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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역사 Mar 27. 2021

이간질의 세계사

미얀마 쿠데타의 본질, 1시간 만에 이해하기 #7

이 브런치북을 발행하기 앞서, 2021년 미얀마 쿠데타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께 애도를 표합니다.

이 글은, 미얀마 사태를 보다 본질적으로, 그러나 어렵지 않게 보자는 취지로 만든 콘텐츠입니다.




미얀마 국민의 '진정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전편 : 미얀마의 광복은 사실 '광복'이 아니었다 #6







역사 공부의 필요성은 어디서 올까?









역사 글을 쓰고있는 나는 사실 역사라고는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 역사를 열심히 암기해도 도무지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현재의 내삶에 연결시키지 않고 무턱대고 암기만 하니, 점수가 잘 나올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멀쩡한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역사에 집중하겠다고... 정글같은 자본주의 시장으로 나왔다. 도대체 무슨 역사에 무슨 매력이 있길래, 무모한 행동을 자행한 걸까?








이유는 단 하나다.
역사는, 내가 알던 고정관념을 모두 깨어주었다.






출처: EBS






우리는 좋던 싫던, 자본주의 문명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이 문명사회는 사실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가 만든게 아니다. 우리 조상인 유인원이 진화를 거듭해 지금까지 남아오면서, 자연 그대로의 원시생활에 반대방향으로 향한 인류의 역사가 '문명'이다. 우리는 긴긴 지구역사의 '한 점'에 불과한 시공간을 살고있다. 그 주변 환경도, 선조가 만들어 놓은 기반에서 출발했다.





태어나보니 이런 세상...





나는 내 선택으로 세상에 나온 건 아니다.





선사(先史)시대의 인간 사회는 원시 공산사회였다. 문명이 없었다. 당연히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가용 자원은 부족끼리 나눠가져야 했다. 부족을 이루는 단위도 50명을 넘지 않았다. 한 인간이 살면서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의 최대 수라봤자, 천 명이 채 안됐다고 한다.






구석기 원시 공산 사회 모습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출근길 강남역 한복판을 1시간만 걸으면, 새로운 사람 천 명은 쉽게 마주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사회의 안정이 필요하다. 사회의 안정이 없으면, 우리는 불안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살고있는 인간이 만약 동물처럼 본능만 가졌다면, 누가 언제 나를 해할 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 인간 문명 사회의 안정을 이룩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발명되었다. 법, 예절, 세상의 이치, 즉 도(道) 등이 있다.




더나은 세상을 위한 방안을 제시한 동양 사상가 (출처 sorbon21)





노자가 주창한 '도(道)'로서, 온세상 사람이 서로 사랑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동물적 본능을 가진 인간에게 이것은 그간 '이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공자는 노자를 비판하며 '예의'를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예의를 강조하는 이유는, 2천 년 전의 공자 사상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예의를 통해, 어느정도 사회적 안정이 유지됐다. 조선이 500년 장기 왕조를 유지했던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예의로 모든 사회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세상엔 아직도 '유전무죄'가 판치고, 조두순처럼 '예의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자들은 안정적인 문명 사회의 근간을 해친다. '예의없는 자'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한비자의 '법'이 필요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를 주창한, 최초의 법치주의자 한비자





이것이 "법대로 해!"의 기원이다.




한비자가 2천 년 전에 죽은 후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법치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세상 만사를 '법대로' 하면, 세상은 삭막해진다. 단단할수록 잘 부러지기 마련이다. 가난한 초등학생이 배가고파 편의점 빵을 훔치는 것처럼,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억울함이 쌓이다보면, 이자들이 난을 일으킨다. 진나라가 "법!법!" 하다가, 망한 이유다.









그래서 법보다 중요한 것이, 사회 공동체간 유대다. 이렇게 역사는 반복되었다. 그래서 동양사상에서는 법(法)위에 예(禮)가 있고, 예의 위에는 도(道)가 있다. 사회 통치 질서로 참 (이론적으로나마) 적합하다.




시대를 앞서갔던, 고대 동양 사상



하지만 서구 과학의 발전과 진화론이 발전하면서,
요즘엔 '예의'를 강조하다간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뇌과학의 발전으로, '심리학'이 통치수단으로 애용되고 있다.





인간의 뇌를 움직여야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시대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를 적극 활용한다. 기득권층은 민중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3S정책(Sports, Screen, Sex)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다.






원시시대부터 남아 있는 투쟁 본능이 격렬한 Sports로, 영화 스크린을 보고도 눈물을 흘리는 진화 정체 현상(Screen), 쾌락의 끝판왕 번식 본능(Sex)는 로마시대 콜로세움에서도 애용했던 우민화 정책이다. 권력은 민중에겐 불리하지만 카르텔 유지에는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킬 때, 우민화 정책을 적극 활용해 왔다. 채찍을 들땐, 심리적으로 화가나지 않도록 '본능적' 당근을 주는 방식. 이것조차 디지털화 된 '문명 사회'다.




