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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꼴찌가 아니다

1983 삼미 슈퍼스타즈

by 카미유

분명한 건 한국 프로야구가 창단되던 1982년, 삼미가 정확히 뭘 하는 회사인지 몰랐다는 것. 나머지 5개 팀은 적어도 9살 아이의 활동 범위 내에 존재하던 회사였다. 길 건너 점빵만 가도 OB 맥주, 해태 맛동산, 롯데 껌이 있었고 안방에 있는 삼성 티비를 켜면 MBC 방송이 나왔다. 삼미가 결코 작은 기업은 아니지만 전두환 3S 정책의 핵심인 프로야구판에 들어올 깜냥인가에 대해선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프로 원년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슈퍼스타 한 명 없는 라인업으로 15승 65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꼴찌를 기록해 조롱과 동정을 한 몸에 받았다. 그해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난 아버지, 형과 나란히 눕거나 앉아서 티비와 라디오로 프로야구를 접했다. 부산에서 태어났으니 고향 팀 롯데를 응원하는 게 정배였지만 응원팀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다.

이듬해인 83년, 삼미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장명부와 국가대표 출신 임호균을 영입하며 불티만도 못한 팀을 커다란 화톳불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미는 비인기팀이라 시즌 초 중계에서 소외되곤 했는데 스포츠 뉴스와 신문에서 삼미의 승리 소식이 심심찮게 올라오면서 이 요상한 팀에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 어제 삼미가 또 이겼던데 봤어?

- 그러게. 장명부가 잘 던지긴 하던데....

전년도 우승팀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한 형은 심드렁하게 답했지만 예상을 깨고 삼미는 전기 리그 후반까지 선두를 유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 우~와 삼미가 코리언 시리즈 나갈 것 같아.

- 너 삼미 팬 됐냐? 내가 볼 땐 지금 잘해도 나중엔 떨어질 거야.

그때는 형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삼미는 여전히 1등이었고 장명부도 건재했으니. 문제의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삼미 김진영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해 배를 들이받고 드롭킥을 날리는 추태를 보이며 퇴장. 거기다 청와대에 있는 높으신 빡빡이에게 찍혀 구속까지 되자 팀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선장을 잃은 삼미는 이후 연패를 거듭하며 손에 잡히기 직전의 전기 리그 우승을 해태에게 내주었다.

- 거봐. 내 말 맞지. 삼미는 안된다니까.

형의 예언은 보란 듯이 맞아떨어졌다.

후기 리그가 시작되자 삼미는 김진영 감독의 부재 속에도 전기 리그의 아픔을 딛고 선두로 치고 나갔다.

- 후기 리그는 삼미가 우승할 거야.

- 안 될 것 같은데. MBC 청룡은 못 이길 거야.

후기 리그 초반 잘 나가던 삼미는 이후 백인천의 간통 구속 등 악재가 터지며 전기 리그와 마찬가지로 추락을 거듭한 끝에 MBC 청룡에게 후기리그 우승을 선사했다. 참 가지가지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안 되는 팀은 안 된다는 교훈을 절감했던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형의 예언은 현실이 됐고 난 분한 마음을 속으로 삼켰다.

해태의 우승으로 83년 프로야구는 막을 내렸고 그해 겨울 나는 아버지에게 용기내서 말했다.

- 아빠, 나 삼미 어린이 회원 가입하고 싶어요.

- 뭐라꼬? 삼미? 니 언제부터 삼미 좋아했노?

- 두고 보세요. 내년에는 삼미가 코리언 시리즈 나갈 거예요.

사실 삼미의 팬인 걸 커밍아웃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모르긴 해도 반에서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 회원은 유일할 것이고 어떻게 삼미같은 팀을 좋아하냐며 놀림당할 가능성도 다분했다. 하지만 한 가지 믿는 구석은 삼미가 더는 약팀이 아닌 걸 그해 성적으로 증명했다는 점이다. 명실상부 삼미는 고향팀 롯데보다도 원년 우승팀 OB보다도 승률이 높았다. 새 학기가 되자 나는 당당히 삼미 모자와 점퍼를 착용한 채 교실로 들어와 삼미 필통과 삼미 선수가 인쇄된 카탈로그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놀리는 애가 아예 없진 않았지만 삼미의 성적 때문인지 우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역시 인생은 뭐든 잘하고 볼 일이라는 교훈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84년 삼미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힘이 다해 도로 바다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속절없이 꼴찌로 추락했다. 작년 한 해는 짧은 백일몽에 불과했고 마치 처음부터 이곳은 내 자리인 양 편안하게. 연일 패배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삼미의 흔적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삼미의 학용품은 서랍 속에 처박히고 삼미의 모자와 점퍼는 외로이 방구석에 터를 잡았다.

‘넌 삼미가 부끄럽니?’

‘네, 부끄러워요.’

‘고작 성적 때문에 팀을 저버리다니. 넌 진심으로 삼미를 좋아한 게 아니구나.’

‘그런가 봐요. 전 꼴찌라는 놀림조차 못 견디는 나약한 아이에 불과한걸요.’

장명부의 선 넘은 혹사, 김진영 감독의 불명예스러운 퇴장, 그리고 코리언 시리즈 좌절. 전후기 통합 52승 47패 1무. 삼미 역사상 가장 높은 승률이자 유일하게 승리가 많았던 83년. 그때 삼미를 응원했던 이들은 83년의 삼미를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 비록 장명부의 몸을 갈아 만든 성적이고 여러 사건 사고로 얼룩져 무턱대고 자랑하기 힘든 역사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삼미는 꼴찌도 아니며 약팀도 아니라는 사실. 팀 이름처럼 장명부라는 슈퍼스타가 있었고 정상의 문턱에도 갈 뻔한 강팀이었다. 숱한 패배의 무더기 속에 보란 듯 비상을 시도했던 83년의 삼미는 내 프로야구 역사에서 손꼽을 만한 멋진 팀이었다는 걸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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