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주의 문장수집
#01
맥주를 안 마시면 손이 떨린다든지 잠을 못 자서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그 시간이 좋아서다. 책상 위 전등을 켜고 노트북을 열어 전원 버튼을 누르고 진공관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맥주 캔 뚜껑을 열 때, 딱 소리와 함께 맥주 향이 맡아질 때, 투명한 유리컵에 맥주를 따를 때, 거품이 차올랐다가 꺼지는 모양을 지켜볼 때,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켠 뒤 화면이 켜진 노트북에서 작업 중인 파일을 불러올 때 나는 행복하다. 살아 있다는 감각에 대한 욕망이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으려는 욕망을 이긴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술과 농담> 中
얼마 전 LP 플레이어를 구매했다. 좋아하는 가수인 PREP의 'Futures' 바이닐도 구매했다. 그 날은 유감스럽게도 '이제 혼술은 그만해야지'하고 스스로 다짐했던 날이었다. 집에 도착하고 샤워하고 나오니까 저녁 9시. 내가 애정하는 트랙인 'Cheapest Flight'를 바이닐로 들을 수 있다니! 기대감이 부푼 채 나는 LP 플레이어로 바이닐을 틀었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선명하고 깨끗했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더욱 선명하게 울리는 한 마디가 있었다. '아.. 이건 맥주 마시면서 들어야 하는데..'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곧바로 냉장고에서 기네스 한 캔을 꺼냈다. 공교롭게도 우리집에는 기네스 전용잔이 있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순간은 귀하다. 다른 캔맥주와 다르게 '칙'소리가 유독 더 큰 기네스 캔을 오픈하고 전용잔에 또르륵 따랐다. 바로 마시면 안 된다. 따르고 나서 40초 후에 검은색이 짙어졌을 때 첫 입을 대야 한다. 기네스와 PREP. 완벽하구나. 내 다짐이 무너졌어도 뭐 어때. 지금 행복하면 된거야! (다행히 과음은 하지 않았다)
혼술은 위험하다지만, 가끔은 이렇게 좋아하는 것과 술을 곁들이는 경험을 하는 것을 모두에게 권해본다. 좋아하는 것에는 음악을 포함해서 책, 영화, 드라마, 다큐, 멍 때리기 등등 사람에 따라서 무궁무진하다. 술은 좋아함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들어준다. 사실은 내가 오늘 술을 마시고 싶은 핑계도 있다. 글쓰기와 함께 곁들이는 술은 뭐가 좋을까. 와인이 딱이네. 여름에는 역시 시원하게 칠링한 소비뇽 블랑이... 그렇지만 내일은 월요일이라 참는다.
#02
결국 고통스럽다는 말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글과는 상관없는 곳으로 떠났다. 삼십 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글 쓰는 과정의 모든 것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글 쓰는 일은 엄살을 부릴 수도, 요령을 피워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서미애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작가의 말 中
꾸준함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던 시기가 있었다. 20대 중반에 접어들기 직전, 나는 음악을 진지하게 해 보고 싶었다. 군대 가기 전 딱 1년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휴학을 신청하고 알바를 하면서 작업실을 빌렸다. 동네 이자카야에서 새벽 시간에 알바를 했기 때문에 내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아침부터 낮까지였다. 호기롭게 시작한 음악인 생활. 결론부터 말하면 과정도 결과도 좋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작업실에 가만히 틀어박혀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을 반복했었다. 그저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있다가 무언가 팟 하는 순간이 오면 자연스레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착각)에 빠져 숱한 무의미한 순간들을 흘려보냈다. 꾸준함은 예술가의 태도가 아니라며 유레카를 외치길 고대했지만 결국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작업실을 정리하고 입대 준비를 했다.
뼈 아픈 시기를 지나오며 내가 얻은 교훈은 '작은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글쓰기는 항상 두렵지만, '오늘 딱 한 줄만 쓰는거야'라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꾸준히 빈 종이를 채워간다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글 쓰는 시간을 일정하게 정해놓고 그 시간에는 무조건 글쓰기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래, 탈락하더라도 한 번만 써보는거야'는 마음가짐 덕분이었다. '탈락하면 어쩌지, 나중에 글 진짜 잘 쓰게 되면 올리자' 같은 마음이었다면 그 순간은 영원히 미뤄졌을 것이다.
작은 꾸준함이 쌓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들어가고 싶었던 직장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할 수 있게 된 것도 소소한 실천들이 쌓인 덕분이라고 믿는다. 하루하루를 묵묵히 수행할 뿐이라는 소설 속 작가의 말이 와닿은 이유다.
#03
깨닫고 자책하고 새 삶이 열리기를 기대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순간만 그렇다. 삶은 부메랑처럼 언제나 돌아간다. 자기만 알고 상처를 주고 망쳐버리는 데 익숙한 바로 그 순간으로.
- <술과 농담> 中
후회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구석에는 남을 상처주지 않겠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심리학 전문가가 말했었다. 후회는 무엇을 해서 생긴 후회보다 하지 않아서 생긴 후회가 더 크게 다가온다고. 후회라는 낱말에 누군가를 상처입혔던 경험을 대입해본다. 상처를 남긴 그 행동 자체에 대한 후회와, 상처를 주었음에도 사과 한 마디 못한 후회, 어느 쪽이 더 오래 혹은 더 깊이 다가오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후자 쪽이라 말해본다.
현재를 즐기라는 말을 좋아하기는 한다. 내가 꿈꾸는 미래도 어느 순간 현재로 다가오니까, 지금의 현재는 어쩌면 과거의 내가 꿈꾸던 미래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현재를 마냥 즐기다 보면 많은 것들을 잊거나 잃는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잊을 때가 있다. 현재에 너무 충실하다면 그렇게 된다. 일 하느라 바쁘고 일이 끝나면 쉬고 놀고 자느라 바쁘고, 사실은 바로 지금의 나. 상처를 주고 다시 후회하다가도 또 내일이면 현실에 충실하기 위해 후회를 잊는다. 어쩌면 이 반복을 인정해야 하는 걸지도. 마땅히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04
교사에게 발언권이 돌아왔을 때 나는 말했다. 좋은 글은 장면을 선물한다고. 읽는 이의 마음속에 몹시 인상적인 이미지를 그려서 글을 내려놓고도 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르게끔 한다고.
-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中
장면을 선물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 글은 친절하다. 마들렌과 홍차에서 할머니의 추억을 떠올렸던 프루스트의 인물처럼, 독자로 하여금 기분 좋은 상상을 할 수 있도록 매개해주니까.
스무 살 중반, 군대에 있을 때 읽었던 홍세화 작가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한국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풍경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여행 프로에서 보던 파리의 익숙한 모습과는 달랐다. 여행 프로의 에펠탑과 그가 문장으로 적은 에펠탑은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TV 속 파리의 시민들은 항상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산문 속 파리 시민들은 무표정과 닮아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TV 속 해상도 높은 파리의 모습보다, 그의 책을 읽고 떠올린 20년 전의 파리가 나에게는 더욱 생생했다. 진솔함의 차이었을 것이다. 그는 망명자라는 자신의 처지를 꾸밈 없이 솔직하게 풀어냈다. 문장이 진솔할수록, 독자는 작가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면서 머릿속에서 하나의 장면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글을 쓸 때 이런 '진솔함'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나의 부끄러움을 어느 정도까지 담아낼 수 있을까. 이 고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