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라운드까지, 예선 통과(합계) 점수는 +1(오버파)이다. 작년에는 +5였다. 예선 이틀에 언더파 성적을 낸 선수는 작년 13명, 올해 45명이다.
작년에는 우승자(17언더파)와 평균 성적(또는 그 이하) 선수의 점수 차이가 매우 컸다(기권한 선수도 많았다). 올해는 작년보다 다소 쉽게(중간 성적 선수 층이 두텁게) 대회 코스를 구성했다.
한국(여자)오픈은 전통적으로 코스를 어렵게 구성한다(그 취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적으려 한다). 어렵든 쉽든 토너먼트 코스는 선수들의 기량 차이를 공정하고 정밀하게 변별해 낼 수 있어야 하며, 특히 한국(여자)오픈처럼 국가(골프)를 대표하는 대회는 변별력의 기준을 높게 설정한다.
따라서 ‘한국(여자)오픈’은 샷밸류와 난도가 높은 코스에서 치러진다. ‘샷밸류’는 종합적으로, 한 코스에서 다양한 샷(모든 클럽, 모든 길이, 모든 탄도와 회전 등의 구사 기술 등)의 품질과 가치를 정교하게 시험하는 정도를 뜻한다. 드라이버를 비롯한 롱게임과 그린 가까운 곳의 숏게임, 퍼팅까지 모든 클럽의 다양한 샷 기량을 얼마나 잘 판별하는지의 개념이다.
드라이버를 엄청나게 잘 치거나 퍼팅을 특별히 잘하는 것, 또는 특정한 기술에 능숙한 것보다는 다양한 샷을 구사하는 능력을 종합적으로 가려낼 수 있어야 (샷밸류 높은) 메이저급 토너먼트 코스로 적합하다. 샷의 품질 가치뿐 아니라 전략적 판단력, 인내심과 상상력 등 정신적 능력도 조화롭게 평가해야 함은 물론이다.
레인보우힐스는 다른 어디보다 ‘코스 디자인’을 이해하며 플레이해야 하는 골프장이다. 다른 곳보다 7~8타는 더 친다고들 한다. 난도와 샷밸류가 높은 코스임은 분명하다. 이 코스 설계자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는 이 코스를 자신의 필생의 역작이라 공언하며 “한 두 홀만 특징적인 게 아니라 27홀 하나하나가 모두 골프장을 대표할 수 있는 시그니처 홀로 만들겠다”고 했다.
골프코스에서 ‘시그니처 홀’들은 (스토리를 품고 있거나)아름다울뿐더러 드라마틱한 승부를 빚어낸다. 기억에 선명히 남는 디자인의 심미성과 함께, 한두 타 차이 승부는 뒤집어질 수 있도록 하는 극적인 요소들로 구성하여 상징성을 높인다(잘 알려진 예로, 한국오픈이 열리는 우정힐스 13번 아일랜드 파3 홀과 멀게는 PGA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TPC 쏘그래스 스타디움코스의 17번 아일랜드 파3 홀 등이 대표적 시그니처 홀들로 꼽힌다).
설계자의 의도대로, 레인보우힐스에는 드라마틱한 홀들이 많다.
페어웨이가 두 갈래로 나뉜 2번 파4 홀과 12번 파4 홀(위 사진)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능력과 전략적 선택에 따라 한 곳을 선택하라고 한다(아름다운 홀들이기도 하다. 이 두 홀에서 티잉 구역을 앞으로 당겨 놓으면 선수들이 왼쪽 최단거리 페어웨이로 공을 보내기 수월하여 설계 의도가 무색해지는데 3,4라운드에서는 선수들이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고민하도록 티잉 구역 위치를 놓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7번 파5 홀과 16번 파5 홀은 (물 건너)투온 공략을 도발하여 이글에서 더블보기까지 극적인 승부를 빚어낸다.
14번 파4 홀은 (골짜기를 넘어)2시 방향 대각선으로 진행하는 페어웨이를 향해 자신의 장타 능력만큼 (오른쪽으로 티샷할수록 그린에 가까워지게) 영웅적인 도전을 유혹한다. 밤하늘의 은하수 또는 흘러가는 구름 위에 공을 쳐올리는 듯한 상상을 부르는 홀이다.
이런 홀들은 다양한 클럽의 샷 기술과 전략적 판단 능력을 입체적으로 시험한다.
그런 한편, 산중 지형을 보존하며 만든 코스이기에 오르막 내리막 경사가 급한 홀들이 많고, 이동 경로가 가파르다.
12번 파4 홀은 티잉 구역에서 그린까지의 고도 차이가 60미터(여자 선수들의 티잉 구역에서는 45미터쯤) 난다.
15번 짧은 파4홀은 티잉 구역보다 55미터 높은 언덕 위 그린으로 가파르게 공을 쳐올려야 한다.
그 다음 16번 파5 홀의 고도 차이는 60미터다.
