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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페베 Sep 25. 2020

중국 고장극판 <비밀의 숲>! 스포 無 <경여년> 리뷰

뒤통수가 납작해지고 싶은 당신을 위하여

블랙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빛까지도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천체물리학자들의 연구와 탐사에 따르면 아마 영화 <인터스텔라> 에서 봤던 것과 같은, 검고 둥그런 입구의 깔때기 같은 모양을 따라 빛과 물질이 빨려들어가는 모양이라고 한다.

이 암흑과 빛의 경계, 즉 블랙홀의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다.

블랙홀의 출구가 있지 않은 이상, 이 지평선을 넘어가는 순간 그 어떤 물질도 빠져나올 수 없다.


<경여년>은 마치 양파 모양 블랙홀 같은 드라마다.

일반적인 블랙홀이 깔때기의 경계를 넘는 순간 나올 수 없다면, <경여년>은 양파 껍질을 벗기듯 스토리를 한 겹 한 겹 벗기다 어느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다.

물론 어떤 껍질이 '사건의 지평선'이 될 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속살에 빠져드는 재미뿐 아니라 껍질을 벗겨가는 재미 때문에라도 이 작품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스포 無 를 지향하고 있지만, 리뷰라는 글의 특성 상 스포성 멘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권력암투극, 사극 정치물, 반전의 반전, 두뇌싸움 - 을 좋아한다면 찰떡궁합 !



장르는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환생물 고장극이며 권력 암투, 정치극이다.

<랑야방>, <후궁견환전> 등을 재밌게 본 사람이나 한드 중에서도 권력 암투물을 좋아한 사람이라면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궁중암투 뿐만 아니라 국가 내 세력 다툼까지 있어서, 치열한 권력다툼 장르의 뷔페 수준.

다만 원작은 타임슬립 환생 설정인데, 중국은 타임슬립이 검열의 대상이라..... '소설 속에서 환생했다'는 설정으로 전개된다. 이를 모르고 보면 1회 전개가 좀 당황스러울 수 있는데, '흐린 눈'으로 보고 무시하면 된다. 


고구마 전개가 많지 않고, 인물들이 하나같이 똑똑하고 각기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어서 답답한 전개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안성맞춤. 환생물답게 현재 시점의 기억을 활용한 전개도 재미있다. 러브라인이 있긴 하지만 초반부 전개에만 주로 등장하고 주인공 흑화를 기점으로 거의 비중이 없어져서 볼만하다. 또 주연 장약윤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이 전부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고, 중드 특유의 허접한 CG도 거의 없는 편. 놀랍게도 웹드라마인데(텐센트TV) 전혀 웹드스럽지 않은 고퀄리티의 작품이다.

(다만 출연진과 관련해서 아쉬운 점! 

국내에서는 샤오잔을 보기 위해 시청하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샤오잔은 극 후반부를 이끄는 인물로 38회나 되어서야 얼굴이 나오기 때문에.... 샤오잔이 시청의 이유라면 재고하시길. 물론 샤오잔 보려고 발 들였다가 작품 자체의 팬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똑똑한 인물들이 펼치는 끝없는 두뇌싸움, 그리고 각자의 지략이 맞물려 이어지는 탄탄한 스토리 전개다.

이 작품과 비슷한 감상을 받았던 한국 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tvN <비밀의 숲> 시즌 1이다.

<비밀의 숲>의 매력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전개와 피아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선악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캐릭터성, 인물 각각의 욕망이 빚어낸 서사가 촘촘하게 얽혀있다는 점인데, <경여년>은 이 장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장점을 구현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다.

요약하자면, <비밀의 숲>은 주인공이 짙은 안개와 수상한 나무들 사이에서 진실을 추리하는 구조라면, <경여년>은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서로의 뒤통수에 대고 하염없이 스파링을 뛰는 드라마다. 뒤통수를 맞고 또 맞고, 주인공도 남의 뒤통수를 계속해서 때리는 동시에 맞은 통수 또 맞아가면서 진실이 드러나는 구조다. 오죽하면 '뒤통수가 너무 볼록하다! 납작해지고 싶다!'는 사람은 <경여년>을 꼭 보라는 평이 있을 정도.


두 작품이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은 각자만의 매력이 있다. 

