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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h May 16. 2022

인프제 마케터의 문장들

feat. 주니어를 곁들인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밤은 아직 쌀쌀하지만 낮에는 반팔이 익숙해졌다. 거리는 전보다 푸릇해졌고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그런데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방법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바로 내 인스타... 지인들은 다 알 거다. 겨울을 지나서 봄, 여름이 되면 유독 내 스토리에 땅이나 풀, 하늘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는 걸! (특히 출근 시간대) 하늘만 보면 스토리에 올리고 싶어진다. 하늘의 파란색과 나뭇잎의 초록색이 청량하게 맞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어느 팬톤 컬러 조합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건 올려야지. 16:9 스토리가 딱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요 ...


 요즘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책이나 SNS를 하면서 좋아하는 문장을 캡쳐해서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면, 그걸 보고 영감을 받았다는 말을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신기한 경험이다. 원래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했던 문장을 티 내고 싶은 의도로만 인증을 하곤 했었다. 막상 그런 것들이 나 뿐만 아니라 내 지인들에게도 영감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문장을 올리면 누가 좋아할까? 내용은 좋지만 더 좋은 문장을 찾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식으로.


 그런 문장들이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생각해봤다.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선을 제공한 문장들도 물론 좋았다. 예를 들어 김영하 작가님의 "최선을 다하면 큰일난다"같은 말.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길 때 대비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분을 챙겨두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모든 미디어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고 외치는데, 김영하 작가님의 저 말은 신선했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시선을 일러준 문장보다는, '내가 원하던 삶의 형태이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내용을 적확한 단어들로 말해준 문장들이 나에겐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런 문장들은 내가 원하는 삶을 뚜벅뚜벅 헤쳐나가는 데 용기를 주었다. 


 인생에서 직업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적어도 나에게는), 마케터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문장들을 가져와봤다. 자기계발이나 성장과 같은 주제보다는 대부분 마음가짐이나 태도에 대한 문장들이다. 그러니 부담 갖고 편하게 슥슥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혼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인프제이기 때문에 내가 못 하고 있다고 다그치는 그런 식의 문장은 없다는 것을 참고할 것!





도처에 꽃잎이 만개해 있어도 바라보고 느끼지 않으면 나는 모른다. 그곳은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에 해당하는 말이다.

- 조금만 긴장을 풀고, 김민준


 요가원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업무는 쌓여가고, 미래는 걱정되고, SNS로 불필요한 소통을 잔뜩 하다 보면 주변의 아름다움을 놓치기 마련이다. 기획 업무를 하는 마케터는 그런 주변이나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하는 직업인 걸 느끼고 있다. 실무를 하면서 특정 서비스를 홍보할 때, 사람들이 그 서비스의 매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매개해주는 것이 마케터의 역할이라는 걸 일하면서 실감했다. 엄청난 강점을 가지고 있는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런 서비스에 매력을 느껴야 하니까.


 일상적인 마음가짐에서도 필요한 이야기다. 스마트폰 화면은 언제나 들여다볼 수 있지만 봄에 피는 목련의 피고 짐은 이제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이런 일상이다.


많고 많은 좋아하는 일 중 한 가지가 꿈이 된 후에 나머지 것들은 전부 사라지는 걸까?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렇게 좋아할 것 많은 시대에는 맞지 않는 말일 수 있다 생각한다. 왜 꼭 깊은 우물을 파야만 할까? 이런 저런 얕은 구덩이를 파서 좋아하는 것들을 심고 잘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은데.

- 나를 움직인 문장들, 오하림


 '딥 다이버'. 한 가지에 깊게 파고들 줄 아는 사람이 부러웠던 시기가 있었다. 인프제(가끔은 인프피)에게 한 우물은 고통이다. 나는 지금 이게 좋다가도 내일이 되면 저게 좋아보이고.. 또 다음 주엔 관심사가 바뀌고 하는 일상을 보내게 된다. 그런 나를 위로해준 문장이다. 이런 저런 얕은 구덩이를 파는 사람. 큰 나무 하나를 잘 기르는 것도 좋지만 작은 새싹을 여러 개 심어서 나만의 작은 밭을 가꾸는 것도 좋겠다. 디제잉도 좋고 기획자도 좋고 책 읽는 것도 좋고!


행간을 읽는 사람이 있다. 단어보다 쉼표를 눈여겨 읽는 사람이 있다.

- 태도의 말들, 엄지혜


 대화할 때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숨을 고르고 미세한 정적을 가지면서 '어떤 단어를 쓰면 좋을까'하는 고민을 가진다. 이 문장 덕분에 생긴 습관이다. 내가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말을 하는 것을 상대방도 느끼면,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대화를 할 때 좀 더 진심에 가까운 말을 골라서 대화를 이어나가게 된다. 상대방이 내뱉는 단어와 단어 사이, 그 행간에서 상대방의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이 문장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디제잉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본인이 트는 음악에 애정을 다 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면 나도 기분좋은 영감을 얻는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의 기분을 느낀다. 일은 힘들어도 다 같이 만족스러운 제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임하는 그런 모습들이 좋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것이구나, 그렇다면 앞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만들어 봐야겠구나.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 바깥은 여름, 김애란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추억이란 무엇일까. 특별한 장소, 특별한 경험을 기준으로 추억을 말한다면 나의 대부분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서 잊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일상에서 소중함을 느끼고 그것을 추억으로 간직하는 태도는 다르다. 회사 라운지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을 딱 한 번만 곱씹는 걸로도 꽤 길게 남는 추억이 된다. 사람들 앞에서 디제잉을 하는 순간이 아니더라도 다른 디제이와 소소하게 음악 얘기를 나누었던 그 순간도 잘 기억해두면 좋은 추억이 된다. 돌이킬 수 없는 모든 순간이 추억이다. 루틴한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이런 마음가짐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좋은 문장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나타난다. 그럴 때면 사진을 찍거나 노트에 적는 식으로 기록하는 것을 추천한다. 감정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도 재밌다. 그 문장을 기록했던 시절의 내 감정 상태를 알 수 있어서 마치 일기를 보는 기분이다. 지루함에 대한 문장을 2021년에 찍었다면, 2023년에 돌이켜보면서 '아 내가 저 때는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보내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구나'하는 식으로 말이다. 

 빈지노가 그랬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처음에는 이 말을 접했을 때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영감을 줄 수 있겠네'라는 식으로 다소 비관적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게 느끼는데, 당장 대단하지 않더라도, 내가 영감을 느낀 게 있다면 이걸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아마 내일도 인스타 스토리에 무언가를 올릴 것 같다. 아마 또 하늘 사진이겠지만! 하늘 사진을 봐주는 모두에게 소소한 고마움을 고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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