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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숲 Dec 15. 2020

다정한 이웃이 기다리는 시장

부산 동래시장

‘어이쿠.’ 


얼굴을 때리는 새벽 찬바람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린 환경미화원이 이내 빗자루를 고쳐 쥐고 바닥을 쓸기 시작한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는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바람이 제법 매섭다. 쓱싹쓱싹. 빠르고 정확한 빗질이 거리 구석구석에 쌓인 쓰레기를 말끔히 털어낸다. 살짝 요령이 필요한 표지석 주변도 노련한 빗질이 오고가자 금세 깨끗해진다. 옛 동래읍성 남문터 표지석부터 가로등과 함께 주르륵 늘어선 독립운동가들의 기념석, 부산 3·1 운동의 중심이었던 동래고등학교 옛터 표지석까지… 시장 바로 앞 만세거리는 평범한 상점가와는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이곳 동래시장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새벽 찬바람이 가실 즈음 청소를 마친 환경미화원이 자리를 뜨면, 거리는 하루 장사를 준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뜨끈한 밥 한술로 배를 채운 상인들이 가게에 나와 셔터를 올리고, 물건을 실은 트럭들은 골목골목 파고들어 짐을 내린다. 하지만 시장 특유의 좁은 골목은 일방통행 도로가 많아 차를 대기가 무척 까다롭다. 임진왜란 때 순절한 분들을 모신 송공단 앞도 그렇다. 만세거리 끝자락에 있는 치안센터를 지나 동래시장 건물을 따라 비탈길을 오르면 바로 보이는 송공단 앞 도로는 맞은편의 가게에 앉아 있으면 참배객들을 위해 활짝 열어둔 문으로 제단과 비석이 보일 만큼 좁은 길이다.


시장 건물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동래부 동헌 대문 앞은 2차선 도로가 나 있어 괜찮은데, 그 뒤편으로는 영 길이 좁다. 하긴 시장 골목이란 게 다 그런 법이다. 여느 시장과 다른 점이라면 가게 면전에 문화재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정도랄까. 


본래 동래라는 곳이 삼한시대부터 지역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며 3·1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거기다 물 좋은 온천까지 솟아나는 곳이라,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관광지로 개발한 덕에 부산에서 처음으로 전차가 개통되기까지 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이 모이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었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시장이 서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동래부 동헌 주변을 중심으로 동래읍내장이 생겼고, 노점이 모인 형태로 시작되었던 시장은 시간이 지나 공설 시장으로 승격되면서 건물도 지어졌다.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지금의 동래시장이 되었으며 명실상부 부산을 대표하는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현재의 건물은 1970년에 지어진 2층짜리 상가로, 1968년 화재로 인해 전부 소실된 후 동래시장 상인연합회가 준공한 것이다. 건물을 한 바퀴 휘 둘러보면 1층은 건물 안팎으로 촘촘히 상가가 들어서 있으며, 도로를 접한 바깥쪽 상가에는 주로 각종 건어물, 약초, 곡물, 야채, 생선 같은 것들을 팔고 있다. 그러다 어디선가 나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깥과는 또 다른 별천지가 펼쳐진다. 참기름을 발라 반질거리는 김밥, 수조 안에서 헤엄치는 싱싱한 횟감, 고소한 향을 풍기며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는 튀김이 눈과 코를 사로잡는다.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와 길쭉한 벤치들은 손님을 부르며 여기 앉으라는 듯 길게 놓여 있다. 그 말 없는 호객에 순순히 넘어가 부엌의 훈기가 감도는 곳에서 허기를 채우고 2층으로 올라가면 아래와는 또 다른 차분한 분위기가 방문객을 감싼다. 반짝거리는 유리잔과 소품, 식기, 포근한 이불,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뜨개 털실, 멋쟁이 옷과 신발……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고 싶어지는 광경이다. 특히 나무로 된 수저받침이 참 예뻐서 살까말까 고민하다 자리를 뜰 때였다.


