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의 사적인 혼밥일기
좋아하는 아침밥이 있냐고 묻는다. 아침밥을 챙겨먹지 않는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럼 질문을 살짝 바꿔본다. 그리워하는 아침의 모습이 있나요. 당신은 어떤 식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가요. 당신이 맞이하는 아침의 장면에는 어떤 음식이 자리하고 있을까요.
누구는 정갈한 한 상을 그리워할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하얀 쌀밥과 따뜻한 미역국. 그리고 한쪽에는 소박하게 담긴 계란말이와 오징어젓갈이 보인다. 이런 아침밥을 생각하면 ‘먹고 싶다’ 대신 ‘그립다’는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미역국의 맛보다 누군가가 차려주었던 미역국의 슴슴한 간이 떠오를 것이고 계란말이에 양파를 넣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귀찮아도 항상 양파를 넣어주던 그 누군가가 떠오를 것이다. 밥을 그리워했던 그는 사실 밥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침밥에 대한 로망을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잘 구워진 바삭한 크로아상과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혹은 신선한 양상추나 토마토 등을 썰어넣고 마지막에 삶은 계란 한 쪽을 살포시 얹은 한끼 샐러드.
도통 아침밥을 챙겨먹지 못했다. 알람을 10분씩 미루고 미루다 눈을 뜨면 출근 준비로 바빴다. 아침에 부족한 것은 시간도 그랬지만 마음의 여유도 그랬다. 작년에 나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인턴으로 회사를 다녔다. 처음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모든 것이 벅차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끝내야 하는 것이 벅찼고 또 그 시간 동안 어찌해서 내놓은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또 벅찼다. 대학생 때는 자신감이 넘쳤던 나 자신이 회사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을 겪어야 했다.
출근하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하루 중에 그나마 기대하는 시간이 있다면 점심시간이 그랬다. 직장 선배들과 함께 매일 역삼동 주변의 식당들을 돌았다. 돈까스 집은 항상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즉석떡볶이 집은 매콤한 맛이 부족해서 언제나 조금씩 아쉬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쭈꾸미 비빔밥을 파는 곳이었는데 쭈꾸미 비빔밥을 주문하면 큰 접시에 1인당 8천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양의 쭈꾸미가 담아져 있었다. 각자 쌀밥이 담긴 널찍한 그릇에 쭈꾸미와 콩나물, 무채를 올리고 김가루를 뿌린 뒤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 바퀴 돌린 후 사정없이 비비면 완성. 쭈꾸미 양념은 꽤나 매웠는데 그래서 그런지 쭈꾸미 비빔밥을 우적우적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다. 밥 먹을 때는 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가끔 같이 먹는 선배님들이 일 얘기를 꺼내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사장님이 음식을 내오면 ‘감사합니다’는 말을 살포시 외치며 일적인 대화는 그걸로 끝날 수 있었다.
점심 메뉴는 매일같이 화려했다. 두툼한 돈까스 정식. 쭈꾸미 비빔밥. 비빔냉면과 고기만두. 일본식 대창 덮밥. 텐동도 먹었지. 기타 등등.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그 음식들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점심시간 1시간은 무척 짧았다. 회사 건물을 나와 음식점에 도착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보통 2~30분은 걸렸다. 회사로 복귀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밥 먹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래서 보통은 허겁지겁 먹었다. 밥 먹으면서 일 생각은 안 했지만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시간은 계산해야 했다.
올해 1월, 인턴 생활이 끝났다. 지금은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전보다 여유를 갖게 되면서 스스로 아침밥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아침밥의 형태는 매일 다른데 요즘 특히 꽂힌 메뉴가 있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1화에서 나온 ‘네꼬맘마’라는 음식이다.
만드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포슬포슬한 쌀밥 위에 가츠오부시를 올리고, 간장과 참기름을 반숟갈씩 뿌려주면 완성. ‘네꼬맘마’는 직역하면 고양이 밥이라는 뜻인데 ‘간단히 먹는 밥’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또 지역마다 그 형태가 다르다고 한다. 심야식당에서 주인공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네꼬맘마를 먹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먹기로 결심했고 실제로 맛도 있었다. 찰기가 있는 밥알과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가츠오부시, 거기에 미묘하게 포개지는 간장의 짭조름한 맛.
한 숟갈 먹을 때마다 천천히 꼭꼭 씹었다. 간장을 아주 조금 뿌렸기 때문에 그 은은한 맛을 발견하기 위해선 꼭꼭 씹으며 오로지 음식에 집중해야 했다. 그러다가 간장 맛이 희미하게 느껴지면, 어느새 나도 드라마 주인공과 같은 모양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꼭꼭 씹으면서 생각했다. 하루하루가 벅찼던 작년의 가을과 겨울,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쳤던 걸까. 첫 사회생활에 당황했던 나를 계속해서 몰아세웠던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내가 내 손을 잡아주는 방법을 알아야 했던 건 아닐까. 허겁지겁 해치웠던 비싼 점심 메뉴들이 어떤 맛이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정신없이 일하면서도 스스로 왜 그렇게 우울하고 힘들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으려 했다. 아마 무서워서 그랬을 거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만 같은데, 뒤를 돌아보면 그대로 멈춰버릴 것만 같아서.
네꼬맘마 같은 취준생활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꼭꼭 씹어야 숨은 맛을 알아차릴 수 있듯, 내 감정을 천천히 살피는 일에 소홀하지 않기로. 소박하고 고담한 네꼬맘마처럼 외면보다는 내면을 단단히 다져가는 시간을 보내기로. 그렇게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