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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Jun 25. 2022

우정힐스CC - 한국오픈,
코스를 어렵게 셋업하는 까닭


[‘오픈’의 정체성]


오픈(OPEN)은 프로와 아마추어에게 함께 ‘열린’ 대회다.

과거 영국에서 귀족과 자본계급은 사교와 여가의 장(場)인 ‘클럽’을 중심으로 스포츠를 즐겼다. 가난한 평민들은 돈 내기 게임을 좋아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돈벌이를 위해 전문적으로 운동하는 ‘프로페셔널’ 선수들이 생겼다.


상류층은 운동으로 돈을 버는 것을 천하게 여겼다. 그들은 스포츠 자체를 사랑하는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하며 플레이했고, 프로들과 섞여서 경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861년 스코틀랜드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에서 아마추어 골퍼와 프로 선수가 함께 겨루는 골프대회가 열렸으며, 그것이 ‘오픈’의 시작이다. 영국인들은 ‘디오픈(The Open)’, 미국에서는 ‘브리티시 오픈’이라 부르는 대회다.


1929년 US오픈에서 바비존스 - 윙드풋 / USGA 홈페이지 사진


그 34년 뒤인 1895년 미국에서 ‘유에스오픈(United States Open Championship)' 대회가 시작되었다. 영국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영국보다 더 권위 있는 대회로 만들고픈 의도 때문인지 난도 높은 코스를 선정하고 대회 기간 동안 코스를 더욱 어렵게 셋업한다. 


페친 윤종만 선생님이 자신의 책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게임 골프>에 발췌·소개한 설명을 옮겨 적는다. 


“US오픈의 정체성은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부과하는 것에 근거를 둔다. 유에스오픈은 골퍼들의 경기를 한계까지 압박하고 테스트하는 대회이다. The US Open's identity is rooted in being the greatest examination in golf, It's a tournament that pushes and tests a golfer's game to the limit.” 


극한 난도의 시험을 치름으로써 골프(기량)의 진화를 추구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한편으로는 미국 골프가 세계 골프의 실질적인 대종(大宗)이라는 선언으로 들리기도 한다.


1971년 한국오픈 - 서울CC 능동(군자리)코스 18번 홀


우리나라에서는 1958년 ‘한국오픈’이 처음 열렸다. 처음엔 서울CC 능동(군자리)코스에서 주로 열렸으며, 1990년부터 2002년까지 한양CC 신코스에서 치러졌다.


2002년 대회에서는 초청선수인 19세의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4라운드 합계 23언더파로 코스를 유린하며 우승했다. 골프협회장을 지낸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당시에도 한국오픈 후원사) 회장(1922~2014)은 그 장면을 보며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듬해부터, 자신이 만들어 운영하는 우정힐스CC로 한국오픈 장소를 옮기게 하며 ‘대회 코스 난도를 높여라’고 각별히 주문했다고 알려진다.


고 이동찬 회장의 한국오픈 시타 장면- 우정힐스 제공 사진


“한국을 대표하는 대회, 한국을 대표하는 코스이니 어렵게 세팅해야 선수들의 기량도 좋아질 수 있다”고 이회장은 역설하였고 그것이 우정힐스에서 열리는 한국오픈의 난도 기준이 되었다. 


<한국오픈>은 대한골프협회(KGA)가 주최한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주최하는 여타 대회와는 다르다(‘US오픈’도 PGA투어가 아닌 USGA가 주최한다).

대한골프협회(KGA)의 설립·운영 목적은 ‘골프의 진흥 보급’, ‘우수 선수 육성’, ‘국제 경쟁력 제고와 위상 강화’ 등이다. ‘한국오픈’이 ‘US오픈’ 대회와 같은(비슷한) 정체성을 갖는(가져야 하는) 까닭이다. US오픈에 대어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한국오픈의 정체성은 (한국)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부과하는 것이다. 한국오픈의 난도가 한국 골프의 현주소이자 한계를 노정한다.” 


우정힐스 18번 파5 홀 - 우정힐스 제공 사진


[‘다이 가문’ 설계의 정체성]


우정힐스 골프장은 1993년에 문을 열었다. 전설적 설계가 피트 다이(Pete Dye, 1922~2020)의 아들 페리 다이(Perry O. Dye)가 이 코스를 설계했다. “고 이동찬 회장이 ‘다이 가문’에 설계를 맡겼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피트 다이는 잘 알려진 대로, 골프장 설계에서 ‘모던 골프’, ‘타겟 골프’의 변곡점을 찍은 설계가다. 그가 설계한 코스는 당시(20세기 중·후반)의 골퍼들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악의 화신 다스 베이더가 설계한 스타워즈 속 골프장 같다." 또는 “골퍼를 괴롭히는 게 취미인 사디스트”라는 악담도 들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자 ‘골프장 설계의 피카소’라는 찬사가 바쳐졌다.


