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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헌 Sep 14. 2023

인간사회에 악은
어떻게 들어오는가?

도대체 선악과란 무엇인가? # 1


성경에 

인류사의 벽두에 나오는 

선악과 사건은 신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의 모든 비극의 원인이

금단의 열매를 먹음에서 왔다?

선 듯 납득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선악과 사건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단순히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

그 이상의 인간과 사회에 근원적인

깊은 통찰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만들어진 신> 

 <이기적인 유전자> 저서를 통해 

오늘날 기독교 공격의 선봉장과 같은 

자리에 있는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에 억압과 악행의 경로가 존재한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도킨스의 말은 

종교들을 향한 예리한 진단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을 추구하는 종교가 

어떻게 억압과 악행의 실행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선을 추구하는 종교에서 

어떻게 악이 발생하는가?


기독교도 세계사에 영향을 준 만큼  

역사에 수많은 억압과 악행들도 있어왔다.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교파들 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과 살육의 역사들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인류역사에서  

거의 모든 종교에서 

억압과 악행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국가사회에서도 발생하여 왔다. 


국가사회는 

무슨 주의(~ism)를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악행을 저지르고 

정치적 프레임으로 진영을 만들어 

상대를 적대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한다.  


종교와 정치권력이 결탁하면

더욱 견고하고 강력한

기반을 가지고 기득권을 

지켜 갈 수 있음을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저항하는 사람들을 

악으로 쉽게 규정할 수 있고 

자신들이 자행하는 

억압과 악행을 선을 수호하고

국가를 위하는 것으로

정당화하기에 매우 용이하다.  


국제사회에도

상대국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여 설정하면 

공격을 정당화하여 

전쟁도 감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적 억압과 악행이 발생하는 원인


종교들이 행하는 억압과 악행은

권력화, 기득권화등과 같은 

모습과 형태에서 요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내적 근본원인은 "선과 악"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이해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나 국제사회에서도 동일하다. 


성경에서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인간이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존재

가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이 보여주는 

선악과 사건은 인간과 사회 속에 

일어나는 억압과 악행들은 사람들의 

선과 악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스스로 선악을 아는 

지식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 속에 선과 악에 대한 

잘못된 의식이 들어와

결과적으로 악을 자행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종교인들에 의한 억압과 악행은 

자신이 최고의 신을 믿고

거룩한 진리를 믿고 있다는 

확신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다.

 

자신의 신앙이 옳다는

확신과 열정만큼 

독선적이 되기 쉽고

자신들과 같지 않는 대상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것이다.


자신들이 거룩한 진리의 

올바른 신봉자이며 파수자라는 

자부심이 큰 만큼 

자신들과 다른 대상에 대한 

증오감도 크게 동반될 수 있다.

 


종교적 확신은 독선(獨善)을 낳고, 

독선은 타인에 대한 판단을 낳고 

판단은 정죄와 증오의 정당성을 확보하여

억압과 악행의 경로가 된다.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선과 악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간 스스로 독선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선악에 대한 자기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인 양 독선적이 되어 

타인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인간과 사회를 

내편과 저편, 아군과 적군 

흑과 백,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증오와 공격을 정당화는 데서

억압과 악행의 경로가 된다는 것을

선악과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성경의 선악과 사건은

인간과 사회의 모든 억압과 악행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주고 있다.


"너희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시니라."(창세기 3:5)



선과악의 판단과 

선과악의 분별의 차이


사람에게 

선과 악의 분별력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타인을 판단하는 것은 

사람을 자기 책상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재단하여

자기 도마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칼질하는 것과 같은 타인을 억압하고 

해치는 악행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타인을 재단하는 사고와 태도는 

서로를 정죄하고 적대시하며 난도질하는 

무서운 세상이 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선과 악의 진정한 판단은 

하나님의 권한과 주권에

속하는 것이다. 


선과 악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성경적 믿음이다. 





선악나무 VS 생명나무


성경에서 바울은

"남을 판단" 하는 것을

아담과 하와처럼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증거와 습성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내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라.(롬 2:1)”


창세기 3장에 

선악과나무와 같이 등장하는 

생명나무는 선악과의 반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선악나무는 

악의 예표와 상징이고

생명나무는 

진리의 예표와 상징과도 같다.


이런 의미에서 양자는

성경 전체를 푸는 중요 키워드

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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