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설계하려 하는가

에필로그

by 서히

나는 두 개의 공간을 오가며 작업한다.
하나는 캔버스 앞이고, 다른 하나는 전시의 현장이다.

캔버스 위에서 나는 완성보다 중단 이후에 남는 것들을 바라본다.
덮이고, 지워지고, 밀려난 흔적들.
의도하지 않았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잔여들.


현장에서 나는 참여 이후에 남는 것을 본다.
수집된 데이터가 아니라,
관객이 머물렀던 시간의 여운.
말로 남지 않았지만 분명히 발생한 관계.

두 공간은 달라 보이지만 내가 묻는 질문은 같다.

무언가가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그리고 그 남겨짐은 어떻게 설계될 수 있는가.


이 연재는 참여형 전시를 비판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었다.
참여를 줄이기 위한 주장도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참여를 다시 설계하고 싶었다.

즉각적인 응답 대신 머무름을,
형식화된 참여 대신 위치를,
결과물 대신 흔적을,
강요된 속도 대신 리듬을.


나는 관객이 전시를 관리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참여하지 않아도 괜찮은 구조 안에서만
참여는 비로소 선택이 된다.
남기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만 흔적은 잔여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감동을 설계하지 않는다.
행동을 관리하지 않는다.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참여를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관객이 머무를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한다.
그리고 그 조건 안에서 발생하는 관계를
존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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