침목 격벽을 세워 자비가 없는 해저드, 항아리나 손가락 모양의 깊은 벙커, 작은 그린, 한 샷 한 샷마다 집중해야 하는 전략적 디자인 등은 당대의 프로골퍼들에게 심대한 스트레스를 주었으나 지금은 토너먼트 코스의 당연한 요소들로 이해된다.

선수들은 그것들과 싸워 극복하며 기량을 향상시켰으며, 세계의 숱한 골프코스들이 그의 디자인에 영향 받아 진화해 왔다.


우정힐스에서 페리 다이는, 다이 가문의 설계 특징을 한국 자연에 어울리게 적용했다. (지금도 난도 높은 코스이지만)당시의 한국 골퍼들에게는 놀랍도록 어려운 코스였다. 개장하면서 “한국 최초의 웨스턴 스타일”을 표방했는데, 서구적(도전적)인 코스가 낯설던 당시로서는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동찬 회장은 당시의 정상급 프로골퍼들에게 “여기서 언더파를 쳐 보라”고 호언했다고 한다.


이 골프장에는 다이 가문 설계 코스의 전매특허 같은 요소들이 적용되었다. 침목 격벽으로 경계를 세운 워터해저드와 사람 키보다 훨씬 깊은 벙커 등이 우선 눈에 보이는 특징들인데······

이 코스의 본질적인 (다이 가문 설계다운)정체성은 ‘매치플레이에 알맞은 코스’를 구현한 것이다. 각 홀마다 여러 가지 공략 루트가 있어서 골퍼들마다 자신의 전략과 기량, 스타일을 추구하며, 다른 방법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하게 되는) ‘전략적 설계 코스’라는 뜻이다.


페리 다이는 아버지 피트 다이(다이 가문)의 설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 홀마다 하나의 경기다. 그것이 (다이)코스 설계의 영혼이다.”


(매치플레이가 골프대회의 초기 원형이기는 하지만, 피트 다이를 비롯한 설계가들이 매치플레이에 알맞은 코스 설계를 지향하는 것이 매치플레이가 스트로크 플레이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적으려 한다.)


[한국오픈의 코스 셋업 기준]


골프장 측은 한국오픈 대회를 위해서, 

7,326야드의 코스를 파71로 구성한다. 보통 때는 파72(7,225야드)인데 한국오픈에서는 11번 파5 홀을 파4로 조정한다.

(평상시 일반 골퍼들이 주로 사용하는 레귤러티는 파72 / 6,181야드,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레드티는 파72 / 4,844야드로 짧은 편이다.)


페어웨이 폭을 티샷 랜딩 존은 10~15야드 · 그린 입구 10야드 이내로 좁힌다.

세미러프는 4센티미터, 헤비러프는 10센티미터 이상을 기준으로 기른다. 선수들이 세미러프에 빠질 경우 0.5타, 헤비러프에서는 1타 정도 잃는다고 예측한 설정이다.

그린 스피드는 첫날 3.4미터(스팀프미터 측정), 마지막 날 3.7미터 정도로 관리한다.


핀의 위치는 대한골프협회에서 4일 간의 난이도를 조정하여 선정하는데, 전통적으로 어려운 자리에 꽂아왔다(최근 들어서는 국내 프로골프대회들의 핀 위치가 한국오픈 버금가게 어려워진 흐름을 보인다. 한국오픈-우정힐스의 선도적 고난도 핀포지션 시도가 보편적으로 전파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오픈에 참가한 로리 맥일로이 티샷 - 우정힐스 제공 사진


2라운드 예선 통과 커트라인 이븐(0) 또는 +1(오버) 정도, 우승 스코어는 10언더파 쯤으로 예상하며 셋업한다.

예전에는 “두 자리 수 언더파가 나오지 않게” 하던 때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그래도 미국의 리키파울러 선수가 16언더파로 우승했었다). 한국오픈 대회 코스 셋업을 난도 높게 하는 데 대한 국내 골프계의 원성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기준이 다소 완화된 듯하다.


(지난 주 치러진 2022년 ‘US오픈’에서의 우승 스코어는 4라운드 합계 6언더파였다. 앞에서 적은대로 그렇게 어려운 시험이 US오픈의 정체성이다.)


[13번 시그니처 홀과 ‘실코너’]


13번 파3 홀은 우정힐스의 대표 상징 홀이며, 실질적으로 한국 최초 ‘시그니처 홀’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아일랜드 홀’이라는 기록도 떠돌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미 1985년 용평나인 퍼블릭코스 8번 홀이 완전한 아일랜드 형으로 조성된 바 있고, 1991년 문 연 솔모로CC 파인코스 3번 홀 등이 아일랜드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18홀 규모 코스에서)제대로 갖춘 아일랜드 그린은 이곳이 처음이라 할 수는 있겠다.


