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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페베 Sep 28. 2020

<랑야방: 권력의 기록>, 중드의 바이블로 등극한 이유

상업보다는 먼, 이념보다는 가까운 - ♬

'나 중드 좀 봤다!' 라고 얘기하는 사람의 대다수가 봤을 작품이자, 

넷플릭스 등 OTT를 통해 <치아문> 등의 중국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건너오기 이전, 대한민국 중드 팬의 입덕문을 활짝 열어젖힌 덕후 양성소이자 집합소.

바로 <랑야방>이다.


역사에 영웅으로, 위인으로 이름 몇 글자를 남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유명인 곁의 '조력자'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일이다.

빛나는 다이아몬드는 칭송받기 쉽지만, 그렇게 빛나기까지 원석을 캐고 피땀흘려 세공한 사람의 이름이 빛나기는 어렵다.

자신이 도운 사람이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인이 되어야 하는데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파트너로서 자신의 공적이 많아야 하고 스스로의 능력 역시 뛰어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웅 혹은 위인에게 있어 조력자 자체는 무조건 존재할 테고 수없이도 많겠지만, '유명한 조력자'는 반대로 적을 수밖에 없다.


그 많은 난관을 뚫고 조력자로서 유명해진 사람은 정말 많지 않다.

헬렌 켈러의 설리번 선생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흐르게 한 폰 메크 부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작들이 숨쉬게 도운 안나 스니트키나부터 시작해 이야기 단계로까지 가면 바보 온달의 평강공주까지 이어지겠다.

그러나 유명인보다 더 유명한 파트너이자 동아시아의 올타임 넘버원 조력자가 있으니, 바로 유비를 빛낸 제갈량이다.


<랑야방>의 주인공 매장소와 정왕 소경염의 관계는 유비와 제갈량의 그것을 훌륭히 변주한다.

조정에서 밀려난 군왕에 불과했던 정왕의 뒤에서 뛰어난 지략과 처세술로 그를 황제의 자리에까지 앉히는 매장소의 활약상은 마치 조조에 쫓겨 형주에 있던 유비와 손을 잡고, 천하를 호령하는 호걸들에 맞서 초인적인 지략을 펼치는 제갈량의 모습과 닮아 있다.

게다가 생사를 함께했던 두 남자의 절절한 지기애 브로맨스까지 겹쳐지니, 어린 시절 만화부터 시작해 <삼국지>의 스토리를 모를 리 없는 한중일 시청자는 열광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조력자 서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몰입감과 오락성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역사 속 숨겨진 조력자들이 계속해서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사 자체만으로도 두 파트너에게 몰입하게 함은 물론이고, 목표의 달성이라는 선명한 스토리라인이 존재한다. 어떤 콘텐츠던 간에 기본적으로 순서만 다를 뿐, '만남-목표 설정-외적 위기-내적 위기-위기 해결-목표 달성' 이라는 기승전결이 갖춰져있으니 스토리의 살만 붙이면 되는 쉬운 구조다. 당연히 선악구조도 뚜렷하다. 당연히 흡입력이 남다를 수밖에. 조력자라는 포지션의 특수성 덕에 일반 히어로물과 차별화도 할 수 있다.


<랑야방> 역시 조력자 서사를 훌륭하게 구현해낸다.

심지어 '이중 책사'라는 소재를 활용해 조력자 서사를 겹겹으로 쌓으니 재미가 배가된다. 시청자는 매장소의 계략이 들어맞는 것을 보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예왕의 승리를 보며 1차로 즐겁고, 숨겨진 지략을 알고 있으니 에왕이 속는 모습에 2차, 그로 인해 정왕이 이득을 보는 것에 3차로 즐겁다. 


그뿐 아니라, 매장소와 정왕의 '복수'라는 스토리를 통해 쾌감을 배가한다.

일반적인 '황제가 되어 권력을 잡겠다'는 단순한 권력욕이 아닌, 권선징악을 통한 복수의 실현과 새 세상의 개벽이라는 구체적이면서도 공감되는 목표를 설정하기 때문에 절대권력과는 전혀 상관 없는 21세기의 일반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복수 코드를 넣었기 때문에 선악 구분 역시 더 명확해진다. 

권력 쟁탈이 전부라면 피아의 선악 구별은 쉽지 않으며 때로는 '우리'가 악의 역할이 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달성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야망 가득한 주인공이 대세인 요즘의 트렌드를 생각하면 상관 없는 문제지만, 보편적으로는 '우리'가 선한 역할인 것이 공감을 얻기 쉽다. 

(애초에 아무리 욕망캐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시청자를 몰입시키기 위해 그 욕망의 기저에 역시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는 강한 동기를 배치한다는 걸 생각하면... '내 욕망엔 동기가 없다'고 외친 <검블유>의 임수정이 '악'은 아니고 꽤나 진취적이었던 <이태원 클라쓰>의 여성 인물들 역시 각자 설명되지 않는가)


"이중 책사"와 "복수"의 코드는 단순히 스토리의 기승전결과 몰입감 뿐만 아니라, 

중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완벽히 파고들어 상업성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치밀한 줄타기를 하는 데에서 제대로 빛난다.

서사와 캐릭터의 가면을 쓴, 신랄한 21세기 풍자극


중국 관방 시스템상 드라마는 필수적으로 검열을 거쳐야만 한다. 

