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 여행기(1)
마르세유를 여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유럽에 사는 친구들은 '차라리 니스를 가지 마르세유는 왜?'라는 반응이었다. 니스보다 마르세유를 더 선호했던것은 아니었고, 마르세유 쪽이 여행 경비가 덜 드는 데다 유럽 가기 전부터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라벤더 마을과도 가깝기도 했다. (기차표를 예약하기 전부터 마르세유라는 이름이 굉장히 친근한 느낌이었는데, 다녀와서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쓰는 손 세정제 브랜드 이름이 'Marseillais(마르세예)'였다.) 굳이 마르세유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다들 니스를 선호하니 도전 의식 같은 게 생기기도 했다.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는 기차로 세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새벽같이 기차에 올라타서 남쪽으로 달리는 내내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프랑스 남부 해변 도시의 풍경을 떠올렸다. 흰 요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항구, 뜨거운 태양에 반짝이는 해변과 파스텔 빛 건물들,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드리워진 노천 식당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상상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시내버스를 타고 유명하다는 해변으로 향했다. 미국 프랜차이즈 간판이 여러 개 붙은 낡은 쇼핑몰 주변은 사람이 바글바글했지만 조금 걷다보니 곧 한산한 해변이 펼쳐졌다. 6월 말의 바다는 투명하고 차가웠다. 초록빛 물 위로 돌돌 굴러오는 흰 파도를 보고 있자니 동해바다가 생각났다. 해는 점점 머리 꼭대기로 향하며 열기를 더해갔다. 해변을 바라보며 시원한 화이트와인을 한 잔 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식당이 보이질 않았다. 모래사장에 야외용 의자와 테이블을 놓은 바가 꾸며져 있기는 했지만 늦은 오후에나 여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번화가로 발걸음을 돌렸다.
미리 봐 둔 식당은 번화가 중심 거리에서 약간 벗어난 골목에 있었다. 평일이었고 낮잠 시간이라기에도 이른 시간이었는데 식당 가는 길에 나른하게 앉아 있는 젊은 남자들과 여러 번 마주쳤다. 노골적인 추파를 던지거나 인종차별적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앞을 지나갈 때면 내 꽁무니를 쫓는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해가 지고 난 다음에는 돌아다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동네만이 아니라 숙소 근처 마권을 파는 카페에도 밤이나 낮이나 성인 남자들이 바글바글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마르세유의 실업률은 16~18퍼센트 정도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프랑스 전체의 실업률은 8퍼센트 정도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건 실업 급여를 비롯해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할 인구가 많다는 이야기인데 세금은 누가 내나 싶었다. 관광 수입으로도 부족한 세수가 충당이 안 되는지 관광지 전체에서 벽에 금이 가거나 철근이 드러난 낡은 건물이 많이 보였고, 도로도 심하게 파이거나 정비가 필요한 곳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