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민들이 숲 속 양지바른 자리에 일구었던 밭을 따라, 원시림을 거의 손대지 않고 코스 길을 냈다고 한다.
설계가 로널드 프림(Ronald W. Fream)이 아시아나CC와 클럽나인브릿지 등을 설계한 뒤에 한국 산야에 대한 완숙한 이해를 바탕으로 빚어낸 코스다.
3번 파5 홀 세컨샷 지점 - SBS골프 중계화면 캡처
3번 파5 홀은 난해하면서 드라마틱하다.
티잉 구역에서 오르막 언덕 너머 보이지 않는 소나무 숲을 향해 티샷하고 나면, 왼쪽으로 크게 휘어진 숲길이 나온다. 티샷 결과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이 눈앞에 펼쳐지고, 두려움과 모험심을 삼키며 도전과 우회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단해야 한다(사진). 다른 곳에서라면(로널드 프림이 아니었다면) 나오기 어려운 홀이다. 용평의 꿈틀거리는 산등성이와 한바탕 겨뤄보는 전장의 (초반)승부처다.
10번 파5 홀
10번 파5 홀과 11번 파4 홀은 대자연의 초대장 같다. 용평의 장려한 자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풍광 속에, 모험을 떠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길이 펼쳐진다.
진녹색 소나무 숲 사이로 흰 자작나무와 장대한 전나무 등이 모험의 길을 안내한다.
12번 파3 홀
12번 파3 홀에서는 수백 살 신령스런 기운을 뿜어내는 느릅나무를 만난다. (나무들이 뭐라 하든 골퍼들은 ‘닥치고 공만 보고’ 치지만ㅠ)
17번 파3 홀
17번 파3 홀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에 그린이 안겨 있다. 숲 속에서 문득 요정이 걸어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모습이다.
----
로널드프림은 한국 산야를 가장 잘 이해(하려 노력)한 설계가였다. 그는 우리나라 땅에 골프코스를 만든(1985년 용평나인) 최초의 서양 설계가로서, 한국 지형의 특징을 살린 세계적 흐름의 골프코스를 창안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오랫동안 우리나라 땅을 돌아다니며 많은 풍경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평범한 능선에서 기묘한 바위까지 숱한 사진을 찍고 그 모양들의 특징을 코스 조형의 모티프로 반영했다고 한다. 당시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의 지휘 아래) 용평CC와 버치힐CC 공사를 총괄한 이상재 박사의 말에 따르면, 프림은 의뢰인에게 홀마다의 조형을 설명할 때 그 사진들을 견본으로 이해하며 이해시켰다고 한다.
-
우리나라 골프코스들 가운데는 일본의 골프장들을 모방한 것들이 많아왔다. 그러다 보니 일본 전통적 관념의 골프장들을 좋아하는 골퍼들이 적지 않다(주류를 이뤄왔다).
일본인들은 골프장에 자신들의 전통적 정원 개념을 도입하기 좋아했다. 관념화한 우주를 축소해 예술적 기호 양식으로 담으려는 일본식 정원의 세계관과 기법은 안양CC 등 우리나라 초기 명문 골프장들에 도입되어 남아있으며 오랫동안 한국 골프장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는 2500여개나 되는 골프장들이 있으며 서양의 거장 설계가들이 도전적으로 디자인한 코스들이 적지 않으나, 우리나라 골프장들에 영향을 많이 준 코스들은 ‘전통적 일본 정원’ 개념을 띤 것들이었다)
로널드 프림은 1985년 용평나인 코스에서 한국 최초로 서구적인 골프코스를 선보였고, 1992년 아시아나CC에서 일본식 관념(투그린)과 서구적 도전성을 결합하는 시도를 한 데 이어, 2001년에는 클럽나인브릿지에서 세계 수준의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그 후 그의 설계 철학을 온전하고 완숙하게 풀어낸 코스가 버치힐이라고 이해한다.
(그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순천 파인힐스는 장정원 선생의 루트플랜을 바탕으로 재설계한 것으로 당시 그의 '골프플랜'사 설계 파트너인 데이비드 데일의 손길이 많이 닿아 있고, 강릉 샌드파인은 김명길 선생은 루트플랜을 바탕으로 재설계한 것이다.)
로널드 프림은 로버트 트렌트 존스(RTJ) 2세, 잭 니클라우스와 함께, 한국 골프장 흐름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설계가다. 그는 젊은 시절 로버트 트렌트 존스(시니어) 회사에서 설계가로 일했었는데, 게리 로저 베어드(파인비치, 이스트밸리, 아도니스 설계)도 그때 동료였다고 하니 우리나라 골프 코스들은 RTJ 가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셈이다.
-
버치힐은 로널드프림이 그에게 기회를 처음으로 열어준 한국 땅 용평에 헌정한 작품이랄 수 있다(그가 독립하여 세운 ‘골프플랜’의 첫 프로젝트가 용평나인이었다고 한다).
버치힐은 또한, ‘골프(코스)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설계가의 대답을 생생히 들려주는 코스이기도 할 것이다.
용평 발왕산 기슭의 자연을 그대로 살려 18홀 코스에서 변주하고 있는데, 골프코스의 관념적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덜 얽매여) 자유분방하다. 자연이라는 생명체를 18홀 내내 강렬하게 마주하며 싸우고 교감하게 된다.
이런 특징은 (한국 골프에서)드물고 낯선 것이라 제대로 해석·평가되지 못해왔다.
(골프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성가를 높이면서) 코스의 매력이 온전히 이해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