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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h Feb 23. 2022

생산적 멍 때리기

멍한 직장인이 되겠다고?

 요즘 내 관심사는 '아무것도 안 하기'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정말 어렵다. 회사에서 바쁠 때면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 하는데 막상 주말이면 나는 또 무언가를 하고 있다. 친구랑 술 마시러 나간다든지, 혼자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 간다든지, 아니면 하릴없이 바닥에 누워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를 번갈아 본다든지 등등.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끼는데, 막상 그렇게 꽉꽉 채운 하루를 보내고 나면 후회가 밀려온다. 오늘도 아무것도 안 하기에 실패했구나, 하고 말이다.


 아무것도 안 하기는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아니, 애초에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왜 필요할까. 아무것도 안 하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길래. 바로 답하기는 어렵다. 그럼 우선 본질적인 물음으로 돌아가보자. 본질을 찾는 건 일종의 마케터 직업병이다. 아무튼 가장 최초의 질문이자 출발점. 아무것도 안 하기란 대체 무엇일까? '두 낫띵'의 정의부터 내리는 철학적인 사고 과정이다. 이른바 멍 때리기에 대한 플라톤적인 물음(?).



 아무것도 안 하기의 반대말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 되겠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는 건 극명하게 무언가를 하는 행위다. 문제는 하는 행위과 안 하는 행위 사이에 걸쳐있는 애매한 것들이다. 누워있기가 그렇다. 보통 누워있는 행동을 두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만약 누워있다가 잠에 스르륵 빠진다면? 결국 그 사람은 잠에 빠지기 위해 누워있기를 한 셈이다. 눕는 것은 잠을 위한 전조 행동이 된다. 그래서 눕는 건 아무것도 안 하기에서 벗어난 행위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집중을 거듭해서 스스로를 낯선 외부인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이 명상이다. 그러니까 역시 무언가를 하는 행위다.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명상이랑 멍 때리기랑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안 하기의 정점은 바로 멍 때리는 것이다. 왜 멍 때리는 행위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아닌 것일까? 멍을 '때린다'는 어감 자체는 전투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는데 말이다.


 멍 때리기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A라는 생각에서 B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분명한 인과관계가 상실되어야 한다. 인과관계가 '있는' 사고는 다음과 같다. '피자 먹고 싶다(A), 아 그러면 민철이 불러서 피자 먹자 할까(B)'. 피자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민철이를 부름으로써 해결하고자 하는 맥락이 분명하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류의 사고방식일 것이다. 뾰족한 돌을 발견했으니까 도구로 사용해야지, 했던 호모 사피엔스들의 사고방식. 맥락이 있는 사고는 결국 인류를 발전시켰다.


 그런데 멍 때리기는 사뭇 다르다. 가령 '피자 먹고 싶다(A), 아 맞다 오늘 쓰레기 버리는 날인데(B)'와 같은 사고 구조가 바로 올바른 멍 때리기의 예다. 피자와 쓰레기 버리는 날짜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멍 때릴 때 이런 사고 현상을 종종 경험한다. 계란 프라이를 굽는 상상에서 갑자기 10년 전 나는 어디 살았었더라, 하는 식으로 우리의 생각은 끝도 없이 퍼져나간다. 신기한 경험이다. 드넓은 우주를 상상하다가 작디 작은 내 방 구석 먼지 한 톨로 생각이 옮겨갈 수도 있으니까.



 예전에 김영하 작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주로 멍 때릴 때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고 했다. 치열한 분석이나 끊임없는 고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워있을 때나 샤워할 때 갑자기 떠오른 영감들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설로 뒤바뀐다니! 그 때부터 멍 때리기에 대한 나의 시선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깨달았다. 우리는 단 1분도 아깝다고 마음의 부담을 느끼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영감'이라는 녀석은 우리가 그런 강박을 내려놓을 때 찾아오는구나. 생각해보면 멍 때릴 때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는 건 타당한 해석이다. 좋은 아이디어란 온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극명하게 다른 두 생각을 엮어내는 '블렌딩'의 순간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멍 때리기와 꼭 닮은 형태다. A라는 생각에서 B라는 전혀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 의외의 지점에서 우리는 신선한 영감을 얻는다. 


 내가 멍 때리기를 이제부터 '생산적 멍 때리기'라고 부르기로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자고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잡고 살아가는 지금의 상황에서 억지로라도 아무것도 안 하는, '멍 때리는' 시간을 잡아두고자 스스로 노력하는 중이다. 의외로 어렵다. 아무것도 안 하려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오늘 하지 못한 할일들이 계속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참고 멍 때린다. 멍 때리기에 뭐 이리 유난이냐,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어렵다. 


 쓸데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다가왔다고 느낀다. 'OO의 쓸모'라는 책이 유행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애쓴다. 물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쓸모에 집착하여 나를 잃는 때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무의미한 일들을 의도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생산적 멍 때리기도 좋고, 비생산적 멍 때리기(라고 말하고 그냥 눕기)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오로지 나를 위한 행위. 쓸모와 무쓸모의 비율이 적절하게 섞인 삶이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가치관을 실천으로 옮겨보자 하는 마음에서 오늘은 투두메이트 어플에 체크리스트를 하나 추가했다. '20분 멍 때리기, 스마트폰 덮고'. 과연 매일 지킬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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