자본주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검열'이 대체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중국에서 드라마가 방영되려면 관에서 제작 허가와 방영 허가를 받아야 하며 광전총국의 검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를 반영하지 않는 드라마도 잘려나가는 판국에 당연히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를 건드리는 작품은 얄짤 없이 커트요, 향후 허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배니도세계지전> 같은 현대극 청춘물에서 뜬금없이 중국을 찬양하고, 남주 지샹콩의 목표가 중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애국심이라는 무리수 설정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념과 애국심, 중화사상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치장하고, 혹시나 건드릴 만한 것은 꼼꼼히 삭제해야 한다.

<랑야방>의 무기는 매장소의 지략 뿐 아니라 제작진의 지략까지 포함한다

<랑야방>은 이러한 중국 관방 드라마의 시스템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바로 '책사'와 '복수'의 코드를 활용해 치밀하게 대응한다.

<랑야방>의 기본 스토리라인을 보자. 무력도 초능력도 없으며 병약한 서생일 뿐인 '매장소'가 자신의 지략 하나만으로 지금은 권력에서 소외되었지만 사실은 공정하고 따뜻한 정왕 '소경염'을 황제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민생을 신경쓰지 않는 타락한 조정과 자신의 권력만을 위해 그 타락을 눈감고 심지어는 민중과 충신의 학살을 자행하는 황제, 그리고 황제의 눈을 가리는 황제 직속 감찰 기구인 현경사를 격파한다.


비리로 가득찬 정치인과 권력층, 민생보다는 자신이 우선인 지도자, 그리고 지도자와 나라의 이름을 빌려 감찰을 명목으로 선한 이들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지도자 직속 기구 - 바로 현대 중국의 모습으로 치환이 가능하다. 당장은 드라마라는 문화산업을 일일이 검열하는 광전총국부터 시작해 중국 공산당 체제 그 자체가 바로 현경사이자 <랑야방> 속 권력층의 모습이 아닌가?


이처럼 '양나라'라는 가상 국가의 탈을 씌워 현대 중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랑야방>은 '책사'와 '복수'의 서사라는 가면을 쓴다.

매장소는 책사로서 뒤에서 인물들을 조종해 악이 스스로 자멸하게 만든다. 유곽 사건, 살인 사건들로 6부 상서들을 쳐낼 때도, 녕국후의 비밀을 까발릴 때도 매장소는 언제나 한 발 물러서 판세를 움직일 뿐, 다른 인물들로 하여금 사건을 발견하고 자멸하게 한다. 태자와 예왕, 하강 역시 자신들이 저질러놓은 과오로 스스로 무너진다. 매장소와 정왕은 수를 읽고 판을 깔 뿐, 심지어 위쟁을 구할 때마저도 전면에 나서는 법이 없다. 


바꿔 말하면, <랑야방>은 '악은 스스로 무너진다'고 말할 뿐 대놓고 권력층을 쳐부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권력층이 무너지고 청렴한 사람들이 출세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국 체제와 자본의 득세 속에 소외되는 대중의 욕망을 실현한다. 절대권력이란 없는 자본주의 대한민국 시청자들에게도 통쾌함을 선사하는데, 공산당 체제 밑의 중국인들에게는 어떠할까?



또 <랑야방>은 권력층을 무너뜨리는 이유에 '복수'와 '애국심'이라는 명분을 부여한다.

타락한 권력을 부수는 것은 '애국심' 때문이요, 권력을 잡으려는 이유는 '복수의 실현'을 위해서라는 멋진 포장지 덕분에 <랑야방>은 국가 권력에 대한 민초의 도전이 아니라 복수를 실현하려는 매장소 개인의 목표 달성기이자, 동시에 정반대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드라마로 변모한다. '소외된 소수의 권력을 향한 고군분투'와 '타락한 권력을 징벌한다'는 본래의 주제의식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 동시에 겸열을 피하고 오히려 애국심 이념을 선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상업성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풍자를 교묘하게도 모두 취한다.

표면적으로는 애국심을 고취하면서도 복수 서사를 통해 오락성을 잡는 모습이지만, 겹겹이 쌓인 서사 밑에는 부패에 대한 도전과 절대 권력에 대한 고발이 숨어 있는 것이다. 

콘텐츠 자체도 풍자적인데, 이 드라마가 각종 국가 상을 휩쓸면서 <랑야방>은 콘텐츠 외적으로도 풍자를 실현한다. 

가히 21세기에 걸맞는 풍자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랑야방>의 상업성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더욱 섬세하고 전문적인 분석은 <드라마를 보다, 중국을 읽다> (고윤실 저, 나름북스, 2020)에 있으니 참조하세요!)


바로 직전에 <경여년>을 리뷰했었는데, 극적인 재미는 <경여년>이 <랑야방>보다 확실히 더하다.

인물들의 지략이 대응하는 치열한 두뇌싸움을 통해 권력을 쟁탈하는 스토리 자체는 비슷하지만, 이전 글에 언급했듯 <경여년>은 피아식별과 선악구분이 불분명하고 언제 어디서 반전이 일어날 지 모르는 재미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랑야방>은 구조 자체가 선악이 뚜렷해서 반전이 주는 자극적인 재미는 확실히 덜한 편. 또 <경여년>의 범한은 화려한 초능력까지 뽐내는데다 지략까지 갖춘 인물이라 '먼치킨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경여년>이 더욱 재밌을 지도?

그러나 인물들의 지략 대결이나 브로맨스를 기대하는 시청자라면 <랑야방>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랑야방>의 매장소-소경염 서사, 특히 전설의 33회차는 서사 자체가 주는 재미와 감동이 압도적이다. 둘 모두 헤테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진하게 느껴지는 BL의 향기..!



한 줄 감상평 :  "소경염, 거기 서!" , 지극히 평범한 6글자만으로도 얼마나 진하게 심금을 울릴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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