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불릴 수 있다는 유혹에 흔들리지 마세요.
EBS 다큐 프라임 <자본주의>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금융투자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2012년 7월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펀드의 수는 1만 4개. 놀랍게도 이는 ‘세계 1위’의 수준이다. 금융 상품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데 일개 은행원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것들을 다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복잡하고 어려운 1만여 개의 상품을 모조리 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 EBS <자본주의> 제탁팀 ‧ 정지은 ‧ 고희정, 『자본주의』
2012년 기준이니 지금은 달라져 있을 겁니다. 아마 더 늘었겠지요.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나라에서 금융상품이 세계 1위 수준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금융업 종사자라고 해서 상품을 일일이 다 파악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매일 수많은 금융상품이 없어지고 또 수많은 금융상품이 새로 생겨납니다. 오늘 어떤 상품의 기능을 완벽히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내일 그 상품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상품에 대해 정확히 알기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까요. 그걸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유통되는 금융상품이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요즘 왜 금융 광고가 눈에 띄게 늘어났는지, 금융회사가 왜 금융업 종사자들에게 실적을 강요하는지, 우리는 지금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금융상품 소비자입니다. 우리는 전보다 더 많이, 전보다 더 다양한 금융상품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현재 금융상품 시장은 과다 경쟁 시장입니다. 한 편으로는 무조건 팔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또 한 편으로는 어쨌든 팔기만 하면 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좋은 상품이라고 판매했던 상품을 나중에 가서 안 좋은 상품이라며 해지하게 하고 또 다른 상품을 권하는 영업 행위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말합니다. 더는 금융 회사와 금융상품 판매자들을 믿지 못하겠다고. 아이러니한 건 그럼에도 금융상품 소비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문제는 최종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계약서에 싸인을 한 사람은 소비자이니까요. 설령 상담원이 상품을 팔기 위해 그 상품의 나쁜 점은 쏙 빼놓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약관이 온갖 어려운 용어로 깨알같이 적혀 있어서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매달 돈을 내야하는 사람도 소비자, 돈을 크게 잃더라도 감당해야 하는 사람도 소비자입니다. 이런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제도적인 뒷받침이 생겨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소비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전 글에서 이제 우리는 금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금융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요. 그럼에도 확실한 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어떤 상품에 가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융 회사는 당장 이 상품에 가입하지 않으면 엄청 손해인 것처럼, 다시는 이렇게 좋은 상품이 나오지 않을 것처럼 우리의 불안감을 조장하지만 이때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상품을 가입하지 않아서 보는 손해보다 상품을 가입해서 보는 손해가 더 클 확률이 높으니까요.
정말 그렇게 좋은 상품이라면 애초에 우리에게 판매하지 않을 겁니다. 막연히 이 사람이 나보다 전문가겠지 라는 생각으로 싸인하지 마세요. 현재 금융상품 시장의 구조에서는 전문가여서 상품을 권하는 경우보다 단지 판매를 위해 상품을 권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잘 모르면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