“저번에 병원 간다한 건 어떻게 됐소?” 


바람결에 언뜻 안부 인사가 들려왔다. 다리는 착실히 멀어지면서도 힐끔 곁눈질을 하자, 근처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 아주머니와 귀를 기울이듯 진열대에 몸을 걸친 가게 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의외였다. 당연히 이웃 상인들끼리 하는 대화겠거니 했다. 시장을 돌아다니는 내내 느꼈지만 동래시장엔 오래된 단골이 참 많아 보였다. ‘나 여기 오래 다녔소’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시장을 많이 다녀본 사람은 느낄 수 있는 친숙함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 가다 아는 사람을 마주칠 때 나올 법한 반가움이 서린 눈빛, 그러면서도 잘 아는 사람을 대하는듯한 익숙한 태도는 한두 번 마주치는 것으로는 쉽게 나오지 않는 것들이다. 아니, 실제로 그들은 잘 아는 사이일 것이다. 내게도 그런 관계가 하나 있다.


본래 다니던 가게는 아니었다. 발품을 팔기 귀찮았던 나는 어머니에게서 시장 단골 가게 리스트를 그대로 물려받았고, 장을 보러 갈 때면 별다른 고민 없이 목록에 있는 가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리스트에 있는 곳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까지 찾아가기도 귀찮을 때면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가게나 들어가기 일쑤였으니까. 당연히 가게 주인들과는 안면이 없었고, 장을 보러 가서 주인 분들과 시시콜콜 수다를 떨고 오는 어머니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내게도 단골 가게가 생겼다. 정육점이다. 어머니의 단골 정육점이 정기 휴일인 것을 깜빡하고 고기를 사러 나간 게 발단이었다. 닫힌 가게 대신 평소 습관처럼 아무 곳이나 들어갔고, 그 가게의 고기 맛에 반해버렸다. 이후 고기를 살 때면 늘 그곳을 고집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가게 주인분이 “또 오셨네요”라고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쓱한 얼굴로 답하던 나도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답할 수 있게 될 즈음, 그 분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포스기에 전화번호 뒷자리를 입력할 수 있게 됐다. 어쩌다 잡채용 쇠고기를 살 때면 생일이냐는 말과 함께 약간의 서비스가 돌아오기 시작할 무렵에는 나도 주인분의 가정사를 조금은 알게 될 정도로 대화가 길어졌고, 고기를 사지 않아도 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서로 편하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머니처럼 시시콜콜 수다를 떨진 않지만, 적어도 아무 말 없이 지나가면 서운할 정도의 관계는 된 것 같다. 


이런 관계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고민의 끝은 불현듯 찾아왔다. 앞집에 사는 사람과 마주쳤는데도 인사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때, 무의식중에 그를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분명 그는 사전적으로 내 이웃에 해당하는 사람이나, 감정적인 교류가 전혀 없는 길 가다 마주친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가게 주인과 손님 사이로 시작한 관계가 훨씬 더 친밀했다. 그렇다면 이웃이라는 단어는 이쪽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사전적인 의미로는 현관이 인접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맞지만,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보다야 만날 때마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안부를 궁금해 하는 사이에 더 어울리는 단어라고 느껴졌다.


여기 동래시장에도 비슷한 친밀함이 흐른다. 테이블 앞에 의자를 두엇 더 끌어다두고 오순도순 모여 뜨개질을 하는 뜨개방이라든가, 물건 사러 갔다 가게 주인댁 결혼식 일을 묻는 손님이라든가. 서로의 사정을 훤히 아는 대화들이 오간다. 요즘 사회에서는 느끼기 힘든 이웃 간의 정이 은은하게 배여 있다. 아마 오래도록 동래시장을 찾는 사람들 역시, 그들을 자신의 이웃이라 여기고 있지 않을까.     


※부산생활문화매거진 브로컬리(B·LOCALLY) 2020 겨울호 까만봉다리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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