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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숙희 Sep 15. 2023

유럽의 이민자들

마르세유 여행기(2)

 

    뜨거운 볕 아래 계속 걸었더니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도착한 식당은 시간이 일러서인지 아직 한산했다. 야무져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맞아 가게 뒷마당에 있는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큰 나무와 그물 차양 덕분에 뜨거운 볕은 적당히 가리면서 바람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생선 요리와 함께 주인아주머니께 추천받은 와인도 주문했다. 평소 지중해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어떤 음식이 나올지 기대가 되었다. 와인이 먼저 나왔다. 꿀 향이 살짝 감도는, 그럼에도 너무 달지는 않은 와인이었다. 날씨도, 와인 맛도 완벽했다.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일기를 끄적이다 보니 구운 대구와 함께 치즈를 채워 구운 미니 파프리카, 샐러드, 향신료와 함께 삶은 듯한 렌틸콩이 곁들여져 나왔다. 파리에 있는 식당만 해도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려 요리한다고 생각했는데, 지중해 요리는 그보다 훨씬 깔끔하고 건강한 느낌이었다. 

렌틸콩, 주황토마토, 샐러드, 치즈를 채운 파프리카와 생선 그리고 화이트 와인

구글 평점을 보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맛이었고 가니쉬 구성도 어느 하나 남길 게 없었다. 평소 식사량이 많지 않은데도 식전 빵과 함께 한 접시를 싹 비우는 동안 와인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와인이 너무 맛있다고 칭찬하니 아주머니께서 본인 고향 지역에서 나는 와인이라며 자랑을 하셨다. 파리에 가서도 사 마실 수 있게 라벨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부탁드렸더니 더 신이 나신 듯했다. 심지어 디저트가 나오기 전 서비스라며 한 잔을 더 채워주고 가셨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아주머니와 정이 드는 기분이었다.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끝낸 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숙소가 있는 동네로 향했다.


     마르세유 지하철 역은 파리 지하철만큼 낡고 시끄럽고 사람들로 붐볐다. 숙소는 뷰포트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다. 나는 여행지에 도착하면 숙소 주변 동네 구경을 하면서 마트는 어디에 있는지, 해가 지면 위험할 것 같은 길은 어딘지, 버스나 지하철 정류장이 어디에 있는지 대충 파악해 놓는 습관이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뷰포트 근처인데도 거리가 한산했다. 세 시간 남쪽으로 왔을 뿐인데 공기 자체가 다른 느낌이었다. 낡고 관리가 안된 것 같은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파리에도 낡은 건물은 많은데, 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더 잘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떨어져 나간 벽돌이나 파편들이 철근이 드러난 채 며칠 동안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도시 재정이 부족하거나 인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관리 시스템이 부재하는 것 같았다.


     뷰포트 쪽으로 나가자 기대했던 대로 줄지어 정박되어 있는 흰 요트들이 보였다. 관광객들은 식당 테라스에 앉아 목을 축이고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면 확실히 분위기가 살아날 것 같았다. 탁 트인 광장 쪽에는 현지인인 것 같은 가족들과 젊은이들이 물가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딱 봐도 놀러 나온 것 같은 이들 사이에는 맨바닥에 앉아 구걸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대부분 북아프리카나 중동 계열인 듯했다. 이제까지 대도시에서 본 걸인들은 대부분 혼자이거나 개와 함께였는데 특이하게도 가족 단위로 앉아 있는 이들이 많았다. 할머니와 딸, 갓난쟁이 아기까지 삼대가 광장 한가운데 함께 앉아 있거나 아빠 엄마 아이까지 온 가족이 누덕누덕한 담요를 깔고 마치 소풍을 나온 양 앉아 있었다. 어린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 여자도 보았다. 그들 앞에 놓인 낡은 종이 상자에는 잔돈 몇 푼이 들어 있었다.


     이날 저녁, 가장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저녁 식사를 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많아야 8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꽃 바구니를 들고 식당에 들어와 내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 커플에게 다가왔다.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남자에게 꽃을 건넸다. 저녁 먹기 바로 전에 구걸하는 가족을 목격한 터라 '꽃을 팔아서 엄마나 아빠에게 칭찬받을 생각에 설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운 얼굴이 그저 애처로웠다. 남자는 마주 앉은 여자와 여러 생각이 담긴 눈빛을 주고받으며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꽃을 거절했다. 분명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꽃을 사지 않아서 아이의 보호자가 그런 일을 더는 안 시켰으면 좋겠다가도 아이가 굶게 되는 건 아닌지, 혹여나 심하게 꾸중을 듣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으레 구걸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마련이고, 이런 광경에 꽤 면역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마르세유의 걸인들이 유독 눈에 밟힌 이유는 아마도 이들 대부분이 아직 프랑스 사회에 섞이지 못한 이민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도 아주 큰 항구 도시다. 몇백 년 동안 프랑스로 이주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민자들이 처음 밟은 프랑스 땅이 바로 마르세유였다. 이런 역사 덕분에 마르세유는 이민자와의 통합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2005년, 경찰에게 쫓기던 이민자 청년 두 명이 감전되어 사망한 사고 때문에 프랑스 전역에서 폭동이 일었을 때도 마르세유는 비교적 평온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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