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스물여덟
코로나 확진으로 고생했던 일주일이 드디어 끝났다. 아팠던 몸도 거의 나았다. 월요일에 확진 판정을 받았으니까, 일요일인 오늘 드디어 격리가 끝난다. 그렇다면 내일은 월요일, 출근하는 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일터에 복귀하기 직전,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졌다. 방 구석구석 쌓인 먼지들을 청소하고 일주일 동안 미뤄왔던 루틴을 다시 시작했다. 무기력했던 일주일동안 켜켜이 쌓였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정리를 끝내고 저녁을 먹고 양치를 하던 중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격리 기간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아 수염이 잔뜩 자라있었다. '완전 아저씨같네..'라는 생각을 하다가 멈칫. 아 맞다, 내 나이도 이제 아저씨 반열에 오른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올해 나는 스물여덟이 되었다. 이제는 스물보다는 서른에 훨씬 가까워진 나이. 무성하게 자란 털을 보았을 때 반응은 '경악'이라면 내 나이를 깨달은 그 순간은 '뜨악'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20대라는 타이틀이 이제 2년도 채 남지 않았다니!
나에게 30대는 어떤 의미일까. 다양한 키워드로 30대를 표현할 수 있지만, 나는'책임감'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선명하게 느낀다. 누군가가 이끌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30대가 다가온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이유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나의 첫 노동에서 체감하기 시작했다. 첫 노동이라 함은 알바 제외, 본격적으로 직장인의 길에 들어선 인턴 시절부터를 말한다. 이십대 중반에 처음 했던 인턴 때 내가 업무를 얼마나 빨리, 잘 하는지에 따라 다른 동료 및 선임들의 업무 효율이 결정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제는 1년차를 넘기고 2년차 마케터로서 또 다른 무게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의 조언이나 지시 없이도 스스로 성장하는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 인턴 때와는 다른 점이다.
성장에 대한 고민들이 따라왔다. 앞으로 어떤 마케터, 어떤 AE가 되고 싶고, 남들에게 어떤 장점으로 평가받고 싶은 걸까. 업무를 하면서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까. 나에게 부족한 점과 뾰족하게 다듬으면 좋은 나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먼저 내 업무에 대한 그룹핑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주변 선배들을 관찰하면서 우리 회사의 마케터는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나만의 관점으로 아래와 같이 구분해보았다.
A) Creative
: 콘텐츠를 기획 혹은 제작하는 업무들. 그리고 꼭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아이디어를 빠르게 도출하고 제안하는 것이 필요한 업무들. 기획자로서의 호기심, 트렌드를 놓지 않는 습관 등 일상의 태도적인 측면이 중요하다.
B) Performance
: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한 업무들. SNS 채널 관리에 대한 새로운 제안으로 광고주의 니즈를 해결하는 것, 제안서를 작성할 때 RFP에서 광고주가 고민하는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등.
C) Mangement
: 매끄러운 커뮤니케이션으로 하나의 프로젝트가 잘 흘러갈 수 있도록 관리하는 능력. 혹은 문서 작성이나 광고 집행 등 효율이 중요한 업무들.
A와 B, 그리고 C로 나뉜 이 업무 유형들은 두부 자르듯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영 업무에서도 기획력이 필요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꼼꼼한 관리 능력이 필요할 수 있다. 위와 같은 구분은 앞으로 어떤 업무 지향점을 가지면 좋을지에 대한 판단에 도움을 얻기 위한 구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재 위치에서 나는 B와 C에 비해 A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다. 매주 자사미디어에서 직접 콘텐츠를 기획, 제작하면서 어떤 콘텐츠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지 인사이트를 누적하고 있기 때문에, Creative에 대한 능력은 스스로 주기적으로 잘 다듬고 있다고 느낀다. 반면 나에게 가장 부족한 점은 C, Management 유형이다. 프로젝트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선배들이 착착 해결해나가는 것을 볼 때면 내가 도움을 보태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종종 느낀다. '저런 부분은 내가 먼저 챙겼어야 하지 않았을까', '문제 상황에서 나는 아직까지 바로 해결책을 못 내는 것 같다'와 같이 스스로 부족한 면을 많이 깨닫고 있다.
그래서 올해의 키워드를 'Nice Management'라고 스스로 정해보았다. 1년차가 아닌 2년차 AE, 마케터가 된 나에게 중요한 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상황을 매끄럽게 정리하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렇게 키워드를 정하는 것이 업무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까? 아마 업무를 대하는 관점이 조금씩 변하게 될 것이라 생각해본다. 프로젝트에서 선배분들이 커뮤니케이션하는 상황을 좀 더 유심히 관찰하면서 팔로업하고, 혹은 운영적인 부분에서 스스로 새로운 제안을 던져보기도 하고, '이런 상황엔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는 식의 질문을 여러 차례 선배분들께 던져본다든지! 스스로 개선점을 찾아나가는 노력이 이전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이 모든 고민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다. AE로서 매끄럽게 커뮤니케이션 못 하면 어쩌지, 나의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으로 누군가 피해를 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말이다. 그런 두려움은 잠시 넣어두기로 했다. 김하나 작가님의 말이 떠올랐다. '하면 된다가 아닌, 하면 는다!'. 몇 번 크게 실패하고, 여러 차례 상처를 입으면서 두려움에 맞서다 보면 언젠간 그 자리에 두려움이 아닌 자신감이 차 있게 되지 않을까. 성장은 두려움을 지워나가는 과정이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다양한 종류의 두려움을 견디고 난 후 오히려 그것을 나만의 자신감이나 장점으로 바꿀 수 있었다. '하면 는다!'를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 걱정이 많이 줄었다.
내년에 이 글을 보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실제로 'C'를 잘 가다듬은 모습으로 이 글을 다시 마주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 때 되면 또 다른 지향점을 갖게 되겠지. 매년 이렇게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되는 거다. 이러면 30대가 되어도 꽤 재밌는 인생을 보낼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지루할 틈이 어딨어! (물론 힘들겠지만..) 내년이면 29살이다. 마지막 20대다. 아쉬움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아쉬움과 기대감 사이에서 30대를 맞이하는 기대감의 비율을 더 높이는 올 한 해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30대, 즐거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