13번 파3 홀 - 우정힐스 제공 사진


애초에 이 홀은 ‘세계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티샷’ 홀로 꼽히는 TPC 쏘그래스 스타디움코스 17번 홀처럼 계획되었다고 한다.

(PGA투어 ‘더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대회에서 세계 최고의 골퍼들이 공을 물에 빠뜨리곤 하는 아일랜드 그린처럼)철도 침목으로 경계를 세우고 그린을 놓치면 바로 물에 빠지도록 설계했는데, 의뢰자인 이동찬 회장이 만류했다고 전해진다. “너무 가혹하다. 한국 정서에는 여유가 있어야 하니 그린 둘레에 벙커를 만들자”고 양해를 구하여 다소 너그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바람이 많은 위치를 찾아 만든 아일랜드 홀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TPC 쏘그래스 17번 홀처럼) 짧은 홀로 설계되었을 것이다.

(짧은 채로 칠수록 공이 높이 떠서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역설적으로 짧은 파3 홀이 더 어려워지게 된다. 다이는 그런 역설을 아일랜드 홀에서 미학적으로 구현하곤 했다.)

그런데 이 회장의 요청으로 벙커를 만들어 넣으면서 다소 긴(대회 티 228야드) 파3 홀로 변경했던 것이라 추측한다.


16번 파3 홀의 (대회 티)거리가 248야드나 되고 나머지 파3 홀들도 221야드, 193야드로 긴 편이니, 이 홀이 짧았다면 코스 전체로 보아 균형감과 다양한 재미가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물론 지금 모습에서 -이회장의 뜻대로- 한국적 풍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내는 홀이다. 2009년 당시 일본 최고의 골프스타 이시카와 료 선수가 1, 2, 3라운드에서 모두 볼을 물에 빠뜨리는 등 유명한 사연을 많이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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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측은 16, 17, 18번 홀 구간을 ‘실(SEAL) 코너’라고 부른다.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 코스의 ‘아멘코너’를 따른 작명일 것이다. 세 홀 모두 어렵고 스코어의 변수가 많아서 승부가 뒤집어질 수 있을만한 구간이다.

하늘에서 보면 세 홀을 합친 선형이 바다표범(SEAL)처럼 보인다는 스토리 설정인데······ 다소 생뚱맞고 아쉽다는 마음도 든다. 좀 더 뜻 깊거나 이야기가 어울려 생동하는 이름도 있었을 것이다.



[‘우정’, 흑성산, ‘황소 능선’]


내 마음의 눈에는 (16, 17, 18번 세 홀이 이루는 선형이) ‘황소’로 그려진다.

’우정‘은 이동찬 회장의 아호였다. ’물가의 소‘라는 뜻이니 여유롭고자 하는 마음과 소처럼 우직하고 근면하겠다는 한국 정서가 느껴지는 이름이다.


우정힐스는 독립기념관을 품은 ‘흑성산(518m)’ 주변 구릉에 있다. 흑성산은 원래 ‘검은산’이던 이름을 한자로 적은데서 비롯되었는데 검은 색이라는 뜻이 아니라 신령하고 거룩함을 뜻하는 우리말 ‘검’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그 기운을 마주하는 자리에 있는 골프장이다. 이 주변에서 삼일운동의 기념비적 의거가 일어나고 독립기념관이 들어섰으며, ‘한국오픈’이 열리는 골프코스가 들어선 것이 우연일지 모르겠다.

‘우정힐스’ 이름을 이 땅의 인문적 사연에 엮어 ‘거룩한 산줄기의 황소 능선 코스‘라고 풀어 본다.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제1권에 이 골프장 이야기를 실으며, “황소 등줄기 같은 한국미가 있다”라고 썼다. 골프 코스는 (다이 가문의)서구적인 도전성으로 생동하고 있으나, 그것을 품은 땅은 한국 산야의 풍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회화로 빗대자면 조선 중기의 선비 화가 김식(金埴)의 소 그림(枯木牛圖)처럼 여유롭다가, 이중섭의 황소 그림처럼 생명감 넘치게 격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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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동찬 회장은 한국 골프계에서 존경받는 선인이다.

그가 “한국오픈 코스 난도를 높여라”고 했던 뜻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받들어야 할 유지라고 나는 해석한다.


또한 우정힐스는 한국의 골프장 중 하나를 넘어 ‘신령스런 생명체’ 같은 코스로 떠받들릴 수 있는 골프 문화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족보 DNA와 태생적 서사를 지닌 골프장은 매우 드물거나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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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골프장이야기’ 첫째 권에 우정힐스 편이 좀더 자세한 내용으로 수록되어 있다. 올해 한국의 진정한 명문·명품 골프장들을 선별해 다룬 시리즈를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연작과 별도로 계획하고 있다. 이 글은 그 연재 작업을 위한 ‘메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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