영화 '글레디에이터'




Sports, Screen, S...  (예나 지금이나 눈을 뗄 수가 없다 ㅠ_ㅠ)








'법'이라는 채찍만으로는 사회가 안정되지 않으니, 회유책도 써야지








이처럼 회유책을 가장 잘 이행된 시대가 언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주의 시대이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물론, 일제의 시행착오가 먼저 있었다.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안정적인' 통치를 위해서, 뭣모르고 채찍부터 들었다. 1910년대, 학교 선생님이 칼을 차고 들어오며 조선인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켰고, 조선인은 미개인이라며 태형령(1912)이 존재하던 시기다. 일본인과 조선인을 명백히 차별했다.





조선인 태형령(1912 제정)




하지만, 강압적 통제는 도리어 반감이 생기기 마련




그에 대한 심리적 반작용으로 3.1운동이 일어났다. 노자의 '단단하면 부러지기 쉽다'는 교훈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일본은 우리에게 일정부분 자치를 허용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친일파를 키워냈다.




"너도 저렇게 일제에 충성하면, 잘먹고 잘 살 수 있어!"





출처 : 선을 넘은 녀석들(MBC)





이런 사례들을 두눈으로 목도한 영향력있는 지식인, 요즘말로 인플루언서들은 대부분 일본에 충성했다. 일본은 말로만 조선의 자치를 논하면서, 실제적인 권력을 주지 않았다. 친일파 이광수의 입을 통해, 자치권을 설파하기만 했다.




[독립을 포기한 일제 지배 안에서의 자치를 주장했던,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잡지 『개벽』, 1922년 5월호)






그렇게 일본은 오로지 일제에 충성하는 자들에게 식민지에서 잘먹고 잘 살수 있는 특혜를 제공했다.  인간의 본능적 '탐욕'을 이용한 '이간책'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소수의 강자가 다수의 약자를 통치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심리학을 잘 다루는 통치자들은 '이간질'을 십분 활용한다.




이것은 우리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로인해 누가 이익을 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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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카르텔 유지에 유리한 언행을 하는 자를 후방 지원하며, 이들의 사회적 성공을 매스미디어에 노출시켜 영웅화한다.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인물이 이광수였다.(지금은 누굴까?) 그러면 대중은 '미디어는 정직하다'고 공교육에서 배운 신화를 따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민중이 사회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에 관심을 가지는 건, 권력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너도나도 맹목적인 1% '영웅'이 되겠다고 달려든다. 그 '영웅'들의 공통점은 일단 '부자'라 불린다. 모든 부자가 나쁘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부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영혼을 팔면서 공동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배신자'가 싶지 않을 뿐... 어차피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우리 모두가 이 탐욕을 '사랑의 탐욕'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기적 탐욕'이 극에 달했을 때, 그 사회는 언제나 혁명으로 뒤집혔다. 그러면 사회적 안정도, 부자도 의미가 없게 된다. 우리 모두가 역사를 배워야하는 또하나의 이유다.





부자가 되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출처: BC카드)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참 고마운 점도 있다.





이처럼 제국주의 역사는, 그들의 통치질서를 잘 보여준다. 우린 여기서 배울 건 배우되, 하지 말아야 할 건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고, 가치다.






조선 백성은 일본 제국주의에 그렇게 당했고, 미얀마는 '신사의 나라' 영국에게 당했다.





'신사'를 사랑하는 두 섬나라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영국을 '턱시도를 멋드러지게 갖춰입은 신사의 나라'로 알고있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식민지 역사를 살펴보면, 영국만큼 '비'신사적이었던 나라도 없었다. 'X놈의 역사'다. 일예로, 중국이 자국내 마약유통을 안하겠다고 하자 전쟁을 일으킨 나라다(아편전쟁, 1840).







영국의 식민지 안정책 주요 키워드 또한 '이간 정책'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대영제국 식민지였던 인도!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 종교 이간책으로, 최근까지 골머리를 앓았다. 우리가 정치 이데올로기로 분단됐듯이, 그들은 [힌두교vs이슬람교]으로인해, 인도-파키스탄으로 분단되었다. 물론 2021년 초에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지만, 국경지대에서는 최근까지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남북한이 소규모의 국지전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했다. 결국 이는 파키스탄의 핵무장에까지 명분을 줬다. 이간질이 낳았던 역사 속 최악의 결과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분쟁








현재 미얀마의 군사쿠데타도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이해된다.





(다음화 계속)






위 포스팅은 [1시간 만에 이해하는, 미얀마 쿠데타의 본질] (가제) 브런치북으로 발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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