나흘 동안 선수들은 이 산길을 오르내리며 예민한 코스와 싸워야 함은 물론, 체력의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나는 레인보우힐스CC가 샷밸류 높고 흥미진진하며, 한국의 산중 자연을 잘 이해하여 창조적으로 빚어낸 코스라고 여긴다. 다만 애초에 소수 회원들을 위한 골프장으로 깊은 산속에 지었던 것이기에 대중적인 프로투어 토너먼트가 열리기엔 제약이 많으며, 대회를 치르더라도 한국여자오픈 같은 스트로크 방식보다는 매치플레이대회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전략적인 홀들이 많아서 선수마다 다른 선택을 하는 홀 매치에서 코스의 장점이 훨씬 잘 드러날 것이다(이동 구간에서 카트를 타고 플레이할 수 있는 이벤트 대회라면 더 좋겠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RTJ. Ⅱ)가 이 코스를 설계하는 데 한국 측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송호 씨는 말했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의 설계에는 성토와 절토 같은 토목의 개념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한국 산악지형 코스는, 경우에 따라서 지형을 최소한으로나마 깎아내서 메우고 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분은 지형을 있는 그대로 놔야 한다는 신앙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한국인 골프코스 설계자들과 RTJ Ⅱ 같은 서양 설계자들이 한국에 남긴 작품들의 본질적 차이는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골프코스를 정원으로 이해하는 일본 골프장들의 영향을 받은 까닭인지)한국 설계가들은 골프코스의 모습을 관념적인 정형으로 설정하고 자연을 그에 맞추어 변(조)형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서양 설계자(거장급)들은 땅을 그대로 살린 위에서 상상력을 발휘한다(이것은 나의 ‘가설’이다. 서양 설계자 가운데 발주자의 관념대로 그려주는 이도 있고, 국내 설계자 중에서 땅의 성격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는 영국 출신의 저명한 미국 설계가 로버트 트렌트 존스(Robert Trent Jones, 1906~2000)의 아들이다. 아버지 존스는 1930년대부터 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세계 36개 나라에 400개 이상의 코스를 만들어 “로버트 트렌트 존스의 골프코스는 해가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중 수십 개가 ‘세계 100대 코스’에 올라 있다.
“위험이 따르는 샷에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거나 “파는 어렵고 보기는 쉽도록 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그의 생각은, 지금도 골프코스 설계 세계에서 기본 원칙처럼 통하고 있다.
아들 존스(1939~)는 예일 대학에서 지질학과 인문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대학 로스쿨을 다니다가 아버지의 설계 회사에 합류했다. 전미 대학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골퍼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 존스의 설계를 계승하고 더 널리 전파했으며, 아버지 못지않게 세계 40여 개 나라에 (세계 100대 코스 수십 개를 포함) 빼어난 골프장들을 남겼다.
RTJ. Ⅱ는 스스로를 “자연을 활용하여 서사시를 쓰는 풍경 시인”이라 표현한다. 그의 코스는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자연 그대로의 흐름을 따라 길을 내며 골퍼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전략성과 도전성이 높은 코스를 만든다. 자연 지형을 끌어들인 해저드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가운데 곡선미와 양감이 풍부한 벙커를 도전적으로 배치하고, 대상 지형의 특성을 활용한 조형으로 예술성을 살려낸다.
(같은 시대의 거장 설계가이자 선수 출신인 설계가 잭 니클라우스가 ‘플레이에 중점을 둔 코스의 원형’을 먼저 설정하고 코스를 앉혀 나가는 스타일이라면, RTJ. Ⅱ.는 땅의 흐름을 먼저 존중하고 그 위에서 최적의 코스를 찾아나가는 스타일이랄까. 그는 자연 생태의 보존과 복원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한국 골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골프코스 설계가다. 그가 설계(1988년)한 용평GC는 서양 골프코스 디자이너가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적인 흐름의 서구적 설계 개념을 선보인 정규 코스였다.
그 이후 그는 안양CC를 리노베이션 설계(1997년)하고 오크밸리CC(1998년)에 이어 2005년 이 골프장을 설계했다. 웰리힐리(2007년), 알펜시아CC(2010년)도 그의 작품이다. 만만하게 쉬운 코스는 없다.
특히 레인보우힐스는 '뻥뻥 내지르고 싶은' 골퍼들에겐 난해한 골프장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RTJ. Ⅱ)의 명성과 싸워야 하는(싸우고 싶은) 코스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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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곳에서 계속 한국여자오픈을 열게 된다면, 대회를 주최하는 측은 이 코스에서, 최상급 폼을 유지한 선수들과 하위 선수들 사이의 실력 차이가 극명히 드러나도록 셋업할 것인지, 또는 선수들 사이의 (중간 레벨에서)미세한 실력차이를 가려내는 데 중점을 둘 것인지, 예선(1R,2R)과 본선(3,4라운드)의 코스 구성 개념을 명확히 설정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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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골프장이야기] 제1권에 이 코스가 수록되었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라고 흔히 불러왔던 이름을, 제3권부터는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로 적고 있다(그의 홈페이지에 적힌 공식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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