 질문이 나올까 싶어서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을 읽으며 내 나름의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여담으로 축적의 시간에서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엔지니어와 과학자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라고 한 문장을 기억하는데, 8년 전의 나는 '오 그렇구나' 하고 동의했지만 지금의 나는 이 문장에 격하게 반대한다!!)


(여담 2 저때 엔지니어의 어원이 거중기 만들던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나왔다는 것을 배우고 지금도 아는 척 할때 종종 써먹는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면접 때 그 질문이 나왔다.


'지원자는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질문에 내가 한 대답은 이렇다.


'제가 생각하는 과학자는 현실 세계에서 물리 현상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엔지니어는 그것을 실생활에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뉴턴은 세 가지 물리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뉴턴은 과학자입니다. 그리고 엔지니어는 뉴턴이 찾은 그 물리 법칙으로 도르레를 만들고, 증기기관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엔지니어 입니다. '


내심 대답을 잘했다고 생각했고 이 자식 제법인데? 의 표정을 바랐지만, 면접관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저 질문에 계속 꼬리 질문을 했다. (물론 별개로 저 면접을 본 기업은 최종 합격했지 후훗)


 그 후로 엔지니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공학 뭐시기로 산 시간이 11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제는 엔지니어란 무엇인가의 정의가 필요한 순간이 왔다.

10년 넘게 정체성 없이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공학자, 혹은 엔지니어가 뭔지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이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공대생이 배우는 전공 과목들과 과학과 차이를 모르겠다.

물론 자연과학과로 가서 '순수 과학'을 배우면 또 다르겠지만, 사실 내가 대학생 시절 배운 과목들이 과학과 다른 걸 못 느꼈다.

그저 고등학교 때 배운 물리의 연장선인 것만 같았고, 4년 내내 주구장창 했던건 

    1.우리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물리 현상을 모델링한다.

    2.모델링으로 세운 방정식을 풀어서 해를 찾는다.


공대 전공과목에서 주구장창 하는 것 one of them... 그래서 이게 물리랑 다른게 뭔데 ㅠㅠ



2) 엔지니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의를 못하겠다.

보통 어떤 직업을 가지면 무슨 일을 하는지 명확하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고치고, 작곡가는 작곡을 하고, 영업 사원은 영업을 한다.


그런데 엔지니어는...?


엔지니어는 무엇을 한다!! 라고 정의를 못하겠다.

같은 회사내에도 엔지니어의 팀들마다 하는 업무의 종류와 성격이 다 다르다.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을 해보면 공학자는... 공학을 한다...


그래 공학을 한다. 그렇다면 공학의 정의는 무엇일까?

위키백과의 말을 빌려보면,


공학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수학물리학화학 등의 자연과학을 기초로 하고 있으나, 공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점은 있다. 어떤 현상을 눈앞에 두고 자연과학도는, “이 현상은 어떻게 된 것 일까?”나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라고 하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상태의 이해를 추구하는 것에 반해, 공학은 '어떻게 하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나 물건을 현실에 만들 수 있을까'를 추구하는 점이 있다. 어쩌면 '어떻게 하면 목표로 하는 성과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고 하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 said by 위키백과


(뭐야 내가 면접장에서 한 답변이 거의 맞잖아??)


근데 사전적 정의 말고, 결국 내가 엔지니어 7년하고 깨달은 엔지니어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누군가가 좋은 엔지니어인가'를 평가할 때 지표처럼 쓰이는 말이 있다.


'저 사람은 엔지니어가 아니고 과학자야' 


그리고 이 말은 엔지니어로서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을 뜻한다.

과학자면 좋은게 아닌가? 우리가 공대에서 주구장창 배운게 과학과 수학 그 비스무리한 것들을 했는데, 과학자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그렇다면 엔지니어는 무엇인가


과학자는 물리 현상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발견을 '논문'을 통해 세상에 알린다.

공학자는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product'를 통해 세상에 알린다. 


그래서 엔지니어들 중에 허무 맹랑한 소리하는 사람들, 지금 우리 상황에 맞지 않는 논문들 가져와서 이거 한 번 해보자고 떼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엔지니어가 아니고 과학자야'라는 말을 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 문제 해결이라고!


물론 공학자 중, 학교에 있거나 회사의 완전 연구조직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선뜻 이 말에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리느냐 차이가 날 뿐이다. 공학의 영역에 있는 한 그들의 논문과 선행연구도 5년 후, 혹은 더 먼 미래에 이 기술로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엔지니어는 product 잘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수학과 과학을 조금 곁들인,


엔지니어의 본질은 product 잘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product로 결국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런데 가끔 엔지니어 중에 '수학과 과학', 'state of the art'에 꽂힌 엔지니어를 종종 본다.


이 문제는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엔지니어들의 가방끈이 길어지면서 발생한다.

엔지니어들의 가방끈이 길어지다 보니, 보다 더 복잡한 수학으로 모델링된 제품, 최신 논문에서 나온 제품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래서 가끔 우리에게 허용된 리소스에 맞지 않는 복잡한 모델을 적용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하고,

학계에 발표된 따끈 따끈한 '최신 논문'에 꽂혀 이 논문을 적용하는 것에 혈안이 되곤 한다.


물론, 엔지니어로서 더 발전하고 기술의 최전선에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칭찬하나, 이는 엔지니어의 본질이 아니다. 


의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다. 

최신식의 수술방법이 나와서 환자에게 적용하고 싶은 마음은 옳다. 하지만 포커스가 '더 최신식의 수술방법'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환자의 상황이 '이 최신의 수술방법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어야 한다.


엔지니어도 똑같다. 최신의 기술을 적용하는 이유는 '그 기술이 현재 우리의 제품에 적용하면 더 좋기 때문'이어야 한다.


다시말해, 엔지니어는 논문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논문에 발표된 내용은 기술 진보에 이바지하는 훌륭하겠지만, 그 논문에 발표된 내용이 실용적인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엔지니어에겐 크게 의미가 없다.


논문에 소개된 기술을 구현하려면 product의 가격이 올라간다. 

그럼 그 가격을 지불할만큼 우리의 제품의 성능이 월등히 좋아졌는가?

(이 기술 써서 성능이 2배 좋아지는데, 가격은 4배 비싸지면, 과연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대답을 하지 못하면 냉정하게 돌아설 줄 알아야한다. 우리는 엔지니어니까!


이 글을 끝맺으며,

내가 지금 다루는 기술이 10년도 더 된 오래됐다고 하소연 하는 엔지니어에게,

최신 논문을 구현하지 못한다고 하고 하소연하는 엔지니어에게,


지금의 SpaceX가 있기까지 견뎌야 했던 세번의 실패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 번째 실패는 엔진의 연료 누출 (로켓을 오래동안 세워뒀던 바다 바람 부식 때문에 그렇다.)

두 번째 실패는 진동의 문제

세 번째 실패는 1단과 2단 분리 시 충돌 (이 때 2단 점화 시점에 3초 정도만 더 간격만 줬으면 됐다.)


이 세 번의 실패가 과연 최신의 논문 구현을 못해서였을까?


세상을 바꿀 엔지니어링 기술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을지 모른다.

엔지니어의 머리 위가 아닌 발 밑에 있을지도 후훗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