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주의 문장수집
#01
스스로 나의 장르를 '잡문'이라 말할 때 그것은 자기비하도, 겸손도 아닌 단단한 자신감이 된다고. '잡스럽다'는 것은 반듯하게 그어진 경계나 선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고.
-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中
해가 바뀌는 것을 나는 조금 늦게 알아차리는 편이다. 1월 1일은 12월 31일과 똑같이 춥고 쌀쌀하니까. 그래서 변화를 체감하기가 어렵다. 4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새해를 반긴다. 문을 나서면 보이는 초록빛 풀들. 햇빛에 '따스하다'는 말을 붙일 수 있는 날씨. 두툼한 패딩에 비닐을 씌우는 행위. 채도 짙은 봄하늘의 파란색.
올해, 2021년은 유독 낯설다. 2021이라는 숫자보다는 '20대 후반'이라는 낱말이 낯설고 어색하다. 20대 후반이 그 전의 시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의 단어로 나를 설명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 예전엔 이름과 함께 나의 취미,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등이 내 소개의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OOO'이라는 직업을 붙여서 'OOO+내 이름'으로 나를 말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직업은 곧 나를 정의하는 방법의 전부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에게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직업적으로는 마케터이자 때로는 브런치에 에세이를 쓰는 사람. 혼자 카페에서 조용히 책 읽기를 좋아하다가도 주말에는 친구들과 이태원 232 바에서 디스코 음악을 들으면서 칵테일 마시는 걸 즐기는 사람. 시끌시끌한 자리를 좋아하면서도 일주일에 하루는 꼭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사람.
이연실 작가는 <에세이 만드는 법>에서 '잡스럽다'는 말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고 바꾸어 말했다. 만약 내 인생의 장르를 스스로 '마케터'가 아닌 '잡스럽다'고 정의한다면, 그것은 무엇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아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단단한 소개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서 다짐해본다. 스스로 직업에 갇히지 말자. 새하얀 도화지처럼 언제나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남아있자.
#02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을 무서워한다. 순서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 한정원 <시와 산책> 中
지레 겁을 먹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 순간들에는 하나같이 낯설음이 묻어있었다. 낯설음은 항상 질문을 들고 다닌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못 하면 어떡하지?', '내가 이걸 하는 게 맞을까?' 같은 의심으로 가득한 질문들. 이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는 방법을 모를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여러 순간들이 떠오른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 직전, 지금 다니는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자소서를 쓰던 날, 첫 사회생활이 막연하게 두려워 포기할까 말까 고민했던 작년의 첫 출근날 아침 등등. 이 모든 순간에서 결국에는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의심 가득한 질문들에 답을 내리지 않고 일단 부딪혔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태도를 지키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리고 과정에서 잘 모르는 것들로 인해 두려움이 생긴다면, 그 두려움을 안고서 일단 도전해보기로. 시도한다는 것의 중요함을 잊지 말기로.
#03
어떤 소리는 색깔로 들린다. 특히 사람의 목소리에는 거의 항상 색깔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목소리들이 한데 뭉쳐서 새까맣게 된다.
- 박서련 <더 셜리 클럽> 中
사람의 목소리에는 색깔이 있다는 말. 그렇다면 내 목소리는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을까. 오직 나만 그것을 모를 것이다. 내 목소리는 나에게만 다르게 들린다. 우리가 녹음된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어색함을 느끼는 것처럼 내가 상상하는 나의 목소리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나의 목소리에는 간극이 있다.
내 목소리가 어떤 색깔인지 알 수 없겠지만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색깔은 있다. 초록색이면 좋겠다. 편안함을 주는 색깔이니까. 나는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04
어느 프랑스 인류학자는 말했다. 인간의 자아는 나이들어감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젊은이의 영혼을 지닌 채 살아가는 비극적인 운명 속에 놓여 있다고.
-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中
다소 빠른 속도로 20대를 보내고 있는 지금, 조금 먼 미래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다. 30대를 지나 40대, 50대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 때 나는 어떤 일에 슬퍼하고 어떤 일에 기대하고 있을까. 혹시 '기대'라는 것을 아예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자아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젊기를 바라는 것에서 비극이 발생한다고, 이 문장은 말한다. 천천히 곱씹어본다. 다른 관점에서는 비극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가 떠오른다. 어떤 영화를 재밌게 본 친구가 '아직 안 본 사람이 부럽다'는 말. 그 영화를 보기 전에 가졌던 호기심, 그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경이로움을 다시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말이겠다. 그렇다면 늙어서도 이러한 호기심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젊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니라 축복이 된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 나이에 갇히지 않는 젊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