<비밀의 숲>이 섬세한 복선과 충분한 떡밥을 깔아놓은 뒤 이미 발생한 사건의 뒤를 쫓아가며 진실을 캐는 재미가 있다면, <경여년>의 경우 아무런 떡밥 없이 충격적인 반전과 사건이 거듭되는데 알고보니 그 반전들이 전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데서 오는 놀라움과 희열이 있다.

또 둘 모두 누군가의 큰 그림이 존재하는데 - <비밀의 숲>은 퍼즐 하나하나를 맞춰가면서 예상치 못한 그림이 완성된다면, <경여년>은 퍼즐을 다 맞춰도 이상한 그림이 나오는데 알고보니 퍼즐 뒷면에 완성된 그림이 숨겨져 있는 경우와 같다.

반전과 반전을 넘어 만난 이 둘, 그러나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데... 과연 결말은?

같은 맥락에서, 피아식별과 선악구분이 어려운 점 역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다. 

<비밀의 숲>은 모든 사람이 수상한 모습을 보이고 의심할 만한 점이 있어서 피아 구별이 안 된다면, <경여년>은 누가봐도 A인 사람이 알고보니 B였고 그런데 사실은 C라는 반전의 반전이 계속되다 보니 피아 식별이 어려운 케이스다. 

<비밀의 숲>의 방식이 좀 더 세련되고 치밀하기는 하지만, 수많은 반전을 위한 인물 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과 그 모든 반전을 꿰뚫는 스토리라인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경여년> 역시 대단한 작품임이 분명하다. 반전이 너무너무 많은 탓에 후반부에 몰아칠 때는 좀 피곤하고 이해도 어렵고 때로는 당황스러운 게 단점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일관된 한 줄기의 큰 스토리 축으로 묶어낸 것 자체가 이 작품의 매력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시청자라면, 절대 스포를 보지 말 것!!!

두뇌 싸움, 뒤통수, 전략, 권모술수가 말 그대로 난무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스포당하는 순간 이 드라마의 최고 장점이자 가장 큰 재미가 급감한다. 물론 스포를 알고 봐도 '이게 어떻게 이렇게 연결되는 거지?'를 알아가는 데서 오는 재미가 있지만, 스포 없이 볼 때의 희열감을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스포를 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특히나 티빙에서 <경여년>을 보는 경우, 시청 창 하단에 뜨는 회차별 줄거리도 보지 말아야한다.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중드는 회차 줄거리나 회차별 소제목에 대놓고 스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 역시 회차별 줄거리에 스포가 떡하니 써있는 경우가 많아 미리 보게 될 경우 해당 회차의 재미가 떨어진다.

드라마를 처음 보는 시청자의 경우 눈 딱 감고 영상에만 집중할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캐릭터 쇼'가 부족하다.

권력암투물이 으레 그렇듯이 모든 인물들의 욕망은 하나같이 '권력' 그 자체이다. 잘 만든 캐릭터 쇼의 경우, 모두 권력을 목표로 하더라도 그에 맞는 동기, 원인, 철학, 명분 등이 있는데 <경여년>에는 그런 점들은 부각되지 않는다. 특히나 주인공을 제외한 메인 인물들의 경우 권력과 생존만이 유일 목표이며 그것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캐릭터성이 부족하고, 오히려 한 회에 한두씬 나오는 조연들이 주연들보다 캐릭터가 훨씬 뚜렷하다. 

물론 각자의 캐릭터를 빌드업하고 모두 보여주기에는 분량 문제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인물의 서사가 곧 반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숨겨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부분에서 캐릭터성을 조금 더 부여하고 작게라도 보여줬더라면 스토리의 임팩트가 더 컸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전개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인 경우가 많아서 종종 당황스럽다. 

위험을 탈출하는게 인물의 기지나 지략인 경우도 많긴 하지만, 주인공이 개인 능력도 월등한데다가 출신까지 압도적으로 좋은 탓에(?) 때로는 권력자들의 도움을 너무 자주 받곤 한다. 사실 거의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을 자기 편으로 포섭하려 노력하는 전개가 신선하기도 하고 권력의 중심부로 들어가려면 필요한 설정이기는 한데.. 너무 먼치킨이라 가끔은 좀 위기가 더 많았어도 강약조절에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줄 요약 : 맛있습니다.. 먹어보실래요? 제발 먹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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