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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클립 Jan 01. 2024

2023년 회고

많이 괴롭고 많이 흔들렸지만 돌아보니 신실하게 길을 걸어왔더라

2023년 한 해는 사회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무직의 상태로 시작한 한 해였다. 

2022년 가을 살던 지역을 옮기며 이전의 교회 공동체와도 안녕을 고한 상태였고 새로운 공동체를 찾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늘 12월 31일과 1월 1일을 보내던 송구영신 예배의 시간도 없었다. 

그냥 오늘이 어제이고 내일이 오늘인 듯 엇비슷한 기분으로 새해를 맞았다. 


1월 6일,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주 오랜만에 울음 섞인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고 새벽 1시쯤부터 날이 틀 때까지 꼬박 뜬눈으로 모든 괴로움을 견디며 1월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모할머니의 죽음은 모계 가족이 조금 더 서로를 돌보고 따스히 안는 시작이 되었고 참 모순적이고도 아름답게 모할머니는 가족에게 돈독함을 선물하고 가신 듯 느껴진다. 


2월 내내 동네 도서관을 열심히 다녔다. 책냄새가 가득한 도서관이 늘 좋은 나는 오로지 직관에 의지해 새로운 책들을 찾아보다가 UX라이팅을 알게 됐다. 내러티브를 쓰는 일들에 영혼이 소진되어 쉬고 있던 내게 새로운 길이자 운명처럼 느껴졌다. 무턱대고 관련한 책들을 읽었고 새로이 알게 된 UX라이팅 뉴스레터 팀에 에디터로 지원해 2023년을 꼬박 함께 보내며 뉴스레터를 발행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 UX 라이터라고 해도 될 법한 Torrey Podmajersky의 선언문을 번역하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와 메일을 주고 받기도 하고, 세계 각국의 UX 라이터가 교류하는 슬랙에도 참여하게 됐다. 


UX 라이터로의 직무 전향을 고민하고 지원하면서 직무와 산업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언제나 의미와 신념에 투신해 사는 관성이 쉬운 내게 소셜 섹터라는 분야는 새로운 세계처럼 보였다. 두 군데의 비영리 스타트업에 면접을 봤고 작년 이 맘때에는 아예 상상해보지 못한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됐다. 비영리. 정치. 스타트업. 


4월부터 12월까지의 기억은 9할이 뉴웨이즈이다. 대학원 졸업 이후 어느 때보다도 스스로 서툴다고 느꼈고 자존감이 한없이 바닥을 치기도 했으며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조직에게도 (최대한 덜 돌려 말하려 애쓰며) 고민과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과정에서 '일'에 있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과 꼭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점차 선명해졌다. 삶과 일에서의 우선순위를 고민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또 다시 문제를 제기하며 도전했다. 뉴웨이즈에서 일하는 모든 시간이 진심이었고, 진심이었기에 고통스러웠지만 진심이었기에 후회가 별로 남지 않았다. 2024 총선 프로젝트의 마무리까지 1분기 정도가 남았고 여전히 조금은 두렵지만 꽤나 기대가 된다. 


1월에 모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반 년이 지난 시점, 6월 1일. 나의 파란만장하고 변화무쌍했던 20대를 함께 지나온 사랑하는 반려견이 갑자기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결혼을 한 이후 오랜만에 엄마 아빠 동생까지 4명의 가족이 깊고 진한 시간을 보냈다. 정말 많이 울었고 가슴이 미어졌고 사춘기 때도 해보지 않은 대중교통 안에서 오열하기를 실행했다. 2023년은 여러모로 이별을 경험하고 많이 슬퍼하고 많이 괴로워했다. 


12월 31일, 더운 나라에서의 연말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곳에서 가족들이 함께 새해를 맞았다. 생각보다 더 유쾌했고 썩 세련되지 않았으나 깊이 따뜻했다. 


2023년을 정말 짙고 괴로웠다는 인상이었는데 돌아보니 꽤나 많이 성장했고 깊어졌다. 연초에 목표했던 것처럼 지경을 넓히는 것에 (내 생각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고 거센 물살처럼 나를 밀어 성장시킨 시간들이 쌓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랜만에 새해가 새해답게 새로이 기대가 되고,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2024년에는 한결 더 여유롭고 내 자신에게 관대하며 두려움 없이 흠뻑 내 일과 공동체를 사랑할 것이다. 내년 이맘때쯤 다시 2024년을 돌아보며 조금 더 많이 기뻐할 것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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