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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양 Nov 10. 2024

[독후감] 시대예보:핵개인의 시대

핵가족을 지나 핵개인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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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1월 초에 책을 다 읽고는 바빠서 책장에 넣어두고선 독후감을 깜빡했다. 거의 1년이 지나서야 독후감을 쓰려니 기억이 잘 안 난다. 책을 뒤적이면서 중요 표시해 둔 부분 위주로 보면서 느꼈던 소감을 상기시켜 본다.



#이제는 핵개인의 시대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 사회 교과서에는 '핵가족'이라는 말이 종종 보였다. 조부모, 삼촌 등등 여러 가족구성원들이 함께 사는 대가족 시대를 지나, 부모와 자녀들만 거주하는 핵가족 시대로 변화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옛말이다. 지금은 핵개인의 시대다.


   우연히 작가님 북토크에 당첨되어서 참석했다. 그때 핵개인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던 내용이 인상 깊었다. '만약 혼자 자취하면서 집에서 어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 반찬을 해주신다면 그거는 핵개인이 아닙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가족과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진정한 핵개인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사실 혼자 사는 사람을 핵개인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물리적/사회적 거리감까지 갖춰진 개인을 핵개인이라고 한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아닌, 온전한 독립의 주체가 될 때 진정한 핵개인이 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핵개인의 시대를 바라봐야 한다.



#저는 전데요?!


    "OO고등학교 다니는 있는 홍길동입니다"

    "저는 OO전자 다니고 있어요"


   보통 자기소개를 하게 되면 자신이 어느 소속 또는 어느 집단에 있는지 먼저 말한다. 예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관계를 근간으로 한다. 관계는 타인과 얽히고 넓어지면서 집단과 사회로 확장된다. 또한 집단과 사회는 고유의 정체성을 갖으며, 해당 소속원은 자신의 정체성을 소속된 집단과 사회에서 찾게 된다. 하지만 핵개인의 시대에서는 이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내가 속한 집단보다는 개인의 특징과 내재적인 가치에 중점이 맞춰질 것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가 나를 소개하는 데 필요한 근간이 될 것이다.


   핵개인화 가장 빠르게 되고 있는 곳이 회사인 것 같다. 예전만큼 회사가 나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회사는 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곳일 뿐 나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없다. 퇴근을 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내가 운영하는 개인 SNS와 블로그가 내가 누구인지를 더 잘 보여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회사가 돈 버는 직장으로 국한되면서 예전만큼 회사에서 직위와 직책의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다. 회사에서 팀장이든, 부장이든 같이 일하는 관계일 뿐 나보다 회사에서 높다고 해서 나에 대한 개인적 영역까지 침범할 권리도 없다. 결국은 관계도 '업무적' 관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관계의 끈끈함도 약해지고 있다. 회사는 회사로서 남고, 개인은 개인으로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나'라는 서사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은 '서사'입니다. 각자의 서사는 권위의 증거이자 원료입니다. 성장과 좌절이 진실하게 누적된 나의 기록은 유일무이한 나만의 서사입니다. 나무의 나이테가 그러하듯 서사는 결코 급조될 수 없습니다. 오직 시간과 진정성으로 만들어집니다" p.286


   줄곧 언급해 왔듯이 핵개인의 시대에는 '관계'를 벗어나 개인의 특징이 더 중요해진다. 그렇다면 그 특징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한 가지로 국한할 수 없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개인의 서사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것을 이루었는지가 자신을 만들어 간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나의 권위이자 나의 뿌리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자신의 취향을 찾고 알아가고자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내가 20대 때는 유행이라고 하면 다 같은 것을 소비하며 동일시하고자 했다면, 요즘은 큰 틀 안에서 자신의 섬세한 취향을 곁들이면서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보았던 유튜브에서 '감도 높은 취향'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요즘의 세태를 잘 보여주는 말이가 아닐까 싶다. 나만의 서사, 나만의 취향을 탄탄히 구죽해 나가는 것이 훗날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 상호평형이라는 말


"비전 없다고 여기는 직장에 계속 머물거나 서로를 갉아먹는 인간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스스로 정한 반환점까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보고 그에 도달하면 그만두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만둘 수 있다'라는 생각만으로도 불균형한 관계가 대등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두어서 대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둘 수 있기 때문에 대등해지는 것입니다. 나에게 대안이 있을 때 상대는 나를 존중하기 마련입니다.    ... (중략)...

일단 '저 사람은 갈 곳이 없다.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신호가 보이면 경쟁 서열 집단에서는 조심성이 사라집니다. 상대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선다는 이야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p.320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보고 그만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 그만둘 수 있다는 대인을 상대방이 인식하고 있을 때 대등해질 수 있다는 말. 이직한 회사를 6개월 만에 퇴사한 내게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사실 호기롭게 이직한 회사를 반년만에 그만둔 것은 회사 비전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서둘러 퇴사를 정한 근본은 '대인관계'였다. 상대는 '쟤는 갈 곳이 없다. 그만두지 않은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고 무례한 언행을 서슴없이 했던 것 같다. 결국 퇴사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자 상대방은 깜짝 놀랐다. 퇴사의 이유보다도 '퇴사를 결심'한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을 것이다.  나의 퇴사 결심을 확고히 전달하자, 상대는 앞으로의 관계를 개선해 보자는 얘기를 그제야 꺼냈다. 이전의 대화와는 180도 바뀐 태도였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내게 미련은 없었기에 퇴사 의사를 되돌리지 않았다.


   벗어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관계에서 대등해지는 것은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인지시키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고객과의 관계, 연인 관계, 친구 관계에서도 해당된다. 떠날 수 있음을 알고 있을 때 어느 정도의 불균형을 해소될 수 있다. 그리고 과도하게 불균형한 관계라면 정말 그만두는 것이 여러 답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자기 성립과 증명의 시대로


   핵개인 사회가 온전히 도래하게 된다면, 그때의 개인은 완전한 개인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관계' 속에서 찾지 않고 '개인의 서사'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관계의 의미도 재정립을 할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관계, 부부사의 관계, 사회적 관계 등 모든 관계에서 답습된 행동은 폐기되고 '왜?'를 물으며 합리성을 추구해 나가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자기 내면의 탐색과 자신을 쌓아 올리는 내적인 고민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해답을 바탕으로 실행에 옮겨 자신을 증명하는 시대로 바뀔 것이다. 핵개인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면, 그때는 개성의 넘치는 핵개인의 구성원으로서 이뤄진 사회가 어떨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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